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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김현
몸에 좋다면 무얼 못 먹을까. 술을 거의 하지 않은 백형과 나도 한 잔 받아 마시니 맛이 좀 독특하다. 그러다가도 병 속에 들어있는 놈들을 보면 왠지 먹기가 그렇다. 몇 순배의 술을 마시던 태봉이 형이 쓸쓸한 소리를 한다. 태봉이 형은 정년을 몇 년 남기지 않고 있다.

"나 낼모레면 고무줄 빠진 바지가 된당게. 참 세월 빠르구먼. 그래도 마음만은 청춘으로 살아왔는데 이젠 어딜 가도 늙다리 취급이여."
"에이, 아직 한창인데요."
"한창은 무슨 한창? 마누라도 멀리 하는데… 좋은 세월 다 보냈어 이젠. 승선이 같은 나이엔 펄펄 날았는데 말이야."

승선인 아직 미혼인 30대 초반이다. 우리 중에서 제일 팽팽함을 유지하고 있는 젊은이다. 태봉이 형의 말에 승선인 헤헤 웃으며 술잔을 들이킨다.

"무슨 말씀요. 저도 다 고민이 있습니다. 집에선 장가가라고 야단입니다. 근데 이상하게 여자들이 잘 안 따른단 말씀이에요. 제가 어때서요."
"임마. 니가 너무 내세우니까 그렇지. 그리고 넌 너무 딱딱해. 여자는 가끔 부드러움이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누에를 이용해 담근 술.
누에를 이용해 담근 술. ⓒ 김현
성주 형의 말에 잠시 자리엔 웃음이 떠들썩하게 인다. 웃음이 가라앉자 늘 과묵하며 점잖으신 언행으로 그때그때 필요한 말을 하는 광호 형이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광호 형은 태봉이 형과 같은 나이인데 몇 년 전에 몸이 좋지 않아 크게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선지 후배들을 만나면 늘 건강을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그래서 많은 후배들이 따르는 선배이고 형님이다.

그 광호 형이 갑자기 오복(五福) 타령을 한다. 느릿하면서도 진지하게 말하는 형의 말에 모두를 공감한다. 아직 30대인 승선이도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은 나이가 먹을수록 꼭 필요한 게 있어. 옛날엔 몰랐는데 나도 낼모레면 60줄에 들어선다 하니 이 말이 실감나더라고."
"오복이 뭔데요?"

몸이라면 끔찍이도 생각하는 백 형이 음식을 먹다가 묻는다. 백 형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철저히 자기 몸에 맞는 음식만을 골라 먹는다. 자신은 소음인이라며 거기에 맞지 않은 음식은 절대 입에도 대지 않는다. 또한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 백 형에게 오복은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임에 분명했다.

"오복이 뭐내면, 일건, 이전, 삼처, 사사, 오붕을 말하지."
"좀 쉽게 말해봐. 삼처는 뭐고 오붕은 뭔가."

태봉이 형의 되물음에 광호 형이 짐짓 뜸을 들이며 헛기침을 하더니 오복을 설명했다.

"잘 들어봐. 일건(一健)은 건강함을 말하는 거지. 늙어서 아파봐. 마누라도 자식도 다 싫어하는 세상이여. 그러니 젊다고 몸 함부로 굴리지 말고 젊었을 때부터 건강 다져놓아야 혀."
"그건 자네 말이 맞네. 늙어서 아파봤자 서러울 뿐이지. 나도 나이 먹을수록 그 말이 느껴진당게."

"다음은 이전(二錢)이여. 늙을수록 돈이 있어야 혀. 자식들 다 퍼 줘봤자 자식들이 아버지 어머니 고맙다며 잘 모시는 거 아녀. 돈 없으면 자식도 친구도 멀리하는 세상이여. 그렇다고 그런 자식이나 친구를 무조건 원망하는 것도 안 돼. 세상이 그러니까 알아서 노후를 준비해야 돼. 그건 그렇고 승선이 자네 술이나 한 잔 따라 봐."

누에주 한 잔을 들이키더니 다시 오복에 대해 이야길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술을 마시거나, 안주를 입안에 넣으면서도 오복에 대한 이야길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삼처는 뭐고, 사사는 뭐래요?"
"삼처(三妻)가 뭐긴 뭐여 마누라지. 나이가 먹을수록 남자는 마누라가 있어야 하지. 늙어서 여자는 혼자 살 순 있어도 남자는 혼자 못산다는 말 있잖여. 그러니깐 마누라한테 다 잘 하라구. 늙어서 구박당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사사(四事)는 일이여 일. 일이 있어야 혀.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지 아니면 금방 늙어버려. 나도 정년퇴임하면 아파트 관리원이라도 하든가 시골에 내려가 작은 땅뙈기라도 부치려고 해. 여기 태봉이 친구도 있지만 이 친구는 다 준비 해놨어."
"준비하긴 이 사람아. 난 지금까지 월급 받아서 마누라한테 다 줘버렸어. 좋은 말로 내 미래에 대해 투자를 한 거지 뭐."

태봉이 형은 부인이 하는 골동품 구매에 모든 돈을 투자했다고 한다. 특히 고금의 희귀한 베개를 사 모았다고 한다. 일반 서민의 베개뿐 아니라 궁중의 베개 등 다양한데 어떤 것은 베개 하나에 백만 원 이상 간다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베개 하나에 백만 원이 넘는다는 말에 갸우뚱하자 정말이라며 한 번 가게에 놀러오라고 한다. 나중에 부인과 함께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겠다는 태봉이의 형의 말이 끝나자 다시 광호 형이 오복 중 하나인 오붕에 대해 이야길 해준다.

오붕(五朋)은 친구라 한다. 아무리 돈이 있고 마누라가 있어도 친구가 없으면 늘그막에 쓸쓸한 것이라며 좋은 친구를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젊어서야 이것저것 몇 가지 없어도 다 살아갈 수 있지만 늙으면 안 그래. 이 중 한 가지만 없어도 살기 힘들다고. 그러나 오복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뭐냐면 건강이야 간강. 마누라 있고 돈 있고 좋은 친구 있어도 건강 잃어버리면 다 끝인 거지. 우리가 산에 다니는 이유가 뭔가. 다 건강 때문이지. 안 그런가?"

광호 형의 오복 이야기와 태봉이 형의 베개 골동품에 대한 이야기에 어느덧 해가 기웃거린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광호 형의 이야기들이 그냥 떠나지 않고 마음에 자리 잡는다. 어찌 오복이 늙어서만 필요한 것이겠는 가만 얼마 있으면 육십을 바라보는 분의 이야길 들으며 절실히 공감하는 걸 보면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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