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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바리 촘촘 디딤새 첫날 작품 김은이의 '꿈꾸는 허아비' 왼쪽 조현주 오른쪽 안무자 김은이
바리바리 촘촘 디딤새 첫날 작품 김은이의 '꿈꾸는 허아비' 왼쪽 조현주 오른쪽 안무자 김은이 ⓒ 김기
한국춤을 배우는 젊은이들은 아마 모두 '국립무용단원'이 되기를 염원할 것이다. 예술계가 과거와 달리 민간단체 및 개인들의 활약이 눈부신 요즘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무용계에서 '국립무용단'이란 이름은 최고를 의미한다.

최고의 자리는 오르기보다 유지하기가 어려운 법. 국립무용단의 최고를 향한 노하우 중 하나는 혹독한 단원들의 자기 실험일 것이다.

국립무용단(예술감독 배정혜)은 지난 2일부터 올해로 6회째를 맞는 '바리바리 촘촘 디딤새(아래 바리바리)'를 실험을 위해 만든 별오름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다. '바리바리'는 올해 다시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을 맡은 배정혜 감독이 전임 단장시절 만든 단원들의 수련 프로그램이다.

안무가가 준 동작만을 판박이 하듯 추는 춤은 결코 잘 추는 춤이라 할 수 없다. 스스로 안무가의 동작과 철학을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그 무용수의 표현으로 관객은 감동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안무가를 꿈꾸지 않더라도 일반 무용수가 안무 경험을 쌓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학습인 것이다.

김은이 안무 '꿈꾸는 허아비'
김은이 안무 '꿈꾸는 허아비' ⓒ 김기
'바리바리'는 국립무용단 단원과 외부 초빙 안무가가 이틀씩 총 8명이 무대에 선다. 모두 젊은 안무가들이 구성된 이 무대는 독특한 구조를 띈다. 일단 무용 제목이 논문 주제처럼 길고 딱딱하다. 그리고 구성도 1부는 한국 전통춤을 그대로 보여주고는 실제 실연자와 관객이 더불어 아주 구체적인 춤사위에 대한 시범과 질의 응답을 갖는다.

그 다음 2부로 넘어가서는 1부 전통춤에서 가져온 모티브를 중심으로 한 창작 실험춤을 보여준다. 그리고 모든 춤이 끝난 후에는 안무자가 관객들과 자유로운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물론 신진 안무가이기에 그 대화법이 이론가들이나 평론가들처럼 능숙하지는 않지만 세련되지 않은 화법이 오히려 더 풋풋한 설득력을 준다.

2일 첫무대는 배정혜 예술감독도 지켜보는 가운데 국립무용단 김은이 단원이 올랐다. 주제는 '문둥광대춤의 춤사위와 타북춤 춤사위의 비교분석 및 용어붙이기'이다. 대략 석사학위논문 정도의 무게감을 주는 주제이다.

고성오광대 놀이 제1과장인 문둥춤 시연(왼쪽) 오른쪽이 시연 후 세부 춤사위 시범. 시연자 허창렬
고성오광대 놀이 제1과장인 문둥춤 시연(왼쪽) 오른쪽이 시연 후 세부 춤사위 시범. 시연자 허창렬 ⓒ 김기
문둥광대춤은 중요무형문화재 7호인 고성오광대놀이의 제1과장에 해당하는 춤이다. 이 춤은 북춤으로 분류하면서도 실제로는 소고를 들고 춘다.

실제 나병에 걸려 손가락이 문드러진 경우라면 커다란 북을 들고 춤을 추기란 어렵기 때문에 소고로 바꾸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그렇다고 기존 소고춤과는 전반적으로 춤사위가 다르다. 대신에 문드러진 손의 형상을 살린 연기는 이 춤의 빼놓을 수 없는 맛이다. 과거 공옥진 선생의 병신춤처럼.

그런 전후의 이야기를 안무자는 실연자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객석에 전달하고 방학숙제 때문에 극장을 찾은 어린 학생들은 열심히 받아쓰는 모습도 보였다. 1부 전통춤 시연은 고성오광대놀이 이수자인 한예종의 허창렬이 자신의 광대패거리들과 보여줘 큰 박수를 받았다.

'꿈꾸는 허아비' 중 조현주의 독무
'꿈꾸는 허아비' 중 조현주의 독무 ⓒ 김기
2부는 김은이와 역시 국립무용단 단원 조현주가 등장하는 창작춤 '꿈꾸는 허아비'로 앞선 문둥춤에서 안무가는 허수아비로의 이미지를 변환하였다. 이 작품은 무대 속 주인공이 그림을 그리다가 꿈 속 혹은 상상 속의 허수아비를 만나서 벌이는 헤프닝을 그리고 있다. 마치 웬디를 찾은 피터팬을 만나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듯이 작품 중 인물을 허수아비를 통해 자기 내면의 장애를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김은이의 이 작품은 포스트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적인 요소들을 적절히 결합시켜서 그 실험성에 대해서는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극중 주인공의 일상에서는 관객들로 하여금 무대공간을 잊게 하는가 하더니, 허수아비와 만나 본격적인 춤으로 들어가서는 극도로 몽환적인 장면들을 통해서 불립문자의 대표적 예술인 춤의 이미지화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다.

김은이도 키가 큰 편이지만 자신보다 더 큰 여자 무용수인 조현주를 통해서 여성 2인무임에도 불구하고 파트너인 허수아비의 이미지 형상화에 성공하였다. 소녀 시절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보았을 상상 때문인지 공연이 끝나고 여중생들에게 소감을 묻자 2부의 창작춤이 더 좋았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춤은 비주류 예술 중 하나이다. 일상적으로 무용공연을 보러 다니는 일반인의 수도 적지만, 또 표를 돈 내고 사서 보는 경우도 대단히 적다. 그러나 비록 100석 정도의 작은 극장에 신진안무가이긴 해도 높은 매표를 보이는 '바리바리'는 방법에 따라서 한 무대에서 실험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대중성이란 바로 마니아 트렌드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배정혜 감독
배정혜 감독 ⓒ 김기
객석에서 만난 배정혜 감독은 "바리바리는 예술감독과 단원들이 더 큰 작업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춤에 대한 공감대를 쌓은 매우 중요한 준비작업이고 처음에 이 기획을 내놓았을 때에 주변의 우려가 컸다"며 "너무 전문적인 접근 때문에 대중이 싫어할 것이라는 것이었으나 바리바리는 그런 우려를 깨끗이 씻어냈다"고 말했다.

또 배 감독은 "전통춤과 창작춤을 한 자리에서 보여줌으로 해서 관객들은 전통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창작춤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으니 자연 춤이 재미있어진"면서 "모자란 부분은 안무자와 직접 대화를 통해서 보충하니 나중에라도 다시 오고 싶은 공연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 감독은 이어 "바리바리는 안무자와 예술감독이 만나는 횟수에 따라 그 수준이 결정된다"며 "앞으로 바리바리를 위해서 안무자들과 더 자주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무용단의 조용하지만 치열한 춤의 현재를 보여줘 스님들의 하안거와 같은 '바리바리 촘촘 디딤새'는 8월 2일(수)부터 27일(일)까지 별오름극장에서 막이 오른다. 국립무용단 소속 무용수로는 김은이, 김남용, 노문선, 이지영, 외부 안무자로 선화예고(강사) 홍은주, 이화여대(강사) 최준명, 광주예술고교(강사) 심현주, 한국예술종합학교(강사) 이해경 등이 차례로 공연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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