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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국제공항. 중간에 기둥 하나 없이 이렇게 넓은 집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신기하다. 집 아래 여러 부스에서 입출국 관리가 이루어지고, 매장별로 상품이 오고가고, 그 사이 무수한 사람들이 짐을 지고 오고간다. 도시에서 멀고도 멀리 떨어진 섬에서, 그것도 수많은 대형 항공기들이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것이 놀랍다.
ⓒ 박태신
자정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방콕은 서울보다 시차가 2시간이 늦습니다. 서울서 저녁 8시 반 정도에 출발, 5시간을 날아왔습니다. 열차를 타고 이 정도 시간을 타고 간 적이 여러 번 있기도 하고, 항공편도 이번이 두 번째 이용이라 지루한 줄을 몰랐습니다. 외국 여행도 처음이라 모든 것이 새롭기만 했습니다. 처음으로 우리나라 아닌 곳을 밟게 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벽에 부착된 대형 모니터에 제가 탄 비행기의 위치가 시시각각 표시되었습니다. 한밤중이라 태평양과 다른 나라를 날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가 여행은 육로로 움직여야 실감난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비행기는 땅에서 떨어지고 나서 생소한 곳으로 나도 모르게 몸을 옮겨놓습니다. 옮겨놓았다는 것이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륙할 때의 상승감과 가끔씩 기체가 요동치는 것, 그리고 엔진의 굉음 등이 이동의 증거가 되긴 하지만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에 엄청난 공간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항공 여행은 낯섦과의 조우입니다. 내리고 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바다조차 볼 수 없는 한밤의 그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공항에 내려 한국인 가이드를 맞이합니다. 3박 5일의 일정을 이끌어줄 이. 젊디 젊어 보이는 태국 운전사가 승합차로 우리 가족을 호텔로 데려다 줍니다. 호텔 안은 가운데가 꼭대기까지 비어 있는 사각형 모양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사각형이 두 개 붙어 있는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 1층에는 연못이 있습니다. 건물 안의 '은밀하지 않은' 정원.

퀴퀴한 냄새가 나는 호텔 룸에서 하룻밤을 머뭅니다. 침실 옆 탁자 위에 놓인 연필 한 자루와 메모지가 생경합니다.

▲ 태국 방콕에 있는 왕궁 옆 에메랄드 사원에 있는 '몬토프' 도서관 건물의 금빛 찬란한 창 장식.
ⓒ 박태신
왕궁과 에머랄드 사원

첫날 아침, 왕궁을 첫번째로 들릅니다. 왕궁 안내는 현지인 가이드만이 할 수 있다는 법 규정 때문에 태국인 가이드가 동승했습니다. 태국 국왕이 자기나라 사람들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만든 법이라고 우리 가이드가 그랬습니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타당한 법 같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복궁에 해당하는, 지금은 국왕이 살고 있지 않은, 1700년대에 세워진 왕궁과 그 수호신 격인 에메랄드 사원을 둘러봅니다. 사원의 정식 이름은 '프라케오 사원'이고 에메랄드 사원은 별칭입니다. 에메랄드 사원 안에는 황금 사원, 도서관, 대웅전, 앙코르와트 모형물 등이 있습니다.

황금사원은 금으로 온통 외벽을 장식했습니다. 가짜 금이라고 가이드가 덧붙입니다. 그 옆에 있는 '몬토프'라는 정방형 도서관은 창이 정말 화려했습니다.

ⓒ 박태신
대웅전 안은 신발 벗고 들어갑니다. 민소매 옷을 입은 사람은 출입이 안 되었습니다. 입구에 신발장이 놓여 있는데, 우리가 구경하는 동안 가이드가 신발을 지켜줍니다. 양말을 신지 않은 상태로 맨발로 대웅전 앞을 걸어가는데 느낌이 남달랐습니다. 맨발의 자연스러움이라고나 할까요.

집안에서 말고 맨발로 다닐 수 있는 곳이 사실 많지 않습니다. 발이 잠시 격식에서 해방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요. 산을 올라갈 때 숲 속을 거닐 때 발은 얼마나 자연과 벗하고 싶어 안달이었을까요. 양말과 구두, 또는 운동화로 에워싸인 평상시의 내 발은 무좀과 통증으로 대응합니다.

대웅전 안에는 부처상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많은 관광객들이 바닥에 앉아 있습니다. 벽은 온통 그림입니다. 부처상에 옷이 입혀져 있는데 국왕이 계절에 따라 다른 옷으로 입힌다고 합니다.

대웅전 맞은편 건물에서는 외벽의 벽화 복원작업이 한창입니다. 외국 귀빈을 영접하는 영빈관, 왕족들만이 결혼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연회장 등의 건물을 봅니다.

가이드가 이곳 왕궁 안의 화장실은 공짜라고 해서 의아해 했습니다. 알고 보니 일반 화장실은 3바트의 돈을 내고 이용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관광지 안의 화장실은 다 무료였습니다.

