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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일보> 8월 25일자 1면
<전라일보> 8월 25일자 1면 ⓒ 전라일보
그런 때문일까. 종종 사설은 얼굴로 비유된다. 그때그때의 정치・경제・사회문제에 대해 독자의 시각에서 비평을 가하고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해설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많은 언론학자의 양적・질적 분석대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사설은 각 신문사가 내세우는 글의 완성도가 높다고 보고 대입 청소년들의 논술지도에도 종종 유용하게 활용된다.

그러나 아무리 주관적인 뉴스피처라고 하지만 사실에 근거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는다면 생명력을 잃은 뉴스와 다름없다. 건전한 여론형성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호남고속철, 온도 차 너무 큰 이유는?

호남고속철도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전국지와 지역신문들의 의제에서 묻어나는 온도 차가 극과 극을 달린다. 바로 사설에서다. <중앙일보> 사설이 단연 주목을 끌만 하다. 일관된 반대주장에선 집요함이 묻어난다.

‘정치적 산물’, ‘경제성 없음’을 줄곧 주장하고 있다. 논거가 초지일관 변함없음을 읽을 수 있다. 문제는 타당성과 진실성이다. 지역신문의 보도행태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진실게임을 벌이는듯하다.

<중앙일보> 8월 24일자 사설내용
<중앙일보> 8월 24일자 사설내용 ⓒ 중앙일보 인터넷신문 화면캡쳐
건설교통부는 지난 23일 호남고속철도 오송-광주 간 공사를 오는 2015년, 광주-목포 간 구간은 2017년까지 완공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호남고속철도 건설 기본계획이 최종 확정된 순간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제안한 사업이다. 20년 가까이 표류해 온 지역 현안사업이기도 하다.

<광주일보> 24일자 사설
<광주일보> 24일자 사설 ⓒ 광주일보
지역 언론사들은 일제히 흥분하며 쾌재를 불렀다. 남은 과제와 사업의 당위성, 기대효과 등을 크게 부각시켰다. <광주일보>는 24일 ‘호남고속철 재원확보가 최대 관건이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사업의 배경과 문제점, 선결과제를 제시했다.

“호남선 복선화사업에만 36년이 걸렸다”는 이 사설은 “호남고속철도사업은 조기 착공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제는 예산이 관건이라는 것. "10조5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의 조달계획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사설은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과 같이 진행되는 이 사업이 정치적 제스처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도로, 철도 90% 지연” 호남차별론

<전남일보> 24일자 사설
<전남일보> 24일자 사설 ⓒ 전남일보
이날 <전남일보>는 ‘국도건설에서도 호남차별인가’란 사설에서 지역개발 차별론을 들고 나섰다. 다소 뜬금없어 보였지만 그럴만한 속사정이 담겨 있었다. “광주와 전남・북을 잇는 48곳의 국도건설공사 가운데 43곳이 애초 계획보다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도로나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이 열악한 지역에서 90%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그 정도가 타지역에 비해 심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에서다. 전북지역 언론사들도 정읍역이 추가된 데 대해 고무적이었다. 1면에 묻어났다.

<전북일보>는 24일 1면에서 “호남고속철도에 정읍역이 정차역으로 추가돼 익산역과 함께 두 곳으로 늘었다”며 2017년 개통을 크게 기대했다. <전라일보>는 25일 1면에서 ‘호남고속철도 생산유발효과가 20조원에 달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전북일보> 24일자 1면
<전북일보> 24일자 1면 ⓒ 전북일보
“서남권 관광 활성화와 전라선 연계가 기대된다는 이 기사는 익산 정차역을 이용한 전라선 승객의 환승이 가능하게 됐다”며 “이동인구의 경제적 파급효과도 막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흥분을 <중앙일보>가 가라앉혔다. 사설로 찬물을 부었다. 24일 ‘적자 뻔한 호남고속철 왜 강행하나’란 제목의 사설에서다. “호남고속철은 누가 봐도 정치적 계산에 의해 추진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이 사설은 “무려 10조원이 넘는 국민 세금을 들여 적자가 뻔한 정치적 선심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런 뒤 말미에선 “호남지역 주민들도 허울뿐인 고속철의 환상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점잖게 타이르는 듯했다. “같은 돈으로 지역을 실질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은 많다”며 사설은 여운을 남겼다.

