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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겉그림.
<동물원에 가기> 겉그림. ⓒ 이레
누군가는 '일'이 곧 '행복'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고용주들이 그런 말을 자주 하는데 그 논리에 따르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곧 행복의 문을 연 것이 된다. 또한 일하는 것이 곧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되고 같은 논리로 남들보다 더 행복하려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런 말에 비하면, 알랭 드 보통의 글은 솔직하다. 그는 <동물원에 가기>에 담긴 에세이 '일과 행복'에서 '대놓고' 말한다. "이제 휴가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면, 일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쪽이 일을 견디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이것은 가식적인 것이 없는, 유쾌한 문장이다. 하지만 유쾌함은 문장만큼이나 짧게 끝난다. 일이 곧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여전히 일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문장 덕분에 그나마 슬픔을 다독일 수 있겠지만, 슬픔이 여전히 크다는 것도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에세이에 있는 분석을 토대로 생각할 수 있다. 그것에 따르면 일에서 행복을 얻기가 힘든 것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내세우는 것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스스로 내세운 것이 100인데 이룬 것이 50이라면 누구도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수치를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진심으로 '자기비하'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가 쉽게 그것을 낮출 수 있을까? 하기만 하면 좋지만, 실행하기에는 엄청난 고행이 필요하다.

그래서 두 번째 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간극을 매워주는 것을 찾는 것이다. 그 방법은 어렵지 않다. 일상을 새로이 보면 조금이나마 그것을 추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는가. 흔히 할 수 있는 사랑, 그림 감상 등은 물론이고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로이 찾아내는 일이 있다.

'사랑이 무슨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은 어리석다. "나는 누구인가?"가 "나는 그녀에게 누구인가?"로 바뀌게 하는, 불안하지만 그토록 기분 좋은 떨림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나아가 당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나는 누구여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나오게 하는, '진정성'에서 예로 보여주듯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없다면, 그건 정말 지루한 삶이다. 사람들은 자주 잊지만, 그것만큼 '길고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그림 감상은 무슨 의미인가? 알랭 드 보통은 '슬픔이 주는 기쁨'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예로 들며 그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알아채기? 그림의 시대적 의미를 파악하기? 아니다. 여기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알랭 드 보통은 그림에서 반기는 것은 '분위기'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림의 분위기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고, 그 과정을 거쳐 받아들인 이의 눈을 새로이 만들어주게 된다. 호퍼의 그림은 어떤가? 알랭 드 보통은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림으로 그리기 전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주유소, 리틀 세프, 공항, 기차, 모텔, 도로변 식당의 숫자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고.

<동물원에 가기>는 한발 더 나아가 '공항에 가기'에서 '심오한 철학을 가르치는 스승'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누구인가? 바로 비행기다. 왜 그런가? 경험이 있다면 떠올려보고, 경험이 없다면 상상해보자. 바로 차가운 비행기 창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세상을 보는 그 순간을.

고요한 가운데 구름이 보일 것이다. 아니, 구름이 없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적과 동료들, 공포나 비애가 얼룩지던 그 장소들이 까마득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등바등 거리던 그것들이 별 것 아니었던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심오한 철학을 알려주는 스승이라고 하는 것일 게다. 가벼워 보이지만, 날카로운 말이다.

그 동안 작가의 작품을 유심히 봤던 사람이라면 이러한 에세이들이 담긴 <동물원에 가기>가 낯익을 것이다. 작품들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다. 알랭 드 보통의 생각의 가운데서 주변을 관찰할 수 있는 재미가 있을 테니까.

알랭 드 보통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동물원에 가기>는 더욱 좋다. 괴로운 일을 잠시라도 잊고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간극을 메워주는 일인 셈이다.

호퍼의 그림 없이 말하기에 그림을 모른다면 따로 찾아봐야 하는 수고가 따르지만, "일은 행복"이라는 기이한 소리가 없을뿐더러 일상을 새로이 누리는 즐거움까지 알려주니 그 역할로써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이스크림 들고 동물원에 가던 그 기분과 재회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이레(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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