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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시내에 위치한 TTC 영화관.
제천 시내에 위치한 TTC 영화관. ⓒ 권오성
13일 일요일 오전, 제천역은 한가했다. 무료한 일상을 떠올리는 여름 햇볕이 가장 먼저 낯선 여행자를 반겨주었다. 역 앞 임시로 설치한 안내소에서는 친절하게 영화제 장소를 조목조목 알려주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라는 말에 순환 버스나 택시 타기도 뭐해서 그냥 걸어서 가기로 했다.

축제 기간 동안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두 군데에 불과했다. 제천 시내에 있는 TTC 상영관과 여기서 40여 분 거리에 있는 청풍호반의 야외무대. 시내 중심에 위치한 '문화의 거리'에서는 여러 이벤트와 공연으로 시민들을 만났다.

'문화의 거리'와 상영관

정오 무렵 '문화의 거리'는 행사장을 꾸미는 사람 이외에는 거의 발길이 없었다. 음식점에서 점심을 기다리거나 거리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젊은 연인과 친구들이 잠깐씩 보였을 뿐, 세련된 상점들은 모두가 꽤 조용한 편이었다. 한여름 낮 일요일의 전형적인 거리 풍경이었다.

약간의 포만감을 갖고 거리 의자에 앉아 금방 인쇄되어 나온 '영화제 공식 일간지'를 펼쳤다. 12일 열렸다는 영화음악 저작권과 관련한 포럼 기사를 먼저 읽고 나니, '주말 맞아 관객점유율 80% 이상'이라는 꼭지가 눈에 띄었다.

'문화의 거리' 풍경.
'문화의 거리' 풍경. ⓒ 권오성
미리 예매를 하지 못한 관계로 안내지에서 유심히 살펴본 영화 입장권을 구입했다. 애초 저녁에 있을 청풍호반무대를 노리고 왔고 마땅히 입맛을 돋우는 영화가 없었지만, 그때까지 작은 도시의 무더운 거리를 활보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직 상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행사장 주변을 거닐었다.

상영관 자원봉사자 중 눈길을 끄는 중년의 여성분들이 있었다. 입장권을 발행하는 뒤편에서 유쾌하고 친절하게 안내 책자를 나눠주는 중이었다. 대화 중 알고 보니 작년에 이어 2년째 자원 활동을 하고 계신단다. 올해에는 타지 젊은 자원 활동가들이 더 많아졌다며 영화제 인지도도 차츰 높아질 것이라고 밝은 얼굴로 말했다. 저녁때는 청풍호반 무대에 갈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편하게 즐기면서 활동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영화제의 진정한 자산이 무엇일지 떠올려 봤다.

TCC 영화관 내부 풍경.
TCC 영화관 내부 풍경. ⓒ 권오성

자원 활동에 참여한 제천 시민.
자원 활동에 참여한 제천 시민. ⓒ 권오성
'아이슬란드의 외침' - 음악에 대한 열정

오후 2시 1관에서 <아이슬란드의 외침>(감독 아리 알렉산더 에르지스 마그누손)이 상영됐다. 인구 30만 나라에서 90여 개 음악학교, 100여 개 오케스트라와 고적단, 6000여 명 합창단원, 2000여 개 록 밴드가 활동하는 경이적인 사실에 처음부터 놀랐다. 영화 <어둠 속의 댄서>의 주연 배우로도 유명한 '비욕'(Bjork)의 나라, 그저 춥고 황량한 나라라는 기억밖에 없는 아이슬란드의 음악 저력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막힌' 기회였다. 영화 선택을 잘 했다는 안도감과 우쭐함이 잠시 교차했다.

영화 속에서 어떤 이가 그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열악한 자연 환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제 나라에서는 보통 250장도 안 팔리기 때문에, 저마다의 개성을 담은 '쓰레기(crap)' 음반을 내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란다. 어쨌거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계속해서 듣는 것은 색다른 영화 재미였다. 그런데 음악과 노래의 질을 향상시키기보다는 음반이 안 팔려 죽겠다고 '엄살'(?)만 떠는 우리 음악계가 떠오른 건 무슨 연유였을까!

