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8월 18일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각계 여성대표들이 모여 고 강원룔 목사 추모예배를 하고 있다.
8월 18일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각계 여성대표들이 모여 고 강원룔 목사 추모예배를 하고 있다. ⓒ 우먼타임스
18일 오후 8시 고 강원룡 목사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학병원 1층에서는 여성들만이 참석한 특별한 추모예배가 열렸다. 1970년대 고인으로부터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아 이후 한국여성운동의 기수가 됐던 크리스찬 아카데미 출신들을 비롯해 현재 여성계를 이끌고 있는 주요 인사 약 100명이 참석해 고인의 뜻을 다시 한번 기렸다.

크리스찬 아카데미 간사 출신인 이현숙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조용한 묵상으로 시작됐다. '평화'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인 행사장 바닥의 연보라색 천 주변을 둥글게 둘러싸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서명선 여성개발원장이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성경구절을 낭독했다.

"이 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라"(마태복음 5장 45절) 자기에게 이롭고 편한 것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모든 이들에게 공정하고 은혜를 배푸는 모습을 닮으라는 뜻이다.

참석자들은 고인이 직접 작사한 노래 '하나님 모습대로'를 추모의 마음을 담아 불렀고, 이어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이정자 전 시사저널 발행인이 차례로 나와 '추모의 말씀'을 올렸다.

추모예배에서 이인호 교수가 추모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추모예배에서 이인호 교수가 추모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 우먼타임스
안상림 전 교회여성연합회 회장이 기도를 드리자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졌다. 참석자들은 이혜경 여성문화예술기획대표의 주도로 손에 들고 있던 하얀 초에 불을 붙여 '평화'라는 글씨 위에 올려놓았다. 캄캄한 실내를 촛불이 환하게 비추며 '평화'라는 메시지를 그려내는 가운데 다시 한번 추모의 노래 '작은 세상'이 조용히 울려퍼졌다.

밤 9시까지 이어진 추모예배는 고 강원룡 목사를 위한 여성들의 기도문 '평안히 가시옵소서'로 마무리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이경숙, 이은영 열리우리당 의원, 신낙균 민주당 수석부대표 등 여성 정치인을 비롯해 정현백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유경희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등 여성단체장과 조안리 스타커뮤니케이션 사장 등 각계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한국 여성계의 대부 강원룡 목사

각계 여성대표들이 모여 진행된 고 강원룡 목사 추모예배에서 마지막 추모의식으로 추모식장 중앙에 놓여진 '평화'라고 쓰여진 글자위에 추모객이 촛불을 올려 놓고 있다,
각계 여성대표들이 모여 진행된 고 강원룡 목사 추모예배에서 마지막 추모의식으로 추모식장 중앙에 놓여진 '평화'라고 쓰여진 글자위에 추모객이 촛불을 올려 놓고 있다, ⓒ 우먼타임스
우리 사회의 지도급 여성인사들이 별도의 추도모임을 가질 정도로 깊은 존경과 애도를 표시한 고 강원룡 목사는 페미니즘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실천한 여성계의 대부였다. 이 땅의 많은 남성과 교회가 여성들에게 잠잠하라고 했을 때 그는 당당히 외치라고 말했고, 순종하라고 할 때 과감하게 행동하라고 했다. "여성이 해방되지 않고는 남성도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가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1965년 문을 연 크리스찬 아카데미(현 대화문화 아카데미)는 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요람인 동시에 우리나라 여성계의 최고 지도자들을 길러낸 산실이기도 했다.

한명숙 총리, 윤후정 이화여대 명예총장, 정의숙 이화학당 명예이사장, 신낙균 민주당 수석부대표, 이미경 열린우리당 의원, 이경숙 열린우리당 의원, 이계경 한나라당 의원,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김현자 전 한국여성정채연맹 총재, 장필화 이화여대 교수 등이 간사나 강사로 활약했다.

당시 수량적이고 서술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던 국내 여성연구 상황에서 고인은 서구 페미니즘 이론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며 젊은 여성들의 의식을 근본에서부터 뒤바꾸었다. 1974년 개시된 일련의 여성사회 교육은 국내 여성학 연구의 뿌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 참가자들은 1976년 여성사회연구회를 결성해 여성학과 가족, 성의 정치학 등을 함께 연구했다. 당시 회장을 맡았던 윤후정 이화여대 명예총장은 1984년 한국여성학회의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기도문

▲ 8월 18일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강원용목사 추모예배 참가 여성이 눈 물을 흘리고 있다.
평안히 가시옵소서

평안히 가시옵소서
사랑하는 강원룡 목사님
당신께선 돌연 우리곁을 떠나셨습니다.
‘여성 인간화’를 외치시던 목사님의 음성은
아직도 우리 귀에 쟁쟁한데
‘창조적 소수’가 되라며
뜨거운 열정 불어넣으시던
목사님의 숨결은 여전히 따뜻한데

목사님은 먼 길을 홀홀히 떠나시네요
가시는 걸음걸음 평안하시옵소서
당신의 딸들이 부르는 노래 들으시고
당신의 딸들이 열어놓은 이 꽃길을 따라
평안히 가시옵소서

당신의 소망대로 이 땅의 딸들이 모두 함박웃음 웃는 날
목사님도 큰 웃음 날려주세요

목사님 많이 사랑합니다
가시는 걸음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당신의 친구 예수 그리스도의 따뜻한 영접 받으시며
하느님 품으로
평안히 가시옵소서
아멘

댓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