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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녹색으로 덮인 위화도. 왼쪽 아래 부분의 서너 채의 집들은 사람 사는 기척이 없는 빈 집들이다.
짙은 녹색으로 덮인 위화도. 왼쪽 아래 부분의 서너 채의 집들은 사람 사는 기척이 없는 빈 집들이다. ⓒ 이덕림
위화도(威化島). 역사의 물굽이가 크게 소용돌이 쳤던 곳, 바로 '위화도회군'의 현장인 압록강상의 한 섬이다.

1388년 5월 요동(遼東) 출정을 위해 이 섬에 모여 있던 8만8천명 대군(정사 기록. 다른 기록엔 최대 10만에서 7만, 5만 등 당시 병력을 두고 이설이 많다)은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 이성계(李成桂)의 주동으로 도강(渡江)을 포기하고 대신 말머리를 개경으로 돌렸다.

요동 정벌의 대망은 사라지고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통한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예고하는,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는 사건이었음은 국사시간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강변에 서서 바라 본 위화도. 마치 강 위에 길게 엎드린 용의 모습 같다고 할까?
강변에 서서 바라 본 위화도. 마치 강 위에 길게 엎드린 용의 모습 같다고 할까? ⓒ 이덕림
위화도는 어떤 섬일까? 압록강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마음 한 구석에 품고 있던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섬 앞에 서니, 심히 낯선 모습으로 다가왔다. 지호지간(指呼之間)에서 바라본 위화도는 어떤 선입감의 영향을 받아 지금까지 머릿속에 그려왔던 모습과는 딴판으로 너무 평범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우선 문제를 하나 풀고 가자. 위화도와 여의도, 어느 것이 더 클까?

위화도가 여의도보다 크다. '압록강 위에 있는 한 작은 섬'이려니 생각한 것이 고작이었는데, 나의 지식과 상상은 여기서부터 많이 빗나가 있었다. 11.2평방km로 8.5평방km인 여의도보다 한참 크다.

길이 9km, 평균너비 1.4km, 해안선 둘레 21km의 위화도는 퇴적토로 생긴 압록강의 여러 섬들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행정구역은 평안북도 의주군 위화면으로써 독립된 한 개 면을 이룬다.

위화도의 하류쪽 부분. 위에서 내려다 보니 예리한 창끝을 닮았다. 오른쪽 귀퉁이 빨간 지붕의 건물들은 압록강변에 지은 단둥의 아파트.
위화도의 하류쪽 부분. 위에서 내려다 보니 예리한 창끝을 닮았다. 오른쪽 귀퉁이 빨간 지붕의 건물들은 압록강변에 지은 단둥의 아파트. ⓒ 이덕림
위화도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중국 단둥의 한 강변아파트 25층에서 바라본 섬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뻗어 있었다. 한눈에 전체 모습을 조망하기가 어려웠다.

작은 돌멩이 하나 섞여 있지 않을 것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천연색깔의 흙. 첫눈에도 비옥해 보이는 땅은 경지 정리가 잘 돼 있었다. 그러나 창문이 휑하니 뚫린 채 방치된 폐가들을 보면서 허전함이 찾아들었다. 밥 짓는 연기라도 오르면 반가울 텐데…. 무엇 때문일까?

지난 날 김일성-저우언라이(주은래) 협상서 수풍발전소 관할권 절반을 넘겨주는 대가로 북측이 받았다는 위화도. 얼마 전 국내 신문에 이 섬에 북-중 합작 자유무역시장을 개설한다는 보도도 나왔었지만, 8월 한낮의 위화도는 세상의 변화와는 무관하다는 듯 고즈넉하기만 하다. 어른 키만큼 크게 자란 옥수수들이 이따금 고랑을 스쳐 가는 강바람에 열병식을 하고 있을 뿐….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철교인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 위 강 상류 쪽에 위치한 위화도와 마주 보며, 철교 아래 하류 쪽에는 중국 영토인 위에량다오(月亮島)가 있다. 임립(林立)한 고층아파트들과 뭍과 연결된 화려한 아치형 다리가 상류 쪽 섬과는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단동을 찾은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보트나 유람선을 빌려 타고 북한 쪽에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어 한다.
단동을 찾은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보트나 유람선을 빌려 타고 북한 쪽에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어 한다. ⓒ 이덕림
이곳에 처음 도착한 지난 늦은 봄, 새벽 강가를 거닐다 위화도 숲 속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와 쟁끼(장끼[수꿩]의 방언) 소리에 한동안 걸음을 멈추었었다. 낯익은 그 소리. 어릴 적 시골 고향에서 듣고 자랐고, 지금도 서울의 서쪽 우리 동네 뒷산에서 들을 수 있는 귀에 익은 그 소리….

발아래에선 아침 안개가 짙게 깔린 압록강이 마치 '망각의 강'처럼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대하무성(大河無聲), 아니면 대하무심(大河無心)인가?

덧붙이는 글 | 초청자의 배려로 위화도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에서 1주일 동안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강변에 나가면 위화도가 지호지간입니다. 그 섬을 바라보는 맛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 이덕림 기자는 현재 단둥에서 3개월째 머무르며, 중국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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