<중앙일보> 5월 1일 사설내용
<중앙일보> 5월 1일 사설내용 ⓒ 중앙일보 인터넷신문 화면캡쳐
“경제성 없는 호남고속철 강행 말라” 거듭 주장

지난 5월에도 <중앙>은 사설에서 이 같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호남고속철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란 사설(5월 1일)에서 “모두 10조6000억원이 들어가는 이 사업은 경제성이 없는데다 정치적 이유로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다”며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외에도 지난해 11월과 12월 <중앙>은 사설을 통해 호남고속철도에 대한 반대의 뜻을 되풀이함으로써 전국지 중 단연 의지가 돋보였다. 호남지역 언론사들의 의제와는 180도 궤를 달리했다.

<중앙일보> 2005년 12월 23일 사설내용
<중앙일보> 2005년 12월 23일 사설내용 ⓒ 중앙일보 인터넷신문 화면캡쳐
‘호남고속철 정치논리로 가면 안된다’(11월 14일), ‘경제성 없는 호남고속철 강행 말라’(12월 23일) 등, 사설 제목만 봐도 반대의 뜻이 분명함을 읽을 수 있다. 누군가는 정상궤도를 이탈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중앙>의 속내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일관된 논거에서 타당성은 있어 보이지만 객관성과 공정성을 의심케 한 때문이다.

“호남고속철 정치논리로 가면 안 된다”, “경제성 없는 호남고속철 강행 말라”, “호남고속철 원점서 재검토해야”, “‘적자 뻔한 호남고속철 왜 강행하나”라며 시종 부정입장을 취한 대신 경부고속철도 문제에 관해선 어땠을까.

관대하게 다뤘음을 두 사설에서 읽을 수 있다. 지난해 천성산 터널공사가 환경영향조사 문제에 터덕거릴 때다. <중앙>은 2005년 11월 29일 ‘천성산 터널 공사 다시 흔들려선 안돼’란 사설에서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공사가 또다시 갈등에 휩싸였다”며 “어렵사리 합의했던 환경영향 조사에 또다시 차질이 생겨 원만한 공사 진행을 방해하는 불씨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표했다.

경부고속철 터널공사엔 왜 관대했을까?

<중앙일보> 2005년 11월 29일 사설내용
<중앙일보> 2005년 11월 29일 사설내용 ⓒ 중앙일보 인터넷신문 화면캡쳐
“천성산 터널은 환경문제에 발목이 잡혀 표류를 거듭해 온 대표적인 국책사업”이라고 한 이 사설은 뒤에서 “터널공사 차질로 빚어진 경제적 손실이 2조5000억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또 <중앙>은 올 2월 7일 ‘신속한 재판으로 대형사업 낭비 없애야’란 사설에서도 새만금 소송과 함께 경부고속철도 구간인 천성산 터널공사 차질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다시 한번 지적하여 보였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 중에서 기사화되는 것은 몇 개 없다. 다시 말해 기사가 선택되는 것 자체가 주관적이다. 특히 많은 사건 중에서 신문의 지상을 통해 기사화되기 위해 선별되는 과정을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이라 한다.

여러 문(gate)을 통과해야 하는 게이트 키핑은 각 신문사의 관점이다. 각 신문사의 관점과 사시를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설이다. 그러나 사설이 아무리 주관적인 뉴스피처라고 하지만 공정성과 객관성,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진실성이 전제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중앙일보>와 호남지역 신문들, 양쪽 누군가는 공정성, 객관성, 더 나아가 진실성이 빠졌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논제가 마주 달리는 고속열차와 같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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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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