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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표지
<자살>의 표지 ⓒ 도서출판 새움
"자살이라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의지를 지니고 자신의 생명을 해쳐서 죽음이라는 결과에 이르는 자멸행위다."

1968년에 세계보건기구가 내린 자살의 정의다. 자살의 정의가 이렇다고 하더라도, 자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궁금한 점들이 많다. 어떤 방법으로 자살하는가? 어떤 사람들이 자살 하는가? 그리고 왜 자살 하는가?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마르탱 모네스티에의 저서 <자살>은 이런 질문에 대한 책이다. 물론 이 책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는 광범위한 자료를 통해서 이런저런 유형의 자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선 주목할 만한 것은 자살하는 사람들의 숫자다. 이 책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서는 24시간 동안 1200명 이상이 자살하고, 8500명 이상이 자살미수에 그치고 있다. 1년에 45만 명이 전 세계에서 자살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인구 45만 명을 가진 도시 하나가 지구상에서 사라져가는 셈이다. 하지만 여러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자살과 관련된 각종 수치들이 실제보다 낮게 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실제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공식적인 발표수치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관객이 없으면 죽기도 곤란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한 만큼,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저자는 이런 자살의 방법을, 통계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작가나 예술가는 총으로 머리를 쏘는 것을 선호하고, 노동자는 목매달아 죽는 것을 좋아하고 매춘부나 부랑자는 투신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자살의 방법을 정한 사람들은 대부분 특정한 장소를 찾아가서 자살을 시도한다. 이들이 찾아가는 장소는 유명한 건축물이나 특정한 다리 등이다. 수백 명이 자살한 장소인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프랑스의 에펠탑이 대표적인 장소다. 자살자들이 이런 장소를 택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자살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고 그 장소의 유명세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다. 연극배우 무네 쉴리가 '관객이 없으면 죽기도 곤란하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저자는 또 자살의 원인에 대해서도 많은 사례를 유형 별로 제시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남녀간의 사랑을 포함해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자살, 빈곤으로 인한 자살 등등. 이 중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희생적 자살'이라고 이름붙인 자살의 경우다.

저자에 따르면 자살이냐 자기희생이냐 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판단에 의해서 구별된다. 사회가 그 행위를 인정할 경우, 사회는 그러한 자기 파괴를 자살과 동일시하지 않고 이것을 승화시켜서 '자기희생'이라고 한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2차대전 때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를 들고 있다. 가미가제뿐 아니라 이런 종류의 자기희생은 무엇보다도 군대라는 집단에서 많이 발생할 것이다. 전술상의 목적으로 자살 폭탄 테러를 종종 사용하는 팔레스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런 임무를 완수한 희생자들의 죽음을 숭고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기희생', 이성적인 동시에 논리적인 행위

군사적인 목적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저항을 목적으로 한 자기희생도 많다. 저자는 이러한 자살은 이성적인 동시에 논리적인 행위라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자살자가 자신이 자살함으로써 정부에 분노하는 여론을 만들어 정부당국에게 자살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성적이고, 이러한 사건은 설명하기가 쉽다는 점에서 논리적이다. 이러한 행동이 효과를 얻기 위해서 자살자는 무고하고 부당한 운명의 희생자로 보여야만 한다."

이런 류의 희생적 자살은 많은 나라, 여러 세기에 걸쳐서 수도 없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아마 전태일 열사의 경우일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자살인가? 아니면 공동체를 위한 자기희생이었나?

이외에도 이 책은 자살에 관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어떻게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지, 수 세기 전에 자살을 범죄로 규정한 나라에서는 어떻게 자살에 성공한 사람을 '처벌' 했는지.

그리고 자살하려는 사람을 도와주는 '자살클럽'과 안락사에 동조하는 의사들의 이야기까지. 프란츠 카프카는 자신의 의사에게 "의사 선생님, 제발 죽게 해주시오.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당신은 살인자나 마찬가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동물들도 자살을 할까?

동물들의 자살은 어떨까? 동물의 자살을 지지하는 권위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는 과학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동물의 자살에 대해서 반박하는 학자도 인정하는 사실이 있다.

동물에게도 자신으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는 행동을 하게 만들 수 있는 매우 강한 감정이 잠재해 있다는 사실이다. 주인을 잘 따르던 개가 주인이 죽은 이후에 스스로 굶어죽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자살을 생각해 본다. 그 중에서 일부는 직접 실행으로 옮기기도 할 것이고, 또 그 중에서 일부는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왜 죽으려고 하는 걸까? 예전에 어떤 사람은 '나 자신과 함께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쓰고 자살했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자살을 하건 그 이유를 곰곰이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는 '나 자신과 함께 살기 힘든'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친절하게도(?) 이 책에서는 갖가지 방법으로 자살한 시체의 사진 십수 장을 여과 없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사진들을 보고나면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마르탱 모네스티에 지음. 한명희, 이시진 옮김. 도서출판 새움.


자살 - 자살의 역사와 기술, 기이한 자살 이야기

마르탱 모네스티에 지음, 이시진 외 옮김, 새움(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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