▲ 사원 옆 관리소 건물. 창밖에 늘어져 있는 창살이 독특한 멋을 풍긴다.
ⓒ 박태신
일본인 관광객과 중국인 관광객 무리를 만납니다. 현지인 가이드의 어설픈 발음을 듣고서 압니다.

햇볕이 따사롭습니다. 그 햇빛 때문에 황금 사원이 번쩍번쩍 빛을 발합니다. 관광객들이 홍수를 이룹니다. 왕궁 밖 차들도 도로를 가득 메웁니다. 그 사이를 뚫고 시장 골목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나라 재래시장 '먹자 골목'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 골목을 지나가니 커다란 강이 나옵니다. 차오푸라야 강입니다.

차오푸라야, 태국의 한강

차오푸라야 강은 서울의 한강과 같은 곳입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20인승 정도 되는 배에 올라탑니다. 이곳에서는 이런 배가 관광뿐 아니라 교통수단의 하나입니다. 강물은 깨끗하다고 합니다. 공장이 없는 태국에서 폐수 오염은 염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강 가장자리를 따라 수상가옥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허름한 가옥들이 많습니다. 서민들의 주거지입니다. 물 속에 나무 기둥을 박고 있는데 하중을 견뎌내는 것이 신기합니다. 비가 많이 내려 홍수가 나면 사람들은 임시로 대피하는데, 4시간 정도면 강물이 바다로 빠져나가고 그러면 다시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강둑을 따라 사원도 대학도 있습니다.

선착장 한 곳에 잠시 배가 머무릅니다. 강물 위에서 빛이 여러 곳에서 물결 따라 파동칩니다. 물고기들이 여행객들이 던지는 먹이를 받아먹으려 뛰어오르는 모습입니다. '사와이'라고 하는 물고기.

가이드가 물고기에게 "방생하세요" 합니다. 먹이를 주라고 합니다. 방생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내 같이 타고 있던 한 아낙네가 식빵 같은 빵을 건넵니다. 한 봉지 1000원.

이곳에서는 한국 돈 1000원이 1달러와 같은 값으로 그대로 통용됩니다. 태국 돈으로는 30바트 정도. 그러니까 1바트가 30원 정도 합니다. 제 바지 주머니에 바트 지폐와 한국 돈이 들어 있습니다. 어딜 가나 1000원이 통합니다. 음료수 하나, 바나나 한 묶음, 생수 두 병, 아이스크림 하나 그리고 팁으로 건네는 돈도 1000원입니다.

그런데 1000원 짜리 10장을 만원짜리로 바꿔달라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1000원짜리 10장보다 만원 짜리 한 장이 더 값어치가 나가는 모양입니다.

이곳에서는 팁 문화가 자연스럽습니다. 호텔에서 가방 들어준 이에게, 코끼리를 태워준 이에게, 팁을 건네주어야 후한(?)이 없습니다. 팁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동물 쇼를 진행한 사람에게 돈을 건네는 모습도 일상적입니다.

물고기에게 빵조각을 던지니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덤벼듭니다. 이곳 선착장에만 이 물고기들이 산다고, 그래서 똑똑한 물고기라고 가이드가 말합니다. "잘 먹거라, 잘 먹거라" 가이드가 물고기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 새벽사원.
ⓒ 박태신
가이드는 이제 강변에 자리잡은 '새벽사원'이라는 곳으로 안내합니다. 나사모양으로 오르막길이 만들어져 있는 75미터 높이의 돌탑 사원. 가까이 가니 장수들이 탑을 이고 있는 모습이 줄지어 있습니다. 그 나사 오르막길을 가로지르는 계단이 무척이나 가파릅니다. 저길 어떻게 오르나 싶을 정도로. 장수들 밑의 담장에는 그릇이 박혀 있기도 하고 꽃 모양의 조형물이 박혀 있기도 했습니다. 아주 섬세했습니다.

난간 사이로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머물고 있습니다. 인기척을 느끼자 이내 어미는 새끼들을 내버려두고 자취를 감춥니다. 이곳 고양이는 서울 주택가의 도둑고양이 같지 않게 여유롭습니다. 거리에서 본 한국 개보다 늘씬해 보이는 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위 탓 때문일까요.

이제 현지인 가이드와 헤어질 시간. 도로변에서 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내 우리를 배웅하고, 친구를 만날 듯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대는 모습을 차창 밖으로 봅니다. 외모와 다르게 나이가 40 가까이 되었습니다. 태국 사람들이 대체로 동안이라고 합니다. 유창하게까지는 아니더라고 한국말을 잘 합니다. "왔다리 갔다리"라는 말도 해서 우리들을 웃겼습니다.

우리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가이드라는 직업이 이곳에서는 고소득 직업에 속한다고 합니다. 아마 오후 안내 일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배우기 힘든 한국어를 익히느라 애를 먹었을 터.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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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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