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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야, 내 일요일(13일)날 서울 간다."

일요일 저녁 동생이 서울로 왔다. 내가 자취를 시작한 이후 첫 방문이다. 이제 갓 스무살인 내 동생은 누나집 첫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빈손으로 나타났다. 이 녀석 들어오자마자 에어컨 틀어 달라, 치킨 사 달라 난리법석이다. 우선 치킨부터 사줬다.

한 마리를 뜯어대더니 이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컴퓨터를 하기 시작한다. 방이 점점 어질러지고 있다. 나는 점점 속이 들끓기 시작한다. 동생은 이런 누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혼자 신났다. 피곤했는지 컴퓨터 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드디어 조용해지고 잠을 잘 수 있었다. 아니 그런데 또 시작이다.

"누나야, 에어컨 틀어도! 좀!"
"만원어치만 틀어도! 내가 갈 때 만원 고이 올려놓고 갈께"

전기세 많이 나온다는 나의 말에 이어 나오는 말이 너무 귀여웠다. 이렇게 말하는 동생에게 안틀어 줄 수 없었다.

다음날부터 시작된 동생의 쏠쏠거림은 목요일까지 지속되었다.

이제야 드디어 가는구나!

목요일 아침이 밝았다. 어느 덧 동생이 온지도 5일째가 되어간다. 드디어 가는 날이다. 학원이 끝난 뒤 어제 먹고 싶다던 햄버거를 사들고 집에 들어오니 아직도 자고 있다. 이젠 드르렁 드르렁 코까지 곤다. 또 다시 속이 끓어오른다. 이 자식이! 허나 '오늘이 마지막인데 마지막인데'라 되뇌이며 참았다.

경복궁을 들렸다 집에 갈 계획이랬다. 기차표나 버스표를 먼저 구해야 되지 않겠냐는 나의 말에 버스터미널에 가보면 다 있을 거라 대답했다. 난 동생의 말을 믿었다. 나 역시 설마 없겠나 싶었다.

씻고 나가는 동생에게 억만금의 용돈(동생에게 용돈을 줄때면 '억만금'이라 표현한다)과 편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역시 돈이 좋긴 좋은가보다. 동생의 얼굴 근육이 부드러워지며 목소리까지 한층 밝아진다.

"누나야 잘 있어래이. 간다."
동생이 간 뒤 한 시간 반 동안 이불빨래와 화장실, 방 청소로 땀을 삐질삐질 흘려댔다.

5초간의 정적, 아뿔싸!

저녁 6시 반쯤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 간다고 연락이 온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심야 전 있는 7시 마지막 버스가 매진이라는 소식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심야를 타고라도 내려갔으면 싶었다. 왜냐구?

▲ 7시 버스표가 매진임을 확인하고 연락한 문자
ⓒ 권예지
형제나 남매가 부모 밑이 아닌 따로 같이 살아보면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리라. 나는 며칠같이 있었는데 끊임없이 티격티격 거렸다.

서로 다른 생활 패턴과 습관, 누나와 동생이라는 위치는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웃으며 이야기하고 진지한 이야기도 했다.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낭만은 짧고 현실은 길다고.

다시 전화가 울렸다. 5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동생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온다. "누나야, 내 다시 갈게. 누나야집에. 밥 먹었나? 내 고기 먹고 싶다. 맛있는거 사갈게" 이불도 다 빨고 청소도 다 해놨는데, 용돈도 다 주고 웃으며 인사까지 했는데 다시 돌아온단다. 그저 웃음만 나왔다.

이 상황을 알게 된 부모님은 태풍이 오고 있는데 빗길에 버스를 타는 것은 위험하다며 어서 내려오라 다그쳤다. 동생은 동서울터미널에 있었다. 강남고속터미널을 알아보니 9시 표가 남아있었다.

동생 집에 보내기 프로젝트

'동생 집에 보내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강남고속터미널로 가서 9시 차를 타라고 알려줬다. 동생도 엄마와 통화를 한 뒤 집에 가겠다고 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내일(18일)표를 사놓은 걸 다시 환불하고 강남고속터미널로 향하게 했다. 나의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혹시 길을 잃어 9시 차를 놓치면 어떡하나 싶었다.

▲ 7호선 고속터미널 역에서 내린 뒤 동생의 연락
ⓒ 권예지
잔여석이 남아있는지 동생이 강남고속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지켜봤다. 갑자기 고속터미널 역이 복잡하게 되어있던 것이 기억났다. 아니나 다를까 동생은 문자가 왔다. 난 또 '덜컹'했다. 이 녀석 장난치는 거였다. 표를 샀다며 연달아 문자가 온다. 약 두 시간 동안 컴퓨터를 뚫어지게 쳐다봤더니 눈이 아파왔다.

8시 49분 문자가 도착했다. 잔여석 확인을 해달라는 문자다. 여유로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나는 또다시 분주해졌다. 컴퓨터를 켜고 잔여석을 확인하고 있는데 이유인 즉, 자리가 마음에 안 들어 바꾸고 싶었단다. 정말 뛰어가서 콱 쥐어박고 싶었다.

▲ 좌석을 바꾸고 싶어 보낸 문자를 보고 순간 놀랐다. 누나를 그렇게 놀래키고 동생은 돌아갔다
ⓒ 권예지
이제는 정말 간다. '탓다 이제 출발한다 안능' 문자를 마지막으로 동생은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잠시였지만 떠난 자리는 그래도 허전하다

지금 냉장고에는 동생이 먹다 만 음료수가 남아있다. 괜히 일찍 보냈나 싶기도 하다. 동생이 가면 편하고 좋을 줄만 알았는데 허전하다. 워낙 서로 장난도 잘치고 잘 놀아서 그런 걸까? 심심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혈육이라는 피가 섞여서 그런가?

오늘따라 툭툭 내뱉는 경상도 소년의 무뚝뚝한 말투가 그리워진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권예지 누나야'라고 부르는 내 동생.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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