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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 첫날 동의대 본관 앞에서. (왼쪽부터 김창호, 장희창, 박동혁 교수)
복직 첫날 동의대 본관 앞에서. (왼쪽부터 김창호, 장희창, 박동혁 교수) ⓒ 김미라
김 교수와 박 교수는 1989년 학교 입시부정을 폭로한 죄로, 장 교수는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는 교수 시국선언에 참여한 죄 때문에 1987년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후 정권이 네 번이나 바뀌고 법원은 해임이 무효라는 판결도 내렸지만 내내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재단 측은 세 교수가 합법적인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되었을 뿐이라고 강변해 왔다.

이번 복직은 지난해 발효된 '대학교원기간제 임용 탈락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올초 교육부 교원소청심사 특별 위원회가 세 교수에 대한 재임용 거부 처분을 취소한 데 따른 것이지만 재단 측의 전향적 태도 변화도 한몫을 했다.

세 교수는 이날 오전 새 임명장을 받자마자 학생들이 기다리는 강의실로 향했다. 누구보다도 이들을 반긴 사람은 학생들이었다. 환영 플래카드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아이러니는 그 학생들은 세 교수가 학교를 떠날 즈음엔 겨우 두세살 어린애였다는 사실이다.

김석준 부산대 교수 등 민교협 소속 교수들도 꽃다발을 들고 이들을 찾았다.

시국 사건이나 학내 민주화 운동과 관련 부당하게 재임용에 탈락, 교육부의 재심을 통해 복직의 문이 열렸지만 실상 재단 측의 소극적 태도로 난관에 봉착한 교수들이 적지 않다. 이들 3명 교수의 복직은 다른 '해직 교수'들에게도 일단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 교수의 복직 과정을 지켜봐 온 주위 사람들의 심경이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은 우선 변화된 대학 풍토, 시대 상황과 일정 정도 길항(拮抗)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교수직을 걸고 갈망했던 민주주의·사회정의·공동체적 가치의 실현은 여전히 멀어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흑백이 명백해 보였던 지난 정치 권위주의 시대보다도 경제 제일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더 큰 과제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는 멀리 있지만

학생들의 환영 플래카드 앞에서 민교협 교수들과 함께. '복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는 글귀가 선명하다.
학생들의 환영 플래카드 앞에서 민교협 교수들과 함께. '복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는 글귀가 선명하다. ⓒ 김미라
박 교수는 "교육과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그것으로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했지만 정작 오늘의 사회적 상황은 더 악화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 교수가 변화된 시대를 능동적으로 사고하며 그 실천적 지성의 내공을 더욱 깊게 다져나가리란 건 분명해 보인다. 이번 학기에 '번역의 이론과 실제'라는 제목의 강의를 진행할 셰익스피어 연구자 김창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강의를 통해 영어 번역의 문제를 넘어서 나와 타인 간에도 끊임없이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참된 소통을 위해서는 나의 말도 그 뜻이 타인에게 잘 받아들여지도록 해야 할 뿐 아니라 타인의 말도 마찬가지로 올바르게 이해할 줄 아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학생들과 함께 얘기해 나갈 것입니다."

변화된 시대에 요구되는 참된 변화를 궁구하겠다는 박 교수도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는 마찬가지다. 공동체 의식이 예전보다 훨씬 약해지거나 상실되었다고 하는 학생들과 더불어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학자로서의 삶에 충실하겠다는 장희창 교수도 또한 그러하다.

장 교수가 독문학과 학생들에게 독어 학습도 하고 문학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위한 텍스트로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를 택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 작품은 "시대의 고정 관념을 깨고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교수의 너무나도 늦은, 그러기에 더욱 빛날 새로운 출발이 기대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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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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