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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면서

▲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
ⓒ 김영사
서책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의 부제는 사뭇 길다. '역사에서 찾아낸 나무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나무문화재에 담겨진 우리 역사와 문화이야기' 그러니까 이 서책에는 나무와 인간의 관계와 문화-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두루 포함하고 있다고 하겠다. 나무문화재를 통해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겠다는 점이 특징적이라고 생각된다.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는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에서 지은이는 어떻게 나무문화재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를 서술하면서, 나이테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을 덧붙인다. 제2부 '역사가 담겨진 나무이야기'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몇몇 나무문화재, 이를테면 '반가사유상'이나 '팔만대장경'에 어떤 역사적인 신비와 비밀이 들어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제3부 '사람살이 나무살이'에서는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 거리가 풍성하게 실려 있다. 어릴 때 익숙하게 들었던 '계수나무'와 '정이품송' 같은 나무에 얽힌 사연과 '버드나무'와 관련된 흥미로운 설화가 우리의 관심을 끈다. 나무의 괴로움을 지은이가 대신 말하는 '나무살이 하소연'에 등장하는 분재와 고로쇠 등의 고통을 기술하는 대목은 무척 흥미롭다.

신라가 숯 때문에 망했다고?!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에서 지은이는 메소포타미아의 도시왕국 '우루크'의 <길가메시 이야기>로 무분별한 삼림벌채의 결과를 이야기한다. 길가메시는 친구이자 하인인 엔키두와 함께 괴물 훔바바가 지키고 있는, 레바논 삼나무가 울창한 숲을 베어내는데 성공한다. 곧 가뭄이 닥치고, 엄청난 홍수가 밀려온다. '노아의 홍수' 예고편인 셈이다.

지은이는 천년왕국 신라가 멸망한 원인 가운데 하나를 황폐해진 숲에서 읽어내고 있다.

"전승국이 얻는 풍족한 자원은 안락한 삶을 추구한다. 고급 숯은 연기가 나지 않고 열량이 높아 화로에 제격이며, 아궁이와 벽을 그을리지 않아 밥 짓는 연료로도 그만이다. 숯은 고급연료지만 자원낭비가 심하다. 무게로 따져도 질 좋은 숯은 나무의 1/1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수요증가에 따라 많은 나무가 잘려나갔고, 숲은 파괴되었다." (91-92쪽)

<삼국사기> 헌강왕조에 '숯'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숯이 민간에까지 널리 보급되어 밥 짓는 연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참나무를 중심으로 한 넓은잎나무(활엽수)가 수종의 대부분을 이루었던 경주부근의 산들은 계속 벌목되어 숯으로 만들어지고, 지속적으로 파괴되었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추정한다. 그로부터 50여 년 뒤에 신라는 멸망하고 만다.

신화의 나무들과 '단군신화'의 신단수(神壇樹)

신화와 관련된 나무를 찾아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북유럽 신화에는 '위그드라실 Yggdrasil'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거대한 물푸레나무로 우주를 뚫고 솟아있어서 '우주수(宇宙樹)'라 불리기도 한다. 세계가 창조된 후 주신 (主神) 오딘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위그드라실은 세상의 중심으로 천상과 지상, 지하세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그런 생김새와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이다.)

북아시아에서는 전나무가, 시베리아 사람들에게는 자작나무가 신화와 관련된 나무로 알려져 있다. 서기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에는 나무와 관련된 신화가 소개되어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소전명존(素箋鳴尊)'이란 신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나무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수염을 뽑아 흩어지게 하니 삼나무로 변하고, 가슴 털을 뽑아 날려 보내니 편백나무가 되었다. 볼기짝의 털은 금송이 되고, 눈썹의 털은 녹나무가 되었다. 삼나무와 녹나무로는 배를 만들고, 편백나무로는 궁궐을 지으라 하였다. 금송(金松)은 시신을 감싸는 관재로 쓰라고 일렀다." (77쪽)

나무들의 생성배경과 아울러 그것의 용도까지 일러준 실로 자상하기 이를 데 없는 신화가 아닐 수 없다. 위에 언급된 네 종류의 수목은 오늘날까지도 일본을 대표하는 나무들이다. 특히 이 가운데 '금송'은 무령왕릉과 '능산리 왕릉'의 관재로 사용됨으로써 고대 한일교류사의 일면을 추측하도록 인내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하였다.

서기 1281년 무렵 완성된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에서 우리는 '신단수'와 만난다. '신단수'나 '단군'에 쓰이고 있는 '단(壇)'은 이승휴가 1287년 저술한 <제왕운기>에서 기술하는 '단수신(檀樹神)'의 '단(檀)'과는 다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나무와 연관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개 사람들은 '단'을 박달나무로 해석해왔지만, 지은이 생각은 다르다.

