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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마항(전남 영광군 홍농읍)에서 송이도로 출발하는 여객선 안에서 본 바다
계마항(전남 영광군 홍농읍)에서 송이도로 출발하는 여객선 안에서 본 바다 ⓒ 권용숙
태극기 휘날리며 두 개의 등대 사이 물길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여객선에 탄 사람들의 얼굴이 파란 칠산바다 바닷물이 들어버린 듯 밝고 희망차다.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은 여객선을 오르면서 이미 바닷물에 던져버린 듯, 몸도 마음도 갈매기처럼 날개를 달고 배보다 앞서 날아갈 것만 같다.

계마항에서 출발해 1시간 20분 동안 배를 탔다. 망망대해에서 오랫동안 배를 타고 있으니 배를 탄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다 오래전부터 아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산바다에 있는 일곱 개 섬중 하나, 지나치는 섬이라 더 아름답다.
칠산바다에 있는 일곱 개 섬중 하나, 지나치는 섬이라 더 아름답다. ⓒ 권용숙

송이도에 도착하자마자 바닷물에 들어갔다.  돌은 동글동글한데 돌 위에 굴껍질이 붙어있어 조심해야 했다.
송이도에 도착하자마자 바닷물에 들어갔다. 돌은 동글동글한데 돌 위에 굴껍질이 붙어있어 조심해야 했다. ⓒ 권용숙
드디어, 짭짤한 바닷바람에 머리칼 휘날리며 도착한 섬, 영광사람들에게 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섬 송이도(松耳島). 민박집에 짐을 풀자마다 막내는 고무보트에 바람을 넣기 시작한다. 식구마다 돌아가며 펌프질을 해 탱탱해진 보트를 들고 바닷물에 들어갔다. 잘 달궈진 몽돌에 물이 데워져 어느 곳은 따뜻한 물, 또 어떤 곳은 찬물 같은 느낌이 전해져 온다.

아이들과의 물놀이는 늘 아슬아슬 하다. 처음 보트를 타는 막내는 노젓기에 익숙지 않아 안으로 자꾸만 들어가는 것 같아 소리를 지르고 아이는 숙달된 보트맨처럼 노를 저어 빠져나왔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이라 유명한 해수욕장에 비하면 쓸쓸할 만큼 가족적인 분위기다. 민박집에 같이 묵는 투숙객들도 보이고 같이 배를 타고 온사람들도 눈에 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그동안 익혔두었던 수영을 차례대로 한 번씩 해보았다. 역시 바다에서 하는 수영은 훨씬 몸이 가볍다. 갑자기 해녀가 된 기분이다.

송이도, 소나무가 많고 겹쳐진 골짜기의 모습이 소 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이 빠진 해수욕장은 작은 돌멩이가 잔뜩 깔려있다.   오전에는 해수욕을 하고 오후엔 소라, 게, 고동 등을 잡을 수 있다.
송이도, 소나무가 많고 겹쳐진 골짜기의 모습이 소 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이 빠진 해수욕장은 작은 돌멩이가 잔뜩 깔려있다. 오전에는 해수욕을 하고 오후엔 소라, 게, 고동 등을 잡을 수 있다. ⓒ 권용숙

초록빛이 나는 몽돌위에 고동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초록빛이 나는 몽돌위에 고동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 권용숙
오후가 되니 썰물이 된다하여 모두가 바다로 나갔는지 조용한다. 미리 준비해간 호미와 양파망을 가지고 바닷가로 나갔다. 오전에 해수욕할 때와 또 다른 모습의 바다, 초록색 동글동글한 조약돌이 몸을 드러내고 있다. 동글동글 몽돌에 굴껍질이 붙어있어 맨발로 다니는 것은 위험하여 샌들을 신고 다녔다. 작은 돌멩이를 들춰낼 때마다 게가 쏜살같이 도망가기 바쁘고 제법 큰 소라도 돌인 체하며 숨어 있다.

여행객들은 주로 돌 위에 붙은 고동을 잡기에 바쁘고 현지인들은 제법 큰 아이 손바닥만 한 게와 굵은 소라만 잡았다. 왜 오랜만에 온 외지인에게는 작은 고동만 보이는 것인지, 현지인은 쳐다보지도 않는 고동만 한 망 잡아와 삶아 먹었다.

마을중간에 우뚝 서 있는 팽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데 한 그루는 고사직전으로 천년이 넘었을 거라 한다.
마을중간에 우뚝 서 있는 팽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데 한 그루는 고사직전으로 천년이 넘었을 거라 한다. ⓒ 권용숙
다음날은 송이도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마을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팽나무이다. 수령이 몇 년 정도 되었냐고 물으니 "말도 못하게 오래된 나무, 한 천년 되었을 거라" 하는데 산중턱에도 마을 입구에도 해변에도 군데군데 팽나무 고목이 눈에 띄었다. 나무 밑은 여느 마을 같이 어르신들의 휴식공간이자 작은 마을 회의 등 대소사를 논하기도 하는 대화의 장소다.

