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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차지한 아들녀석.
컴퓨터를 차지한 아들녀석. ⓒ 이선희
아들은 이제 28개월이 되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내가 컴퓨터를 켜서 책을 사거나, 블로그를 보거나 할 때 흘끔거리더니, 지난 7월부터는 숫제 제가 컴퓨터를 독차지하고 앉았다.

내가 컴퓨터를 켜 놓을 때 유심히 보더니, 제가 떡 하니 컴퓨터에 앉은 다음부터는 사진도 보고, DVD player를 켜서 동영상도 감상한다. 또 새 폴더 만들기를 실행시켜 지빠귀부터 생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각종 '새 이름 폴더'가 바탕 화면에 즐비하다.

그뿐인가. 음악을 듣는 사이트에 들어가 음악도 듣고, 쥬니버에 들어가 각종 게임도 하려고 든다.

'이래선 큰일이 나지' 하는 생각이 든 나는 시작페이지를 영어 학습 사이트로 해 놓았다. 그랬더니 로마자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를 다 외워 이제 1학년인 제 누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물론이고 글자를 짚으며 파닉스 발음까지 낸다.

처음엔 내심 뿌듯했다. '아∼ 나도 영재를 키우는구나.' 옆에서만 보고 마우스를 사용하고, 컴퓨터를 이용하고 싶은 걸 하더니, 이젠 학습까지! 그런데 아들이 컴퓨터 곁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컴퓨터를 못할 때는 누나랑 놀고, 블록도 쌓고, 피아노 뚱땅거리느라고 정신없던 아이가 오로지 컴퓨터만 끼고 노는 아이가 된 것이다. 것도 이제 28개월 된 아이가.

컴퓨터 앞에서 자기 시작한 아들.
컴퓨터 앞에서 자기 시작한 아들. ⓒ 이선희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컴퓨터 앞에서 자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못하게 하면 떼를 하도 써서 그냥 놔두었더니 벌어진 결과이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 컴퓨터 앞에서 자는 아들의 모습을 두 번째 본 날 나는 컴퓨터를 아들의 눈에 띄지 않게 치워 버렸다. 처음에 아들은 애타게 컴퓨터를 찾았다. 그러나 단호한 나의 도리질에 차츰 포기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다시 이전처럼 블록을 쌓고, 책을 가지고 놀고, 누나에게 매달리며 생활했다. 아∼ 나는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그런데 얼마 후 28개월 된 아들이 컴퓨터를 조립(?)했다.

녀석은 제가 조립한 컴퓨터로 인터넷 웹서핑도 하고, 음악도 듣고, 동영상도 띄운다. 컴퓨터 조립 재료는 책이고 마우스는 블록이다. 그리고 소프트웨어와 통신망은 모두 아들의 상상 속에 있다.

아들이 조립한 컴퓨터를 사용해 웹서핑하는 모습. 서 있는 책이 화면, 바로 앞에 누워 있는 책이 자판이다. 초록색 블럭은 키보드.
아들이 조립한 컴퓨터를 사용해 웹서핑하는 모습. 서 있는 책이 화면, 바로 앞에 누워 있는 책이 자판이다. 초록색 블럭은 키보드. ⓒ 이선희
위에서 본 아들의 컴퓨터, 왼손에 잡고 있는 블럭이 마우스. 아들이 마우스라고 강력히 내게 주장하고 있다. 이 모습은 기가 막히기도, 우습기도 하다.
위에서 본 아들의 컴퓨터, 왼손에 잡고 있는 블럭이 마우스. 아들이 마우스라고 강력히 내게 주장하고 있다. 이 모습은 기가 막히기도, 우습기도 하다. ⓒ 이선희
제가 만든 컴퓨터로 웹서핑을 하는 아들을 보니 새삼 컴퓨터의 중독성을 느끼고, 아들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우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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