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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내마을의 한 할머니가 잡초를 뽑고 있다
달내마을의 한 할머니가 잡초를 뽑고 있다 ⓒ 정판수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아마 노래방에서 한 번쯤은 불러본 적이 있는 노래이리라. 나도 노래는 못 부르지만 남들이 부르는 이 노래를 몇 번 따라 부른 적이 있다. 그런데 묘한 건 이 노래를 부를 땐 가사에 나오는 단어처럼 ‘설움’이 마구 솟구치는 것 같아 절로 목소리에 힘이 실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노래는 그렇게 불렀어도 솔직히 콩밭 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시골에 집을 지어 살면서 이곳 아낙네(사실은 모두 할머니뿐이라 아낙네란 호칭을 붙일 사람은 없지만)들의 콩밭 매는 장면을 보고 왜 그렇게 그 노래를 설움에 겨운 목청으로 불러야 하는지를 확연히 깨달았다.

우리 나라 풍토에 가장 적합한 작물이 무엇일까 하는 물음에는 학자들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콩을 드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콩은 묵정밭에도, 찰진 밭에도, 특별히 거름을 하지 않아도, 비료와 농약을 별반 들이지 않아도 잘 자라는 작물이다.

그리고 콩밭의 응용도 다양하다. 콩을 심은 밭엔 다른 작물을 심어도 잘 자란다. 그전에 살던 양북면 뒷마을에서는 양파를 생산한 뒤에 콩을 심고, 이곳 달내마을에선 감자를 수확한 밭에 심는다.

콩은 다른 농작물처럼 씨를 뿌린 뒤 시간이 흐르면 수확한다. 그러기에 힘 드는 것으로 말하면 다른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바로 잡초 때문에 그 힘듦은 배가(倍加)된다.

작물에 잡초 나는 거야 콩밭뿐이 아니기에 그도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으나, 논에 김을 매거나 다른 작물에서 잡초 뽑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가장 더위가 심할 때인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밭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적당하게 기름진 밭에 비까지 내리면 잡초가 자라는데 최적의 상황이 된다. 그때부터 바랭이, 쇠비름, 여뀌, 깨풀, 마디풀, 방동산이, 쇠뜨기, 벼룩나물 등등 이름도 생소한 잡초들은 제 마음대로 자란다.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콩이 제대로 자랄 수 없다.

그러기에 아낙네들은 사흘이 멀다 하고 콩밭에 들어간다. 반바지에 짧은 소매에다 고무신을 신은 땡볕에 적합한 차림이 아니라 긴바지에 긴소매에다 장화를 신은 채로 말이다. 그런 차림이어야 하는 이유는 다음에 나온다. 그 채비로 들어서서 허리를 구부린 채 일을 하다 보면 채 오 분도 안 되어 팥죽땀이 쏟아진다.

사흘 전 잡초가 무성했던 콩밭(왼쪽)이 할머니의 팥죽땀으로 오른쪽처럼 깔끔해졌다
사흘 전 잡초가 무성했던 콩밭(왼쪽)이 할머니의 팥죽땀으로 오른쪽처럼 깔끔해졌다 ⓒ 정판수
콩밭에는 잡초만이 적이 아니다. 잎사귀가 제법 빛깔을 드리울 즈음이면 밭에 나타나는 불청객이 있으니 그놈이 바로 뱀이다. 나도 몇 번이나 밭둑으로 기어다니는 놈들을 봤다. 물론 내가 본 뱀들은 대부분 유혈목이(지방에 따라 꽃뱀, 너굴대 등등으로 불림)지만 간혹 독사가 나올 때도 있다.

저번 살던 뒷마을의 한 아주머니가 자기 밭에 잡초를 뽑으러 들어갔다가 큰 변을 당했다. 처음부터 콩밭 맬 작정이었으면 긴바지에 장화 차림이었을 텐데 시장에 갔다 오다가 발견한 풀을 아무 생각 없이 뽑으러 들어갔다가 그만 독사에게 물려버린 것이다. 그 뒤로 아주머니는 석 달 동안 똥오줌을 받아냈다고 한다. 그나마 살아난 게 다행이라면서.

콩밭에는 여인의 한(恨)이 있다. 농사는 남녀 모두 다 힘들게 해야 할 일이지만 콩밭 매는 일은 대부분 여인들의 몫이다. 언젠가 아내가 이웃집 할머니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소처럼 일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정말 그때는 아침 일찍부터 해가 져 캄캄해질 때까지 구부린 허리를 들 줄 몰랐다.

이렇게 애를 써도 놀갱이(노루의 이곳 사투리)가 뜯어먹는데다가 값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렇게 팥죽땀을 흘리면서 잡초를 뽑아가며, 뱀의 위협을 받아가며 일해도 겨우 쥐꼬리만큼 손에 떨어진다. 그마저도 FTA가 체결되면 쥐꼬리는 모기 앞발만큼도 안 될 텐데….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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