논농사도 지었지만 주로 밭에 고추를 많이 심었다.  고추밭은 거의 돌밭이었지만 고추 풍년임을 알 수 있었다.
논농사도 지었지만 주로 밭에 고추를 많이 심었다. 고추밭은 거의 돌밭이었지만 고추 풍년임을 알 수 있었다. ⓒ 권용숙
송이도 사람들은 생각과는 다르게 농사도 지었는데 그중에 고추농사가 잘 되어 산더미 같이 고추를 따놓고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고추가 얼마나 크고 통통한지 다른 곳은 고추줄기가 다 말라 죽어가던데 이곳에 고추농사가 잘 되는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니 "고추밭에 있는 자갈들이 오줌을 눠 고추농사가 잘 되는 것이다" 고 말했다. 돌이 물을 먹고있다가 가뭄에 물을 뿌려준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놀라운 것은 거의 모든 밭이 자갈투성이다.

초분, 일종의 풀무덤으로 시신 또는 관을 땅 위에 올려 놓은 뒤 짚이나 풀 등으로 엮은 이엉을 덮어 두었다가, 2~3년 후 남은 뼈를 씻어(씻골) 땅에 묻는 무덤을 말한다. 이장은 특히 '공달', '손 없는 달'이라 하여 윤달에 많이 한다.
초분, 일종의 풀무덤으로 시신 또는 관을 땅 위에 올려 놓은 뒤 짚이나 풀 등으로 엮은 이엉을 덮어 두었다가, 2~3년 후 남은 뼈를 씻어(씻골) 땅에 묻는 무덤을 말한다. 이장은 특히 '공달', '손 없는 달'이라 하여 윤달에 많이 한다. ⓒ 권용숙
이곳에 오기 전 유일하게 소개해준 분에게 들은 마을 이야기는 아직도 이곳엔 초분을 하는 풍습이 남아있고, 왕소사나무군락지가 있다는 것이다. 민박집 주인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산속에 초분이 있긴 한데 수풀이 우거져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 한다.

한참 산에 오르니 산 뒤편으로 또 다른 바다의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산 밑으로 방목해놓은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무작정 산에 온 외지인이 초분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때 산을 가로질러 바다로 가는 현지주민 '강경태'씨를 만나게 되었다.

송이도에는 세 기 정도의 초분이 있는데 그중에 두 곳을 알고 있다고 직접 안내를 해줬다. 처음 갔던 제일 찾기 쉽다는 그곳은 이미 봉분을 만든 후였고, 다음 소나무밑 한적한 곳을 안내해줬는데 정말로 초가지붕 같은 이엉을 덮어놓은 초분이 눈에 들어왔다. 송이도 사람은 아직도 정월에 돌아가시는 분은 매장을 하지않고 초분을 한다고 설명을 해주며, 행여 방목하고 있는 소들이 해를 가할까 염려하여 초분 주위에 그물을 쳐놓았다고 말했다.

전국 최대의 왕소사나무군락지로 알려져있다.
전국 최대의 왕소사나무군락지로 알려져있다. ⓒ 권용숙
초분을 보고 소사나무군락지를 물으니 다시 산을 내려가 바로 옆 또 다른 산을 올라 산등성에 가야만 소사나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강씨의 배려로 그물이 실려 있는 트럭을 타고 산을 내려와 친절하게 소사나무 위치를 알려주는 대로 다시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소사나무를 알고나 왔는가. 둘 다 소사나무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산등성에 소사나무군락지란 팻말이라도 기대한 우리가 어리석었다. 오래 전에 제를 지내던 터가 남아있다 하는데 풀이 허리 위까지 우거져 걷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송이도의 왕소사나무는 전국 최대의 군락지라 했는데 무작정 찾는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보이는 나무마다 소사나무가 아닐까, 이리 보고 저리 보다 산등성을 넘어버렸다. 여긴 아닌데 하며 다시 산꼭대기쯤에 이르니 그때 눈에 들어오는 유난히 빽빽하게 풀 속에 서있는 나무, 군락지라고 하기엔 조금 모자란 듯하였지만 확신을 가지고 찍어놓은 나무는 틀림없이 소사나무였다.

오랫만에 본 하얀 염소가족과 방학이라 텅빈 송이분교. 그리고 언덕에서 바라본 송이도 마을  전경이 섬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랫만에 본 하얀 염소가족과 방학이라 텅빈 송이분교. 그리고 언덕에서 바라본 송이도 마을 전경이 섬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권용숙
내려오는 길에 방목한 하얀 염소들이 외지인을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염소를 지나 산밑에 자리잡은 법성초등학교 송이분교 뒤편으론 고목이 된 것 같은 누리장나무꽃이 만발하여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송이분교는 학생 2명 선생님 1명이 있다고 하는데 한 명이 더 줄면 폐교가 된다고 주민들이 말했다. 아이가 없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100호 되는 집들이 지금은 50호 정도만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한다.

어디를 가나 고목이 된 수백 년 이상 된 팽나무가 있는 마을 송이도. 자갈이 오줌을 눠 고추농사가 잘 된다고 자랑하는 할머니가 사는 송이도. 해물탕과 게장을 반찬으로 아낌없이 퍼주던 민박집 후덕한 아주머니 아저씨가 있는 송이도에서의 여름휴가는 참으로 인상 깊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안내처 : 영광군청 문화관광과 :  061-350-57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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