"조상들과 친근한 나무지만 나무의 자람 특징으로 보아서 박달나무는 신단수가 되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 우선 박달나무는 수백 년에서 천 년을 넘길 만큼 오래 살지 못하고, 자라는 모양이 키다리 꼴이다. 그래서 가지를 넓게 펴서 주위를 넉넉하게 감싸고 악귀를 쫓아내는 신단수의 위엄과 넉넉함에는 미치지 못하는 나무다." (158쪽)

신단수의 실체를 알기 위해 지은이는 민속학의 서낭당과 신단의 개념을 빌려와 당산나무로 자주 등장하는 느티나무에 주목한다. 우리나라 전체 당산나무의 3분의 2가 느티나무라는 것이다. 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고상하고 우아한 자태와 우람한 덩치, 그리고 고아한 품위를 지닌 나무 중의 나무 느티나무가 신단수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것이다.

'연리지(連理枝)'를 생각하다

일본의 한류를 겨냥하여 2006년 4월에 개봉한 영화 <연리지>가 있다. 하나의 유희로 사랑을 하는 남자와 생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사랑을 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우선 지은이의 도움을 받아 나무세계에서 일어나는 연리(連理)의 뜻부터 헤아려보자.

"숲에 조금 빈자리가 생기면 나무들은 가지부터 들이민다. 서로가 부딪치면서 맞닿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혼자만 살겠다고 발버둥치지만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 지나다보면 협조해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나갈 수 있도록 아예 몸을 합쳐 한 나무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이렇게 맞닿은 세포가 서로 합쳐져 하나로 될 때 이것을 연리라고 부른다." (212쪽)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連理木)'이 되는 것이다. 연리목은 나무를 심을 때 너무 가까이 심을 경우 지름이 굵어지면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에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연리지는 매우 드문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뿌리끼리 연리 되는 경우도 흔한데, 그렇다고 '연리근(連理根)'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고 한다.

연리지는 서기 806년 백낙천이 지은 대서사시 <장한가(長恨歌)>에서 당 현종과 양귀비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의 모티프로 쓰임으로써 남녀의 변함없는 사랑의 상징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만일 여러분이 실제로 연리지를 보고 싶다면, 경북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 마을의 소나무 연리지나, 충남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의 동백나무 연리지를 찾아보시기 바란다.

그렇다고 아무 나무나 서로 맞닿게 한다고 해서 연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마치 사람의 인연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연리란 종류가 같은 나무, 예컨대 음나무와 음나무, 자귀나무와 자귀나무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감나무와 고욤나무처럼 아주 가까운 친척 사이라야 한다. 대체로 접붙이기가 가능한 나무는 연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소나무와 참나무처럼 종류가 다른 나무는 수십 수백 년을 같이 붙어 있어도 그저 맞대고 있을 뿐, 연리가 되지 않는다." (222쪽)

결론을 대신하여: 나무에 관한 간단한 몇 가지 상식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친 곳을 '행단 杏壇'이라 한다. 여기서 '행'은 '살구나무'와 '은행나무' 모두를 가리킨다. 지금까지 학자들은 살구나무냐 은행나무냐를 두고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다산 정약용은 <아언각비>에서 '행'을 살구나무로 해석하였다고 한다. 지은이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시비곡절을 분명하게 가른다.

널찍한 그늘도 드리우지 못하고, 수명도 짧으며 벌레가 먹기도 하는데다가 자태도 수려하지 못한 살구나무가 행단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에 은행나무는 그늘이 필요한 여름철에 무성한 잎을 자랑하며 벌레가 덤비지도 않고, 우람하고 오래 사는 미덕을 갖추고 있으므로 야외강의에 요구되는 공간의 그늘 막으로 제격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으면 베어진 나무의 나이테를 보고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속설을 부정하면서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곧게 자란 나무는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나 나이테 지름이 거의 같다. 따라서 평지에서 자라는 나무는 나이테가 거의 원형에 가까워 방향을 찾을 수 없고, 경사진 곳의 나무는 나이테가 한쪽으로 더 넓은 곳이 있지만, 그것은 산의 아래위를 나타낼 뿐이다. 결국 잘려진 나무의 나이테만 보고 남북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33-34쪽)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는 오랜 세월 나무를 연구해온 학자가 나무문화재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면서부터 얻게 된 여러 가지 지식과 경험을 수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나무에 대한 이야기와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 인하여 가능했거나 생겨난 일화와 역사와 문화를 폭넓게 아우르는 유익하고 풍요로운 교양서적이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 박상진 지음, 김영사, 2004.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

박상진 지음, 김영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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