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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황포돛배. 2004년 충북 괴산에서
ⓒ 한지숙
여름의 끝자락인데도 숨차 오르게 후끈한 기운은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모른다. 모기들이 소소거리는 댓잎 사이로 여전히 극성이니 좁은 방 안에서 뱅뱅 돌고, 습하고 냉한 방바닥을 달구느라 폭염으로 지글거리는 날 아궁이에 불까지 때고 있으니 내리 땀과의 싸움이다. 그나마 소나기 한 줄기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목덜미에 들러붙는 서늘한 바람 덕에 견디기는 한결 나은 편이다.

▲ 쪽물에 스카프 물들이기
ⓒ 한지숙
염색 공부하는 친구들과는 규칙적으로 2주에 한 번은 만나지만 중간 중간 전화 연락으로 서로의 작업과 일상을 나누곤 한다. 그들은 올여름에도 자기와의 싸움에 몰두하며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두어들이듯 그들만의 잰 손놀림에 속도가 붙고 있다.

봄에 쪽을 심은 친구들은 이맘때면 그 쪽을 모두 베어내느라 고생이다. 텃밭 한 귀퉁이에 조금 심은 것도 아니고 수백 평 너른 땅에 심은 쪽을 모두 베어내는 작업을 즐겁게 해치우는 그들. 생쪽으로 물들이고 두고두고 쓸 수 있는 니람(발효쪽)까지 갈무리하며 한여름 뙤약볕 아래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 물들이는 작업에 기대하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의 예고이리라.

▲ 인견에 쪽물염. 마산의 이아무개님 작품
ⓒ 한지숙
8월이면 또 감물염색으로 종종거린다. 동전 500원짜리 크기 정도의 땡감을 모아 감즙을 내리고 볕 좋은 날이면 감물염도 해야 한다. 적은 양의 감즙을 내린다면 큰 문제없지만 많은 양을 얻으려면 이 또한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많은 양의 땡감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거니와 즙을 내리고 보관하는 것도 수월치 않은 일. 간절히 소망하는 만큼 하늘의 볕도 흔들리지 않고 며칠 이어지면 좋겠지만 비가 온다든지 바람이라도 거칠게 불어대면 감물염은 또 세차게 도리질하며 저만치 내빼겠지.

▲ 사진 속 감보다 조금 작은 500원짜리 동전만 할 때 따서 물들인다
ⓒ 한지숙
온몸이 뻐근하기도 입술이 부르트기도 했을 염색장이들의 여름 작업은, 잠시도 마음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시간의 이어짐이다. 친구들은 이런저런 작업들에 분주한데 정작 더 바쁘게 뛰어다녀도 될까 말까한 나는 어정쩡한 품새로 한가로이 계곡에 놀러 다니고 휴가 내려온 벗들과 유쾌한 시간에만 빠져들었다.

▲ 감물염 10일째 발색중. 보름 발색하는 동안 단 하루만 비가 와 다행이었다
ⓒ 한지숙
다리를 다쳤다. 비가 잦아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을 통 내지 못하다 볕이 반짝 뜨락으로 쏟아져 내린 날, 들뜬 마음에 허둥거린 것이 실수였을까. 정련천을 한가득 채우고 펄펄 삶아댄 찜통을 세탁기로 옮기다 잠깐 기우뚱하는 사이에 나의 왼다리로 뜨거운 물을 엎었다.

병원에 다닌 지 2주를 넘기며 붕대를 푼 오늘, 뻗정다리에서 해방되었다. 물이 닿아도 된다니 이젠 늦깎이에 남겨질 흉터만 속상하다. 양껏 작업을 할 수 없는 때, 오히려 이참에 좀 쉬어가라는 하늘의 뜻인가 하여 덕분에 잘 쉬었지만, 마음 한쪽 내내 꺼둘리던 작업에 대한 조바심과 이제부터 밀린 작업에 쏟아야 할 땀은 또 어찌 풀어갈지 걱정이다. 불편해 보고야 편안함과 고마움을 깨닫는 것일까,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흐르는 변수에 좀더 긴장하고 겸손할 일이다.

▲ 경남 하동 악양의 계곡
ⓒ 한지숙
나만의 홀로 작업이라 하루하루 흐르는 날짜와 요일의 개념이 선명하지 않은 편. 며칠 전 '입추'와 '백중'을 넘겼다는데 몸 움직이는 것으로부터 욕심을 떨군 대신 엉뚱한 방향으로 손과 눈만 바빠졌으니 애꿎은 컴퓨터만 몸살이다.

여행이며, 작업 사진 등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사진들을 뒤적거리며 지난 시간을 쫓아간다. 재작년 이맘때 충북 괴산에서 보낸 백중날의 하루에 머물며 '황포돛배' 따라 늘렁늘렁 흐르는 시간, 올여름 나의 운수는 '어정 7월 동동 8월'의 예고편이었을까.

덧붙이는 글 | 7월과 8월은 쪽염과 감물염의 계절,
신명나게 물들이는 친구들이 부럽습니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www.naturei.net)',
'조간경남'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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