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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방담회에 참석한 20대들은 긍정적 사고, 타인에 대한 친밀감,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남과 비교 안 하기 등을 행복 노하우로 꼽았다.
행복방담회에 참석한 20대들은 긍정적 사고, 타인에 대한 친밀감,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남과 비교 안 하기 등을 행복 노하우로 꼽았다. ⓒ 여성신문
진행:여성신문의 ‘행복방담’ 기획은 양성평등 사회 속에서의 삶의 질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 20대와 10대 방담회를 남겨놓고 있는데, 젊은 세대일수록 특별히 성차가 두드러지지 않을 것 같아 이번 20대 행복방담회는 남녀 혼성 방담회로 마련했다. 먼저, 살아오면서 행복했다고 기억되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강미선:나는 직장인이니까, 지점에 내려온 목표를 달성해서 성취감을 느낄 때 행복하다. 그리고 친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친구와 여행을 함께 갈 때 행복을 느낀다. 지금은 작은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남형준:지난 6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직 학생이다 보니 공부와 일 등 어떤 목표를 세우고, 목표에 걸맞은 결과를 얻었을 때 제일 행복하다. 정신적으로나 지적으로 내가 뭔가 ‘발전’을 했다고 느낄 때 행복하다. 가장 최근엔 대학에 합격했을 때,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서 행복했다.

조현욱
조현욱 ⓒ 여성신문
조현욱:최근 몇 년 사이에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그래서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2004년에 졸업하면서 원하던 병원에 인턴으로 들어가서 좋았고, 인턴을 마치고 원하던 과에 들어가서 좋았고, 올 가을에 결혼할 예정이어서 행복하다.

박선진:고향이 부산인데, 대학 진학 후 서울로 올라와서 계속 혼자 살았다. 서울에서 힘든 일을 겪다가 고향에 내려가서 가족과 친구들과 지낼 때 행복하다.

진행:그렇다면 애인, 혹은 파트너 등 자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은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또 행불행과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나.

강미선:애인은 생활에 활력을 주며, 삶의 좋은 경쟁 상대이다. 그에게 칭찬을 듣고, 인정받기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더 긴장한다. 애인은 남한테 말하기 창피한 일에 대해서 고민을 털어놓으며 상담할 수 있는 존재다.

남형준:다만 친구를 사귀면서 서로 힘들 때 도움을 주고받는데, 그런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조현욱:주변에서 흔히들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고 얘기한다. 나는 그래서 결혼을 선택했다. 지금 당장은 결혼할 상대를 떠올리면 행복하다.

진행:대인관계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면 행복으로 이어질까.

조현욱:먼저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아무 것도 안 믿으면 모든 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지고, 그러면 힘들어질 수 있다.

박선진
박선진 ⓒ 여성신문
박선진:애인과 싸울 때마다 애인이 필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애인과의 관계는 ‘극단적인 인간관계’일지도 모른다. 애인, 가족 등은 내가 엄청 바보 같은 실수를 해도 다 받아들인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이해해 줄 수 있는 타인이 필요하다.

진행:그렇다면 운명적 공동체인 가족은 나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유달리 가족 유대감이 강한 우리 사회에선 남다를 것 같은데.

강미선:10대엔 친구들하고 같이 있으려고 하면서 ‘가족’을 탈출하려고 했다. 20대가 되면서 중심축이 변했다. 다양한 내 삶의 축들 중에서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존재가 바로 가족이다. 힘들어도 가족에겐 기댈 수 있다.

남형준: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분들이 엄마와 아빠다. 아마도 엄마와 아빠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으면 대학을 못 갔을 것이다. 부모님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존재이니까, 내가 힘들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조언해 준다. 예전엔 부모님의 조언을 억지로 들었는데, 지금은 그 조언이 참 옳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조현욱:보통, 사람들은 가족을 당연한 존재로 생각하다가 그것이 틀어지게 되면 힘들어한다. 20대가 되면서 부모님의 삶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가족이 십자가이고, 지긋지긋한 굴레이기도 하지만, 내겐 아직 가족이 편안한 존재이자 행복을 주는 존재다. 어렸을 때는 ‘애증’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다. 어떻게 보면 부모님과 애인이 내겐 ‘애증관계’에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박선진:가족이 굴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 먹으면서 점점 내가 부모님을 닮아가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부모님을 이해하게 된다.

진행:20대는 행복의 최고 가치를 어디에 둘까?

강미선
강미선 ⓒ 여성신문
강미선:다큐를 보면,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이 거의 다 행복한 사람이 없더라. 갑자기 큰돈이 들어와서 개념 없이 쓰다가 파산을 많이 한다. 또한 자기가 이룬 것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면 계속 불만이 쌓이고 불행할 것이다. 결국 행복의 최고 가치는 감사와 만족감이다.

진행:자기 만족의 커트라인을 너무 높게 잡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

남형준:나의 경우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고,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는 것이 반복될 때 행복하다. 과거보다 뭔가 발전한 게 있으면 그것에 만족할 수 있다.

