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변강쇠와 옹녀. 서로 다른  표정이 웃음을 준다.
변강쇠와 옹녀. 서로 다른 표정이 웃음을 준다. ⓒ 김현

“열다섯에 얻은 서방(書房) 첫날밤 잠자리에 급상한(急傷寒)에 죽고, 열여섯에 얻은 서방 당창병(唐瘡病)에 튀고, 열일곱에 얻은 서방 용천병에 펴고, 열여덟에 얻은 서방 벼락맞아 식고, 열아홉에 얻은 서방 천하에 대적(大賊)으로 포청(捕廳)에 떨어지고, 스무 살에 얻은 서방 비상(砒霜) 먹고 돌아가니, 서방에 퇴가 나고 송장 치기 신물난다.”

변강쇠 공원의 계곡
변강쇠 공원의 계곡 ⓒ 김현

'변강쇠 타령'에 나오는 옹녀에 대한 이야기다. 변강쇠와 옹녀. 한때 많은 선남선녀들의 동경과 질시의 대상이기도 했던 변강쇠와 옹녀가 사랑을 나누었던 곳이 있다. 남원 동면 인월리의 지리산 기슭의 뱀사골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변강쇠 공원’, 일명 ‘백장공원’이다.

백장공원은 변강쇠와 옹녀가 만나 질펀하게 쾌락을 나누었던 곳으로 ‘변강쇠 타령’의 작품 속 배경이 되는 곳이다. 작품 속에서 옹녀는 나이 열다섯에 처음 서방을 얻었는데 남편이 첫날밤에 죽게 된다. 그 뒤로 스물이 될 때까지 매년 서방을 얻었는데 얼마 살지 못하고 죽게 된다. 죽은 이유가 여러 병으로 나타나지만 결국은 옹녀의 음기에 빠져 죽었다고 봐야 한다.

놀부와 놀부 각시
놀부와 놀부 각시 ⓒ 김현

흥부와 흥부 각시
흥부와 흥부 각시 ⓒ 김현

여섯 명의 서방이 죽은 다음 길 떠나 만난 사내가 변강쇠다. 둘은 만나자 마자 음양의 온갖 재주를 부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사랑에 빠진 강쇠가 어느 날 지리산 곳곳에 있는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사용하게 되고, 이에 노한 ‘대방장승’이 팔도 백 장승의 신(神)을 모아 변강쇠에게 벌을 내린다. 전국 장승신들의 벌을 받은 강쇠는 질병에 시달리다 장승처럼 꼿꼿이 굳어 죽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이곳을 ‘백장골’로 부른다.

백장골 주변엔 팔도의 장승들이 각각의 표정으로 서있다. 어떤 장승은 제법 위엄을 떨고, 어떤 장승은 해학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곳에 놀부와 흥부, 놀부 마누라와 흥부 마누라의 장승도 함께 서있다는 것이다. 아마 남원이 흥부의 고장이라서 흥부와 놀부의 장승도 세운 건 아닌가 싶다.

ⓒ 김현

백장암 계곡은 좁고 길다. 그런데 가만히 바라보면 옹녀의 그것을 연상하게 한다. 그 계곡을 올라가면 변강쇠가 양기를 얻었다는 근연바위가 있고, 남녀의 성기를 닮은 음양바위, 바위를 보고 간절히 염원하면 옥동자를 잉태한다는 태아바위와 선녀 소(沼) 등이 있다 한다.

ⓒ 김현

그러나 찾지 못하고 아이들의 성화에 돌아서는 발길이 아쉽다. 어린 꼬맹이들에게 이곳에 장승들이 왜 많이 서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아이들에게 장승이란 무엇이고, 왜 마을 입구에 장승을 세웠는지 간단히 설명을 해주는 것으로 변강쇠 공원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지리산 계곡을 찾는다. 그러나 이곳 변강쇠와 옹녀의 사랑이 서려있는 백장암 계곡에 머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웬 장승들이 이렇게 많이 서있냐하는 생각을 하며 스쳐 지나갈 뿐이다.

변강쇠 계곡에 세워져 있는 장승들을 보며 변강쇠와 옹녀의 사랑놀이와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왜 성윤리가 폐쇄적이던 당시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왔고, 이것이 판소리를 통해 민중들에게 전해져 오고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

ⓒ 김현

어쩌면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던 당시의 인습에 대한 서민들의 자각의식이 이렇게 성도덕 해체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아닌지 싶다. 또 음기가 강해 서방을 죽이는 여자가 된 옹녀가 변강쇠와 만나 사랑놀이를 하는 것은 서민들의 욕구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한 장치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혹 지리산에 가서 장승들이 서있는 모습을 보거든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잠시 구경하고 가보시라. 그리고 팔도의 장승들을 바라보며 당시 사람들의 성향도 느껴보시라. 장승들의 표정에 그 지역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하게 표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 김현

덧붙이는 글 | 일명 강쇠공원으로 불리는 백장공원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인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 나! 따로 가지 말고 함께 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