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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언론이 자사 94년 사설의 일부만 발췌해 전체 취지를 왜곡했다고 보도하고 있는 <조선일보> 9월 1일자.

<조선일보>는 지난 1일 기사를 통해 전시 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논란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과 '친여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가 과거 자사 사설의 일부분만 발췌해 전체 취지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오마이뉴스>가 몇 차례 기사를 통해 "<조선일보>가 김영삼 정부 당시에는 사설 등에서 전작권 환수 필요성을 주장하다가 12년 새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 데 대해 "이는 일부 취지만을 발췌해 전체 취지를 왜곡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오마이뉴스>가 1994년 12월 1일자 사설에서 "작전통제권은 우리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전시 작전통제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다음의 과제다"라는 부분만 인용했고, 바로 그 다음 사설 내용에서 "우리의 작전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국민 정서만을 내세워 단김에 모두 달성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전시 작전통제권까지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라고 했으므로 '발췌 왜곡'이라는 것.

그러면서 <조선>은 "본지는 그 무렵 여러 사설을 통해 일관되게 '전작권 행사 능력 제고' '한미 간의 더 긴밀한 안보 협력' 등이 더 중요하다고 썼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조선>의 역대 전작권 관련 사설을 재검증 해본 결과, 이 신문이 문제의 사설뿐만 아니라 다른 사설들을 통해서도 전작권의 환수 필요성을 주장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북한의 위협을 미군만이 억지해 준다는 인식 바꾸라”

<조선>의 1990년 2월 17일자 '작전권 이양과 정전위 대표' 제하의 사설을 보자.

"그동안 우리는 늘 사전에 면밀히 조직된 막강한 기습공격 위협을 미군만이 억지해 준다는 인식을 부지불식간에 굳혀왔다. 작전통제권 이양에 앞서 우리는 인식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중과부적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열세한 병력으로 적군을 물리친 을지문덕장군, 계단의 입적을 차내버린 강감찬 장군과 같은 지략과 능력이 있으면 전시라 해도 굳이 미군 측에 작전통제권을 의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북한의 군사력을 두려워하는 한 그런 버릇은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안보에 관한 인식과 발상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바로 다음에 주변 아랍국을 견제하며 생존하는 이스라엘의 슬기를 참고하자는 주장이 이어진다-편집자 주)


이 사설은 '기습공격 위협을 미국만이 억지해준다는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안보에 관한 인식과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지금 다시 보면 과연 이것이 <조선>의 사설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진보적인' 주장이다.

평시 작전통제권 이양 논의를 계기로 쓴 이 사설은 한 발 더 나아가 "전시라 해도 굳이 미군 측에 작전통제권을 의탁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전작권 환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사설에서 <조선>은 "정전위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으로 바꿀 바에는 이 기회에 불안하고 불충분한 현 휴전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그렇잖아도 북한은 그 경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우리 젊은이들에게 작전권과 현 휴전체제를 빌미잡아 한국군을 「괴뢰」라 부른다. 그러면서 그들은 「평화」와 「민족」과 「통일」을 내세우면서 「미국과의 대화」를 목마르게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음모를 분쇄하고, 민족내부의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하여야 한다는 진정한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남북한간에 새로운 평화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여기서 미국은 거드는 입장에 머물러야 한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북한은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만 대화하고 남한은 배제) 전략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문제에 있어 남한은 휴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내세웠다.

<조선>의 사설은 이같은 북한의 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한반도에 남북 주도의 평화체제를 확립하자는 주장이다. 그 연장선에서 "민족내부의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하여야 한다는 진정한 민족주의적 입장에서"라며 현재 북한이 내세우는 '우리민족끼리'와 흡사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은 김대중 정부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얘기만 나오면 "북쪽의 연방제 통일 전술을 그대로 따라하는 짓"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2군 전작권의 한미연합사 이양은 자주안보와 어긋나"

<조선>이 1995년 11월 4일자에 내보낸 '한­미 안보협의의 시의성' 제하 사설에서는 이런 주장도 담고 있다.

"내년 1월 말까지 개정작업을 완료하기로 시한이 정해진 SOFA는 현재의 것이 불공정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 측이 주한미군의 범죄행위에 대한 형사관할권 등 불공정한 점을 시정하는데 성의를 보일 것을 기대한다. 서로 문화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이해로 풀도록 하고,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서로의 법 제도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개정되기를 바란다.

숙제로 남은 것도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군 1군과 3군의 평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함으로써 우리의 작전 능력이 제고되는 방향으로 나가는가 했더니, 이번에 다시 전시­평시를 막론하고 한국군이 갖고 있던 2군의 작통권 가운데 전시 작통권은 한­미연합사에 넘겨주기로 했다니 한 마디로 자주안보의 추세에 어긋나는 일이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등 한·미간 안보 현안들을 다룬 이 사설에서 <조선>은 한·미 안보협의에서 2군의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미 연합사에 넘겨주기로 한 결정을 "자주 안보의 추세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평시 작통권만으로는 완전히 책임지고 있다 말할 수 없어"

<조선>이 '전체 취지를 왜곡했다'고 주장하는 1994년 12월 1일자 '평시 작통권의 중요성' 제하의 사설도 다시 보자.