진행:어떤 이는 ‘내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의식적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한다.

조현욱:행복의 궁극적 가치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기가 열정을 쏟는 부분, 예를 들어 부모와의 관계, 자식과의 관계 등에서 인정받을 때 행복할 수 있다. 반면, 어떤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할 때 그 순간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게 된다. 지금 처한 상황이 어떤 면에서 어떻다고 정확히 아는 것이 가장 행복할 것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뭐고, 내가 못하는 게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으면 자신감도 생기고, 대인관계도 원만할 수 있다.

진행:행복은 자기 상황을 명철히 알아야 한다는 말인가.

박선진: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어느 공간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지를 알면 그곳에 있으면 행복해진다. 만약 쇼핑을 즐거워하는 사람인데 주변에서 ‘과소비’라고 비판을 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못하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진행:지금까지 개인의 행복을 얘기했다면, 이제는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행복을 만들어가고, 또 어떻게 행복을 주고받는 지를 이야기해 보자.

강미선:직장생활에선 같은 목표를 가지고 서로 타협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체 목표를 공유하고, 함께 목표를 성취하면 공동체가 행복한 게 아닐까.

남형준
남형준 ⓒ 여성신문
남형준:공동체에서는 ‘친밀도’가 중요하다. 일을 할 때에도, 서로 친해지면 믿음도 생기고, 일의 능률도 높아진다.

조현욱:다양성과 포용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만약 자신의 의견이 최고라고 얘기하기 시작하면 적이 생기고, 공동체가 무너진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

박선진:차라리 이해타산적인 관계가 오히려 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공동체 속에서 패거리 문화를 강조하고, 특정한 사람이 주도하면서 다른 것, 혹은 소수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행복하려면 공동체 역시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행복에 책임을 져야 한다.

진행:그렇다면 행복한 리더의 조건은 무엇일까. 방담을 마무리하면서 닮고 싶은 리더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강미선:딱히 멘토로 삼은 사람은 없다. 일단 성공한 사람이 리더라 해도 공동체에서 인정받았다고 말할 순 없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았을지라도 주변 사람한테 인정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능력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남형준:행복한 리더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현재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원 부원장은 유학파인 20대 형인데, 내겐 행복한 리더의 모델이다. 형이 내게 뭔가를 시킬 때, 이것을 해야만 한다는 메시지가 온몸에서 느껴진다.

조현욱:어떤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반대하는 입장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자기 쪽에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지만 상대방은 자기 삶을 통째로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리더는 생각을 표현하고 일을 진행해야겠지만, 반대 입장인 사람들에게 대의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박선진:개인적으로 리더는 별로 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조직 내에서 참모역할인 브레인(brain)이 되고 싶다. 리더는 의견 조정자인데, 결국 오해받고 적을 만들 수밖에 없다. 행복한 리더는 자신의 희망과 기쁨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리더는 굉장히 힘든 역할이다.

눈치 안보는 자유
20대의 ‘행복’ 키워드는

20대는 자기 세대만이 누리는 고유한 행복 조건으로 ‘자유를 맘껏 누리는 것’을 꼽았다. 기본적으로 ‘외동 아이’ ‘핵가족’ 세대이기에 이전 세대에 비해 웃어른, 형제자매 부대끼며 살던 환경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

강미선 LG텔레콤 광화문지점 영업대리는 "우리 세대는 자유를 맘껏 누리며 그것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고 말한다. 박선진 서울대 화학생물공학과 대학원생은 "20대는 표현의 가능성이 열려있고, 윗세대 역시 우리의 표현에 대해 관대하다"고 지적한다. 조현욱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레지던트는 "20대는 형제가 적고, 비교적 풍족하게 살아온 세대"라며 "그래서 별로 눈치를 안 본다"고 해석한다.

이처럼 풍요와 자유라는 성장배경은 20대의 대인관계 설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개인의 자율성과 차이, 비주류가 무시당하기 일쑤인 특정 공동체의 획일화된 패거리 문화, 포용성과 관용의 결핍이다. 반면 대인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선 깊이 공감하고 있다. 특히 관계를 맺어가는 데 있어 친밀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뢰와 일의 효율성을 함께 높여주기 때문.

방담회에 참석한 20대들은 "대인관계가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으는데, 그 대인관계의 폭이란 ‘기명’의 오프라인에서 ‘익명’의 온라인으로까지 확장된다. 이 점이 윗세대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 박씨는 이를 두고 "20대는 타인을 알게 되는 경로가 기성세대와는 많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개인 매체인 블로그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상상력, 표현력, 지성을 접할 때"도 현실 대인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

조씨는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행복한 대인관계의 기본"임을, 남형준 미 애모리대학 입학예정자는 "친구와 도움을 주고받을 때 가장 행복"함을 강조한다.

덧붙이는 글 | 취재·정리=장성순 객원기자 fountainj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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