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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화도 사람 김성배씨가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걷고 있다.
계화도 사람 김성배씨가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걷고 있다. ⓒ 김교진

지난 8월 1일부터 7일까지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 교사모임'(아래 환생교)에서는 전북 군산시 내초도부터 부안군 해창갯벌까지 새만금 갯벌 주변의 바닷길을 따라서 걷는 행사를 열었다.

'환생교'의 새만금 바닷길 걷기는 2003년 8월 시작했으며, 올해로 4번째다. 특히 올해 행사는 새만금 방조제가 준공되고 난 뒤 바닷길을 걷는 것이어서, 새만금 갯벌의 환경이 다른 해에 비해 많이 달라진 것을 참가자들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환생교'의 새만금 바닷길 걷기 일정 중 6일 문포부터 계화도까지 걷는 일정에 참여하였다.

6일 아침 8시, 계화도에 있는 갯벌 배움터인 '그레'를 출발한 환생교 일행은 계화도 주민들의 안내에 따라 바닷길 걷기를 시작하는 문포에 도착하였다. 아침부터 햇볕이 따가웠다. 6일 동안이나 8월의 무더위와 싸우며 바닷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05년 3월 초 계화도 어민들이 주최한 새만금 바닷길 걷기에도 참여했기에 하루 종일 좁은 제방이나 농로, 갯벌 위를 걷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더구나 강한 햇볕과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바닷바람이 세게 분다고 해도 쉽게 날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름 바닷길 걷기는 자연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고행의 길이다.

교사와 학생들이 계화도 쪽 제방 옆을 힘들게 걷고 있다.
교사와 학생들이 계화도 쪽 제방 옆을 힘들게 걷고 있다. ⓒ 김교진

환생교의 정진영 교사는 "2003년 성직자들의 삼보일배 후 갯벌을 위해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이 바닷길 걷기 행사를 시작했다"며 "지역주민들도 새만금 바닷길 걷기 행사를 해 왔지만, 이번 행사는 교사들이 시간을 낼 수 있는 여름 방학을 이용해 교사와 학생을 중심으로 해 바닷길을 걷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닷길 걷기가 끝나기 하루 전날이었음에도 참가자들에게서 힘든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5일 동안이나 걸었으니 힘들다고 꾀부릴 만도 한 초등학생들도 더위를 무릅쓰고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바닷길 걷기 참가자들이 무더운 여름날 더위를 참으며 걷고 있다.
바닷길 걷기 참가자들이 무더운 여름날 더위를 참으며 걷고 있다. ⓒ 김교진

걸음을 잠시 멈춘 교사와 학생들이 노래부르고 춤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걸음을 잠시 멈춘 교사와 학생들이 노래부르고 춤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김교진

교사들과 학생들은 걷다가 지치면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노래를 부르고, 주위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알아보며, 갯벌의 동물과 식물을 찾아보는 등 자연을 학습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더운 여름이라서 종일 걷는 건 어렵기 때문에, 점심 식사 후 2시간 정도 낮잠도 자고 놀기도 한 뒤 햇살이 약해지기 시작한 오후 3시쯤부터 다시 걷기를 시작하여 저녁때까지 걸었다. 행사 기간 동안, 지역주민들의 협조 덕분에 마을회관이나 교회 등에서 잘 수 있었으며 자기 전에 그날 걸었던 소감을 얘기하고 지역주민을 모셔서 그들의 고충을 들어보는 시간도 마련했다.

'환생교'의 바닷길 걷기는 단순히 걷기 위한 행사가 아니다. 갯벌의 생명과 교감하고, 걸으면서 만나는 지역주민과 희망의 씨앗을 나누기 위한 행사다. 또한 즐겁게 걷고 소박하게 먹으며, 서로 도와주고 항상 감사하며, 새만금의 희망을 품고 나누는 게 '환생교'의 바닷길 걷기 원칙이다.

매년 새만금 바닷길 걷기에 참가하고 있다는 초등학교 교사 박은경씨는 "갯벌이 작년하고 올해하고 완전히 다르다"며 "갯벌이 사막같이 변했고 갯벌에 조개와 게 등이 많이 죽어 있는 것을 보고는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에게 죽은 갯벌을 보여 줘야 하는 게 미안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서 말라버린 새만금 갯벌. 이곳은 항상 바닷물이 차있던 고랑이었다. 그러나 이제 바닷물은 없고 죽은 조개들만 보인다.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서 말라버린 새만금 갯벌. 이곳은 항상 바닷물이 차있던 고랑이었다. 그러나 이제 바닷물은 없고 죽은 조개들만 보인다. ⓒ 김교진

사막처럼 변해버린 새만금 갯벌. 이런 와중에도 육지 식물이 자라기 시작했다.
사막처럼 변해버린 새만금 갯벌. 이런 와중에도 육지 식물이 자라기 시작했다. ⓒ 김교진

학교 선생님을 따라서 매년 참가했다는 서울 미양초등학교 6학년 오한아 학생은 "며칠 동안 바닷길을 걸으니 힘들었고 어떤 때는 걷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새만금 갯벌을 생각해서 참고 걸었다"고 말한 뒤 "1년 사이에 갯벌이 많이 변했다"며 아쉬워했다.

