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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 송씨 선산에 조성된 사릉
여산 송씨 선산에 조성된 사릉 ⓒ 김선호

'아는 만큼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내 고장에 어떤 문화유적이 있는지, 그것들의 역사적 의미는 어떤 것인지 그동안 너무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알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조차도 없었던 것 같다. 조선의 도읍지인 한양과 지리적 연관성 때문에 왕릉이 많다라는 기초 상식 정도, 산간지방이 많은 북부지형이 낳은 수많은 명산들, 그 산이 품은 사찰 몇 곳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정도의 미천한 지식이 전부였다.

그런 나에게 남양주문화원에서 매년 방학마다 실시한다는 '남양주 문화답사'는 귀에 솔깃했다. 지난 8월 18일 초등학교 아이들과 그 학부모로 구성된 답사 팀이 남양주를 서부와 동부지역으로 나눠 답사를 했다. 그 날 하루의 답사 일정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만큼 많은 것들을 만나고 온 소중한 시간이었다.

가운데 정자각을 두고 세조와 세조비가 묻혀있는 광릉의 정경
가운데 정자각을 두고 세조와 세조비가 묻혀있는 광릉의 정경 ⓒ 김선호

세조의 능인 광릉을 포함해 사릉, 홍릉, 유릉 등 남양주에 분포한 왕릉을 둘러보았는데 왕릉이라 해도 같은 양식은 하나도 없었다. 왕가의 예를 받들어 모신 것 빼고는 그 시대 상황에 따라 왕릉의 양식도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로 둘러본 사릉은 어딘지 모르게 엄숙한 느낌이 드는 장소였다. 강원도 영월에 모셔져 있는 단종을 정순왕후가 잠들어 있는 사릉에 합장하면 안되겠는가 싶었다. 여순 송씨의 선산에 일반묘와 함께 정순왕후가 묻힌 능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던 탓이다. 단종이 폐위되면서 '왕후'에서 '부인'으로 강등되었다 사후에 복원된 까닭에 무덤이 다소 소박한 느낌이다.

'큰법당'이라고 쓰인 봉선사의 대웅전 현판
'큰법당'이라고 쓰인 봉선사의 대웅전 현판 ⓒ 김선호

산림청 산하 묘목장 역할도 병행한다는 사릉은 아직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남양주 시민으로서 특별히 출입을 허가 받아 사릉 관리소장님으로부터 사릉의 이모저모에 대한 해설까지 들을 수 있었으니 첫 출발부터 예감이 좋다.

방학숙제를 하기 위해 답사일정에 참여한 아이들보다 그 아이들을 따라온(?) 엄마들이 더 열심히 듣고 메모도 열심히 한다. 아이들의 숙제가 엄마의 몫이 되지 않을까 싶었으나, 어쩌면 아이들에겐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을 주입하기 보단 그것들과 좀더 친해지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일 듯 싶었다. 그런 뜻에서 이런 식의 문화유산답사가 각 지방마다 활기차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우리고장을 둘러보는 일이기에 활동범위가 넓지 않은 것도 좋다.

두 번째 방문지는 세조가 묻힌 광릉이다. 사릉을 먼저 둘러보고 온 지라 왠지 단종의 마음이 읽혀져 기분이 묘했다. 다행히 말년의 세조는 조카를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한 잘못을 뉘우치는 뜻에서 능을 조촐히 꾸밀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한다. 그런 탓인지 가운데 정자각을 두고 왼편에 세조의 능이 오른편엔 정희왕후의 능이 나란히 묻혀 있는 광릉도 소박한 인상을 준다. 광릉에는 국내 최대의 수목원인 광릉수목원이 있어 울창한 숲을 이룬 아름드리 나무를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유난히 맑은 울림을 주었던 봉선사범종각의 풍경소리
유난히 맑은 울림을 주었던 봉선사범종각의 풍경소리 ⓒ 김선호

광릉 숲 안엔 고려 시대에 창건되었다는 봉선사가 있다.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봉선사대종'말고는 특별한 유적은 없으나 광릉 숲에 안온하게 들어선 절의 풍광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절이다. 불경의 한글 대중화에 노력을 기울였다는 봉선사의 전주지 운허스님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대웅전 현판의 한글 '큰법당'이 인상적인 절이기도 하다.

남양주시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자연사 박물관-우석헌'이다. 박물관 지붕에 금방이라도 쿵쿵거리며 달려올 것 같은 커다란 공룡모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공룡을 따라가면 옥상에 다양한 공룡모형이며 공룡알포함, 공룡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볼 수 있다. 그곳이 '자연사박물관 체험관'이다.

체험관을 오기 위해선 일층에서 학예사 선생님의 강의를 들어야 한다. 지구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 생성되고 소멸된 생물에 대해 재밌고도 진지한 강의가 이어지는 동안 아이들 또한 그 역사의 현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시종 진지해 보인다. 눈빛을 반짝이며 강의를 듣는 이 아이들 모두가 장래의 지질학자, 혹은 과학자처럼 느껴진다.

답사일정 마지막 코스는 홍릉과 유릉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홍릉과 유릉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왕릉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고종의 능인 홍릉과 순종이 묻힌 유릉은 황제의 능인 까닭이다. 다른 릉과 다르게 석물들의 수도 많고 훨씬 다양하다. 기린 코끼리, 낙타 등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동물상이 서 있고 문, 무인석 또한 훨씬 장대하고 우람하다.

자연사박물관-우석헌 '특별전시관'에서 강의에 몰두해 있는 아이들
자연사박물관-우석헌 '특별전시관'에서 강의에 몰두해 있는 아이들 ⓒ 김선호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을 선포한 황제로서 나라 안팎으로 불안정한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고종, 그리고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례식은 각각 3.1만세독립운동과 6.10만세사건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새삼스럽게 챙기게 된 장소였다.

홍릉과 유릉을 세세하게 들춰보듯 상세한 설명과 그에 곁들인 역사까지 재미있게 들려주는 해설사 분의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홍릉과 유릉을 둘러보았다. 어찌 보면 딱딱할 수도 있는 '문화유산 답사'가 이렇게 재밌고 흥미로울 줄은 미처 몰랐었다. 일정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들이 온 몸으로 능을 굴려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 순진 무구 한 어린이들의 장난을 황제인들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이 어린 후손들 어여쁘다고 미소짓고 있을지도….

아마도 아이들과 왕릉에 한 발짝, 아니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매우 특별한 답사체험이었다.

고종과 명성왕후가 묻힌 홍릉의 판위에 선 아이들, '고종황제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고종과 명성왕후가 묻힌 홍릉의 판위에 선 아이들, '고종황제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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