'원 서머 나잇 네 번째 밤-파티 라이브'

상영관을 나오면서 문화의 거리를 한 차례 더 볼까 하다가, 순환 버스를 타고 청풍문화재단지로 넘어왔다. 말로만 듣던 '청풍명월'의 경치에 소리 없이 감탄하면서 발을 디뎠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한참 동안 잠자코 주위 풍경을 바라다 봤다. 신나게 번지점프를 하고 소리치는 사람들 속에서 난감해 하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호수와 산이 주는 눈앞 풍경을 만끽했다.

청풍호반의 풍경.
청풍호반의 풍경. ⓒ 권오성
드디어 7시가 넘어서부터 '원 서머 나잇 네 번째 밤-파티 라이브' 입장을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주요 행사라고 할 수 있는 '원 서머 나잇'은 청풍호반 야외무대에서 영화와 음악 공연이 만나는 형식이다. 다른 영화제와 차별성을 가지는 대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부지런을 떠느라고 거의 맨 앞에 줄을 섰는데, 생각보다 입장객이 적고 차분하다. 어제, 그러니까 12일 저녁 무대는 '윤도현밴드'가 와서 물경 5천여 명으로 북적댔다고 했는데….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영화제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은 투로 들떠서 얘기하는 걸 아까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는데.

청풍호반무대에서 본 관객들.
청풍호반무대에서 본 관객들. ⓒ 권오성

'홀드 업 앤 다운'의 야외 상영.
'홀드 업 앤 다운'의 야외 상영. ⓒ 권오성
잠시 뒤 입장하기 시작했다. 약간 걸어 무대와 객석에 도착하니 조금씩 자리가 차기 시작했다. 영화 <홀드 업 앤 다운>(감독 사부)이 시작될 즈음에는 적어도 500여 명은 넘어보였다. 코미디 형식을 취한 이 영화는 꽤 웃음을 끌어내고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드디어 많은 이들이 고대하던 음악 공연이 시작했다. 일단의 젊은이들이 앞으로 뛰쳐나오며 발광할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이에 부응하듯이 인디밴드 타카피와 슈퍼키드, 힙합 뮤지션 데프콘이 밤늦게까지 무대를 달궜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밤은 깊어갔다.

슈퍼키드 공연 모습.
슈퍼키드 공연 모습. ⓒ 권오성

관객과 함께 하는 '데프콘'의 공연.
관객과 함께 하는 '데프콘'의 공연. ⓒ 권오성

'타카피'의 공연.
'타카피'의 공연. ⓒ 권오성
못다 한 이야기

영화제 기간 동안 머무르며 만난 자원봉사자와 기획자들. 그들의 말과 표정을 보면 그들이 영화제의 가능성에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오며 만난 주민들이 말하는 평가는 달랐다. 대략 다음과 같다.

엄청난 적자를 내는 영화제가 이 작은 도시에서 무슨 소용인가(버스 운전사 아저씨), 영화제에 대한 제천 시민의 시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저녁 공연을 함께 본 노부부).

겨우 세 사람의 '불만'만으로 영화제에 대한 평가를 내리긴 힘들다. 또한 영화제가 하루아침에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축제로 성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몇 마디만큼은 주최측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어느 영화제고간에 조직위원회와 단체장만 주도하여 치러질 경우, 생각이 다른 단체장이 들어서면 예기치 못한 파국이 생길지 모른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의 여론이며, 주민과 얼마나 내실있게 소통하고 있느냐는 사실이다.

아무리 유명하고 우수한 외부 기획자가 오더라도 제천 시민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 부실하다면 이는 모래성을 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점을 주최 측은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06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8월 9일부터 14일까지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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