"냉전 이후 국지분쟁의 귀결에서 보듯 국가 보위의 궁극적 책임은 당사국에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우리의 작통권은 우리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전시 작전통제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다음의 과제다.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만으로는 우리의 안보를 우리가 완전히 책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작전능력을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국민정서만을 내세워 단김에 모두 달성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전시 작통권까지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이 사설의 전체적 취지는 '전작권까지 수행할 수 있는 능력 배양'을 전제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전작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과제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평시 작통권만으로는 우리의 안보를 우리가 완전히 책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이 사설이 전작권 환수 필요성을 제기하는 한 것이 아니라는 <조선>의 뒤늦은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오마이뉴스>가 과연 무엇을 왜곡했다는 것인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김영삼 정부 때까지 <조선>은 전작권 환수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면서 국방비 부담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조선>은 한·미 간의 긴밀한 협조 등을 강조했다. 현재 전작권 환수를 추진하는 노무현 정부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진보진영은 전작권 환수라는 원칙에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노무현 정부와 갈등 상태다. 진보진영은 전략적 유연성 인정 하에서 진행되는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이 결국 동북아사령부를 구상하는 미국의 군사적 하위체계에 한국군이 종속되는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또 진보진영은 일찍부터 전작권 환수의 대가로 막대한 국방비를 쓰려는 시도에도 반대해왔다.

김영삼 정부 뒤 태도 돌변

'할 말은 하는 신문' <조선>의 전작권에 대한 태도는 김영삼 정부 이후 180도 달라진다.

"'주한미군 역할 정말 떠맡을 자신 있나'(2003년 2월 22일)

"'전시 작전통제권'만 해도 그렇다. 노 당선자는 "막상 전쟁이 나면 국군에 대한 지휘권도 한국 대통령이 갖고 있지 않다"고 불만을 표시했지만, 우리 군 지휘부나 전문가들은 대북(對北) 정보의 90% 가량을 미국에 의존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시기상조'라는 데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안보, 독일·일본 동맹 체제로, 한국 자주 체제로'(2005년 10월24일)

"세계 각국은 모두 동맹 강화에 힘을 쏟고 있는데 왜 유독 세계에서 가장 군사분쟁 위험성이 높고, 갈수록 경제성장의 잠재력이 둔화되고 있는 대한민국만 공허한 구호인 '자주국방'이란 말에 매달려 엄청난 재정부담을 껴안으면서까지 기존의 동맹체제를 허물어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자주국방론의 원조는 박 대통령

<조선>은 혼자 자기 안보를 책임지는 국가는 없다며 자주국방론을 비난한다. 그러나 자주국방론의 원조는 <조선>이 경애하는 박정희 대통령이다. 설마 <조선>이 당시는 한미 관계가 좋았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들고나온 것은 1970년 닉슨 독트린과 1971년의 주한 미 7사단의 일방적 철군 등 미국이 언제 한국을 버리고 떠날지 모른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핵무기와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려 했다가 미 행정부와 심각하게 충돌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로비스트 박동선씨에 의한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가 왜 발생했는지 <조선>은 잘 알 것이다.

박 대통령의 자주국방은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한 미국과의 인식 차에서 비롯됐고, 그것을 추진하면서 양국의 갈등은 더 심화됐다. 이런 박 정권의 자주국방을 찬양하는 <조선>이 미국과의 갈등 운운하며 현 정부의 자주국방을 비난하는 것은 전형적인 '이중 잣대'다.

이 같은 <조선>의 심리 속에는 무엇이 깔려 있을까? 지난 2004년 4월 22일 <조선>의 김창균 차장대우(현 논설위원)은 자사 노보에 쓴 '조선과 안티에 고민하는 후배들에게'라는 글에 답이 들어있다.

"<조선일보>가 공격을 받고, 그것이 먹혀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조선일보>가 보수라는 가치 자체가 아닌, 보수 정파와 이해를 맞추고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편가르기' 풍토를 개탄하지만, 정작 밖에서는 "너희야 말로 '내 편, 네 편'을 정해놓고, 유·불리를 따지는 식의 기사 판단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비판이 돌아옵니다."

▲ 지난 7월7일 <경향>의 조중동과 자사의 논조 비교표.

남의 눈의 티끌만 볼 뿐 자기 눈의 들보는?

한·미 양국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전작권 반환이 추진되는데 <조선>은 노무현 정부는 비난하면서도 미국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비판도 없다. 이것 역시 전형적인 '편가르기' 심리를 보여준다.

<조선>이 끝까지 전작권 환수에 반대한다면, 현 정부가 원하는 2012년보다 훨씬 앞선 2009년에 돌려주겠다는 조지 부시 행정부도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마이뉴스> 등 진보 언론을 '친여 매체' 운운하는 것도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격이다.

대북송금 특검·이라크 파병·용산미군기지 이전 및 막대한 국민 부담·평택 대추리 강제 진압·전략적 유연성 인정·황우석 사태·한미FTA 등은 노무현 정부의 핵심 정책이었다. 이 모든 사안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반대했고 <조선>은 정권 편에 섰다.

<한국일보>의 고종석 객원논설위원은 지난 8월 2일 '안티조선의 추억'이라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사실, 노 정권과 <조선일보>의 티격태격에는 기이한 구석이 있다. 이라크 파병에서부터 한미FTA 밀어붙이기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국가운영 철학'을 큰 테두리에서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들의 상호 증오는 유전자에 기인한 '인종적 배타성'이거나, 시쳇말로 '적대적 상호의존'에 가까운 것 같다. 노 정권은 <조선일보>를 계속 탓함으로써 다 떨어진 '개혁성'을 과시하고, <조선일보>는 정부를 물어뜯음으로써 알량한 '비판지'의 명성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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