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노무현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김근태 당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오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미래권력'과 '현재권력' 간의 권력투쟁은 일단 '현재권력'의 승리로 끝났다.

"여당이 청와대와 정부를 지켜줘야지 왜 더 나서서 흔드냐"고 노무현 대통령은 질책했고, 김근태 의장은 "당의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에 있어서 실수가 있었고,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회동에서 이루어진 합의의 핵심은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임을 확인한 것이었고, '문재인 카드' 문제도 사실상 노 대통령의 의중에 맡겨진 상황이 되었다.

일단 현재권력의 승리, 그러나...

청와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던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노 대통령의 훈계를 듣고 고개를 숙인 채 돌아왔다. 이전과는 달라보였던 열린우리당의 기세는 청와대 회동을 거치며 한풀 꺾이게 되었다. 노 대통령과의 파국적 상황을 불사하기에는 공멸의 우려가 컸기에, 열린우리당은 봉합을 선택했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상황이었다. 청와대 회동에서 나온 말들 가운데 오히려 관심을 끄는 것은 다른 대목들이었다.

언론들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바깥에서 선장이 올 수도 있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차기 대선주자의 영입 의사를 밝힌 대목이라는 것이며, 그같은 방향의 정계개편 의사를 담은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 발언은 일단 일반론적인 차원에서 해석된다. 외부인사 영입을 통한 공정경선론은 그동안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폭넓게 논의되었던 내용으로, 특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 대통령이 개입하면 외부인사 영입도 더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 발언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고 소설을 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주목해야 할 발언은 "탈당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앞으로의 정치구도와 관련하여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정기국회가 끝나고 연말이나 내년 초 정도에 노 대통령의 탈당이 있을 것이라던 일반적 관측을 부인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대분열이 가까이 와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 대통령은 더 나아가 "임기가 끝난 후에도 백의종군의 마음으로 당과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말 그대로라면 내년 초 탈당은 고사하고, 2008년 2월 이후에도 열린우리당 당원으로 남아있겠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의 여러 전제들이 허물어지게 된다. 열린우리당 안팎의 정계개편론자들은 정계개편 논의의 출발점을 노 대통령의 탈당에서 찾는 분위기였다. 민주당은 이미 정계개편 논의의 조건으로 노 대통령의 탈당을 내걸었고, 열린우리당 내의 통합론자들도 비한나라당 세력과의 대통합을 위해서는 노 대통령의 탈당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해왔다.

노 대통령의 탈당 불가 선언은 이같은 정계개편론의 전제들을 부정하는 성격의 것이다. 물론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간판을 내리는 방식의 정계개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 열린우리당이라는 '큰 배'에 밖에서 선장이 올 수도 있다는 희망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청와대 회동에서의 일시적인 봉합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당내의 정계개편세력과 노 대통령은 정면충돌하게 되어있다.

정계개편세력은 차기 대선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비한나라당 세력의 대연합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탈당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를 미리 거부한 것이다. 결국 노 대통령의 탈당문제를 둘러싼 여권내 대충돌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최근 노 대통령은 "나더러 나가라고 하지만 나는 절대 탈당할 생각이 없다, 싫으면 자기들이 나가면 된다"며 열린우리당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열린우리당이 정계개편세력와 열린우리당 고수세력, '비노'세력과 '친노'세력 간의 분당으로 갈 수 있음을 예고해주는 내용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청와대 회동은 여권세력 내부의 '봉합'은 이루었지만, 멀지않은 미래의 '대분열'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할 수 있다. 당·청 갈등의 정점은 김병준 부총리 문제도, '문재인 카드' 문제도 아니요 결국에는 노 대통령의 탈당 문제가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쇄신 없는 봉합, 무엇이 달라질까

책임지는 대통령으로 남기를 원하는 노 대통령과, 어떻게든 차기 대선의 희망을 찾으려는 열린우리당이 '윈-윈'할 수 있는 길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문제는 여권 지도부가 한데 모인 청와대 회동에서 '봉합'만 있었지, 정작 '쇄신'의 다짐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인사권의 존중을 요구했지만, 여당이 강조한 '민심'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노력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문재인 카드' 문제를 단지 여당에 의한 인사권 침해로 보고 있는 노 대통령의 시각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동안 반복되어온 '자기 사람' 중심의 폐쇄적 인사가, 문재인이라는 정말 '멀쩡한' 사람을 비토대상으로 올려놓은 배경을 성찰했어야 했다.

인사권 침해를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반복되는 인사방식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가를 돌아보았어야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간의 국정운영에 대한 자기성찰의 모습은 아무 것도 없이, '책임지는 대통령'으로 남기만을 원하는 모습은 또 다른 아집으로 비쳐질 위험이 크다.

이전과는 달리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다가, 정작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고개를 숙이고 돌아온 열린우리당의 모습도 국민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모르겠다. 당·정·청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는데, 그것이야 자신들 내부의 문제이고, 지켜보는 국민들로서는 새로이 기대를 걸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여권의 위기상황에서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만났다면 민심에 부응하기 위한 여권의 쇄신책같은 얘기를 할 법도 한데, 서로가 아무런 말이 없었던 모양이다. '민심'에 대한 양측의 인식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청와대와 여당이 사사건건 정면충돌해도 국민들은 혼란스럽지만,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것 없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도 미덥지 못하다.

국민을 향한 '쇄신'의 다짐은 없고 자신들 내부 갈등의 '봉합'에만 급급했던 청와대 회동. 여권세력이 달라지리라는 기대를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쇄신없는 봉합으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윈-윈'의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동반침몰의 위험이 커 보이는 까닭은, 그들이 여전히 민심에 대한 둔감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