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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스스로 접은 물고기를 골판지에 붙여 보았다. 담수어와 해수어가 섞여 있어 생태계가 염려되는 바닷속이 탄생하였다. 맨 위의 상어는 이빨이 무시무시하다.
딸이 스스로 접은 물고기를 골판지에 붙여 보았다. 담수어와 해수어가 섞여 있어 생태계가 염려되는 바닷속이 탄생하였다. 맨 위의 상어는 이빨이 무시무시하다. ⓒ 이선희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은 타고난 놀이꾼이다. 장난감이 있으면 장난감으로 놀고, 장난감이 없으면 집안 살림을 장난감으로 만들어서 논다. 장난감도 제 용도로는 놀지 않고 제 멋대로 논다. 플라스틱 블록으로 김치도 담근다. 빨간 블록은 고춧가루, 초록색은 배추, 하얀색은 무 이렇게 상상하고 차곡차곡 끼워 김치를 담근다. 담근 김치는 동생 손이 닿지 않는 책장에 두고, 잘 익힌다.

마작방석이라 불리는 여름용 방석을 둘둘 말아서는 옥수수로 만든다. 이 옥수수를 동생과 나누어 먹을 때도 있다. 장난감이 전혀 없는 할머니 댁에 가면 수저를 모두 가져와 인형으로 삼는다. 수저의 크기에 따라 티스푼은 딸, 밥숟가락은 엄마다. 수저가 총 동원되면 곧 대가족이 된다. 얼마나 신나고 진지한지 딸 같은 애가 몇 명 더 있으면 장난감 회사가 곧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딸인지라 학교에서 여름방학에 하고 싶은 숙제를 세 가지 이상 써 오라고 했을 때 딸은 망설임 없이 첫째도 놀기요, 둘째도 놀기요, 셋째도 놀기였다. 그러다 스스로 겸연쩍었던지 첫째는 놀기 둘째는 여행 가기, 셋째는 할머니 댁 가기였다. 숙제의 내용에는 변함이 없고, 글자엔 변화를 주었다.

이런 딸을 꼬셔 여름방학 숙제로 종이 접기를 추가했다. 사실 딸은 손끝이 유난히 맵지 않아 종이 접기가 힘든 아이다. 딸은 싫다는 표정이 역력했으나 미리 준비한 가로 70센티 세로 50센티의 파란색 골판지를 보고는 혹한 생각이 들었는지 내 생각에 동의했다.

종이 접기를 가르쳐 볼까 하고 알아보았더니 재료비가 따로 드는지는 모르겠으나 일주일에 50분 종이 접기를 가르쳐 주고 한 달에 2만5천 원이었다. 50분 종이 접기 하는데 6천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또한 50분 동안 작품을 하나씩 접어서 아이들이 들고 오는데 내 눈에는 모두 선생님이 접어 준 것으로 보였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똑 같은 색종이로 한 판에 나오는 붕어빵처럼 접은 작품을 들고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니 딸을 보내고 싶은 생각도 접혔다. 그 돈이면 일년 동안 종이 접기를 배울 수 있는 책을 사고, 일년 동안 종이 접기를 할 수 있는 색종이도 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자전거에 둘째를 태우고 문구류를 저렴하게 파는 곳으로 가서 방학동안 딸이 만든 종이 작품을 붙일 골판지를 2장 샀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아이에게 적절한 것이라 생각이 드는 종이 접기 책도 주문했다. 며칠 후 책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딸에게 책보는 방법을 색종이를 옆에 놓고 제일 쉬운 것을 접으면서 가르쳤다.

같은 물고기를 열 번 정도 접자 딸은 책도 보지 않고 물고기를 접을 수 있게 되었다. 색종이 3비닐 정도를 물고기만 접더니 제 소꿉놀이 상자에 몽땅 넣는다. 그러더니 이젠 소꿉상자가 아니라 어항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의외로 딸의 반응이 좋아서 종이 접기 책을 하나 더 주문했다. 다양한 물고기를 만들어 보기 위해서였다. 딸은 익숙해진 물고기만 접고 싶어했다. 다른 것을 접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딸에게 말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무서워 말고, 즐겨봐라."

딸은 즐기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책을 펴고 가자미를 접었다. 옆에서 다시 책보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아이에게 조금 어렵다고 느껴지면 그 방법을 수정하거나 생략해서 아이가 스스로 접기에 흥미를 느끼도록 유도했다.

아이는 2주에 걸쳐 종이 접기 책을 옆에 두고 색종이를 맘대로 쓰며 종이를 접었다. 다양한 크기의 종이 접기를 위해 색종이를 잘라 주었다. 색종이가 작으면 손이 작은아이들에게 부담이 없어 좋다. 접은 작품 가운데 몇 개를 골판지에 붙여 집게로 벽에 걸어주었다. 아이는 제 스스로 한 일이 뿌듯한지 얼굴 가득 자랑스러운 빛이 번졌다.

나는 생각했다. 유태인 속담에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 주면 하루 식량이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 식량이라 하지 않았던가. 딸이 평생 식량 마련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딛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대견스럽다.

덧붙이는 글 | 제 네이버 블로그에도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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