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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픽쳐스
매일 월요일 저녁만 기다린다는 학생들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길이 막히지 않아서 평소 때보다도 일찍 도착했습니다.

오늘 수업에는 개인 사정으로 늦었거나 참석하지 못한 학생들이 있어서 최사운씨와 한국 영화에 대해서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영어로 나눈 이야기를 한국어로 쓴 것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 한국어 수업 수료식에 올 수 있어요?"
"아니오. 바빠서 못 가요. 그런데 <왕의 남자> DVD 사서 이미 봤어요."
"어땠어요?"
"아주 좋았어요. 세 사람 모두 연기를 다 잘 했어요."
"세 사람은 누구를 말하는 거예요?"
"왕하고 광대 두 사람이요."

이번 주 토요일에 한국어 수업 수료식을 갖고 학생들이 한 가지씩 가지고 온 한국음식을 나눠 먹으며 각자 수업에서 배운 것으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며 그 이후에는 <왕의 남자>를 한국영화의 밤 8월의 영화로 상영할 것이기에 최사운씨도 함께 올 수 있는지 여쭤본 것입니다.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이고 토요일에는 하는 일이 있어서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사운씨와의 대화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한국 드라마나 영화로 이어집니다.

"<왕의 남자>말고도 DVD를 하나 더 샀어요.".
"뭔데요?"
"<수취인불명>이라고 김기덕 감독 작품이에요." (최사운 씨는 김기덕 감독 팬이라고 했습니다)

DVD를 보여주며 DVD 커버에 적힌 한국 제목 <수취인불명>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었습니다.

"이 영화에 정말 연기 잘 하는 배우 나와요."

영화 <수취인불명>의 스틸 사진.
영화 <수취인불명>의 스틸 사진. ⓒ LJ필름
필자는 아직 <수취인불명>을 보지 못했으므로 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포스터로 확인해 봤습니다. 그 영화에는 양동근과 조재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주인공 양동근의 이름은 등장인물 명단에 적혀져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포스터에 있는 그의 사진을 보고 '양동근'이 주인공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배우 이름이 없네요."
"이름이 뭔데요?"
"'양동근'이에요."

직접 컴퓨터에 적어주었습니다.

"'양동근'"

컴퓨터 스크린에 비친 이 이름을 여러 번 읽으면서 외우는 듯 했습니다.

"이 배우는 혼혈아예요?"
"아니오, 혼혈아 아니에요."
"그런데 연기를 너무 잘 해서 혼혈아인 줄 알았어요."
"맞아요. 정말 연기 잘 하지요. 저도 팬이에요."
"그런데 '양동근'외에는 유명한 배우가 안 나오네요."
"아니에요. 이 배우는 아주 유명해요."

최사운씨가 가리킨 사람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배우였습니다. 최사운씨는 그 배우가 '조재현'인 줄 알았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조재현'이 아니라서 조재현이 아니라고 하자 최사운씨는 "이 배우 <나쁜 남자>에 나왔어요"라고 합니다.

그때서야 최사운씨가 말하는 사람이 조재현이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아! 맞아요. 그 사람도 아주 연기 잘 하는 유명한 배우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조재현'이라고 컴퓨터로 적어서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조재현, 조재현, 조재현' 그렇게 몇 번씩 읽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남편이 <한반도> 가져올 거예요."
"벌써요?"

사실, 필자는 아직 <나쁜 남자>도, <수취인불명>도, <한반도>도 보지 못 했습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사랑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앞으로 더욱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배우나 영화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선생님은 그만큼 학생들이 좋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영화를 매주 하나씩 빌려본다는 유대봉씨(한국 부인과 결혼한지 22년만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미국 아저씨-대장금 덕분에 본교를 찾게 되었습니다)도, <마이걸>을 열심히 보고 있는 전기명씨도, 남편이 들고 올 <한반도>를 기다리는 최사운씨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만들어낸 한국어 학생들인 것입니다.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앞으로도 훌륭한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1. <버클리지역 한국어교실-3>에 이어쓴 기사입니다.
2.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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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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