오한아 학생은 "작년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자마자 질퍽질퍽했는데 지금은 한참 들어가야 겨우 젖은 갯벌이 나왔으며, 작년에는 손으로 조금만 파도 백합이 잡혔는데 이번에는 잘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쉽게 눈에 띄던 게들도 이젠 물이 있는 곳으로 많이 나가야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속상하다"며 "바닷물이 들어왔으면 좋겠고 새만금 갯벌에 미안했다"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갯벌에서 죽은 조개가 많이 보였다.
갯벌에서 죽은 조개가 많이 보였다. ⓒ 김교진

이날 '환생교'의 회원 교사와 학생 뿐 아니라 시민단체 활동가, 계화도 주민과 외국인까지 합쳐서 40여명이 참여했다. 캐나다에서 온 니컬라스 루소(Nicolas Rousseau)씨는 한국의 새만금 갯벌을 위해 5일 동안이나 바닷길을 걷고 있었다.

김성배, 김종덕, 고은식씨 등 계화도 주민들은 길 안내도 해주고 시원한 물과 간식도 제공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고은식씨의 딸인 중학교 2학년 은별이는 보름 전에 어머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음에도, 슬픔을 참고 바닷길 걷기에 참가해 처음부터 끝까지 걷고 있었다. 은별이는 1주일이나 걸리는 바닷길 걷기를 9번이나 한 바닷길 걷기행사의 고참이다.

계화도 소녀 고은별과 또다른 참가자가 손잡고 함께 걷고 있다.
계화도 소녀 고은별과 또다른 참가자가 손잡고 함께 걷고 있다. ⓒ 김교진

이날 걷기는 아침 8시에 시작하여 오후 1시에 끝이 났다. 점심으로는 계화도 '그레'에서 지역주민들이 마련한 카레밥을 먹었다. 잠시 쉬다가 오후 5시에 갯벌체험조와 계화산 산행조로 나뉘어서 갯벌에 들어가거나 산에 올랐다.

나는 6명의 아이들 및 2명의 교사와 함께 고은식씨가 안내하는 계화 갯벌로 갔다. 갯벌체험 참가자들은 맨발로 갯벌을 걸었다. 갯벌에 널려있는 죽은 조개들의 껍데기를 밟으면 발에 상처가 날 수가 있기 때문에 조심해서 걸어야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뛰어 다니며 장난쳤다. 하지만 한참을 걸어도 딱딱해진 갯벌만 있고 바닷물이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더 가야 바다가 나오느냐며 힘들어 했다.

방조제가 막히기 전엔 갯벌 쪽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도 조개나 게를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몇 십 분을 걸어야 겨우 바닷물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 또한 그 흔하던 조개나 게들도 이젠 살아있는 것들을 찾기 힘들다. 최근 몇 달 동안 새만금 갯벌은 심각한 변화를 겪었고 앞으로도 이보다 더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바닷물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바지를 걷고는 무릎이 빠지는 깊이까지 들어가서 물을 튕기며 놀기 시작했다. 우리는 해 지는 저녁이고 물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어, 아이들에게 멀리 들어가지 말라고 말하며 아이들을 지켜봐야 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들이라 조심해야 했다. 방조제만 막히지 않았으면, 이렇게 멀리 들어오지 않더라도 얕은 갯벌에서 생태체험을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이젠 보이는 것이라고는 죽은 조개뿐이다. 또한 그것을 밟으며 걸어 들어온 먼 갯벌에서는 조개, 게, 망둥이 등 갯벌 생명은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다.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지기 시작했다. 새만금 갯벌의 해넘이는 언제 봐도 아름답지만 갯벌의 현실은 무섭다.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 갯벌 생명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계화도에서 만난 도요새. 앞으로 이곳에서 도요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계화도에서 만난 도요새. 앞으로 이곳에서 도요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 김교진

아이들은 한참 걸어서 갯벌에 들어왔음에도 살아있는 것을 하나도 볼 수 없어서 실망하였지만, 다행히 갯벌에서 나오면서 얕은 물속에서 살아있는 조개를 잡고는 즐거워했다. 해가 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금방 어두워졌고 하늘엔 밝은 달이 떴다.

우리는 어두워진 갯벌을 걸어 나오며 '환생교' 선생님들이 만든 '새만금을 만나면'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새만금을 만나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습니다.
슬퍼서 아름답고 기뻐서 아름다운 땅과 사람들 함께해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해 지는 갯벌에서 학생들이 갯벌 체험을 하고 있다.
해 지는 갯벌에서 학생들이 갯벌 체험을 하고 있다. ⓒ 김교진

새만금 방조제가 막혔어도 새만금 바닷길 걷기는 계속될 것이다. 제4회 '환생교' 바닷길 걷기에 참가한 교사와 학생을 비롯해 아직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새만금을 노래할 것이며 새만금 갯벌에 바다생물들이 살 수 있게 힘쓸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갯벌을 물려주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 될 터인데 눈앞의 불확실한 이익 때문에 갯벌을 자꾸 메우자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한국의 갯벌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러나 한국의 갯벌과 자연을 사랑하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있기에 우리 환경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믿는다.

덧붙이는 글 |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 홈페이지(http://konect.kt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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