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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의 공동주최 행사 일방적 철회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조선일보> 2일자 기사.
정부 부처의 공동주최 행사 일방적 철회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조선일보> 2일자 기사.

청와대가 <조선일보>에 대해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했다.

환경부와 경찰청은 1일 관련 실·국장들이 조선일보사를 방문해 <조선일보>와 공동주최해온 '조선일보 환경대상'과 '청룡봉사상'에 대한 '공동주최'를 철회하겠다고 통보했다. 전날 교육인적자원부가 <조선일보>에 '올해의 스승상'을 공동 주최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지 하루만의 일이다.

<조선일보>도 1일자 1면 기사와 사설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공식 확인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날 "교육인적자원부가 <조선일보>와 '올해의 스승상' 공동 주최를 하지 않겠다고 본지에 일방 통보한 데 이어 다음날인 1일에도 환경부와 경찰청이 조선일보 환경대상, 청룡봉사상의 공동 주최를 철회한다고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경찰청은 이날 오후 정봉채 경무기획국장과 최원태 인사과장이 본사를 방문, 아무런 사전 상의 없이 청룡봉사상 공동주최 철회를 일방 통보했고, 환경부는 이날 오전 문정호 환경정책실장과 심무경 민간환경협력과장을 본사에 보내 공동주최 철회를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철회 결정에 청와대 입김 강하게 작용한 듯

<조선일보>에 따르면 청룡봉사상은 지난 1967년 당시 내무부(현재는 경찰청)와 <조선일보>가 공동 제정해 묵묵히 헌신하는 경찰과 희생적인 봉사활동을 해온 시민들에게 40년 동안 시상해온 상이다. 또 환경대상은 지난 1993년 당시 환경처(현 환경부)와 조선일보가 깨끗한 환경을 지키도록 노력해온 환경 파수꾼에게 14년간 공동으로 수여해온 상이다.

따라서 이처럼 정부 부처들이 줄줄이 이 신문사와 '공동주최' 해온 각종 상(賞)을 하루아침에 철회한 데는 청와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부처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양새가 좋지 않아 특정 언론사와 공동사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환경부와 교육부는 <조선일보>와의 공동 주최에서 손을 떼겠다는 통보와 함께 별도의 환경상과 교사상을 만들겠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환경부는 불과 한 달 전인 6월 29일 이치범 장관이 직접 참석해 '조선일보 환경대상'을 시상하며 "<조선일보>사의 환경 보전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국민과 기업이 환경 보전을 실천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치하한 바 있다.

청와대는 이 문제에 관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나 비공식적으로는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각 부처가 <조선일보>와 공동주최해온 시상을 철회한 배경을 묻는 질문에 "다 알면서 뭐하러 물어보냐"는 투로 대꾸했다.

교육부에 이어 경찰청과 환경부가 <조선일보>와 공동주최해온 시상을 철회할 것이라는 첩보는 두 부처에서 이 신문사에 공식 통보하기 전인 1일 오전부터 거론되었다. 각 부처가 특정 언론사와의 '관계 설정'에 대한 관련 정보를 '공유'했다는 사실은 청와대 차원의 '지시'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전면전'의 예고편은 <조선> '계륵 칼럼' 공방

청와대와 <조선일보>간 전면전의 개봉박두를 알리는 '예고편'은 이미 지난 7월 28일에 나왔다.

이날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은 <조선일보>사에 전화를 걸어 "정면 대응하겠다"고 공식 통고했다. 이어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비서실은 최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보도와 관련하여 비서실 차원에서 두 신문에 대한 취재협조를 거부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 대변인은 "(취재협조 거부는) 청와대 비서실 전직원이 해당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특정언론사의 취재를 거부키로 한 것은 2003년 9월 <동아일보>가 권양숙 여사가 아파트 분양권을 미등기 전매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데 대해 '사실확인도 않은 악의적 보도'라며 취재거부 조처를 취한 데 이어 두 번째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청와대 비서실 차원이 아니라 홍보수석실에 한해 취재를 거부했었다.

이어 이백만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춘추관 2층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브리핑을 통해 두 신문의 보도 태도에 대한 청와대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 언론 논조나 표현을 반박할 경우 청와대는 통상 대변인이 논평하거나 '청와대 브리핑'에 반박글을 게재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이날은 홍보수석이 직접 TV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표' 형식을 취할 만큼 청와대는 '전의'를 불태웠다. 이 수석은 두 신문을 '사회적 마약'으로까지 비유하며 이렇게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오늘 1면 기사에서 국가원수를 먹는 음식(계륵 : 닭갈비)에 비유했습니다. <동아일보>는 논설위원 칼럼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약탈정부'로 명명했습니다. 기사 곳곳엔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섬뜩한 증오의 감정이 깊이 묻어 있습니다. 해설이나 칼럼의 형식만 띄고 있을 뿐 침뱉기입니다."

청와대가 비판 대상으로 삼은 칼럼은 이날 <조선일보> 1면의 '계륵(鷄肋)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정치분석 기사와 동아일보의 이날 '세금내기 아까운 '약탈정부''와 전날 '대통령만 모르는 '노무현 조크''라는 제목의 2개 칼럼이다.

여당 의원 "철회의 방향은 옳지만 '감정적인 보복'"

결국 정부 부처의 공동주최상 철회는 '계륵 대통령' 칼럼이 빚은 청와대의 취재협조 거부에 이은 두 번째 '사단'인 셈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로 정부 부처의 특정언론사에 대한 공동주최상 철회는 '감정적인 보복'이라는 지적이 여당 내부에서도 나온다.

언론개혁을 강조해온 여당의 한 의원은 "개별 언론사 행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협찬 폐지와 언론사에 대한 장기저리 은행여신 중단은 참여정부 초기부터 청와대에 언론 개혁 차원에서 제안한 것"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보면 정부가 특정언론사와 공동주최해온 상을 철회한 것은 오히려 만시지탄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의원은 "언론개혁 차원에서 참여정부 초기에 했어야 할 일을 미루다가 이제 와서 '계륵 대통령'이니 '약탈정부'니 하는 사단을 겪고서 이런 조처를 취하니 일반 국민에게 감정적 대응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개별 언론사에 대한 정부의 각종 지원 및 협찬 실태와 장기저리 은행여신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청와대와 <조선일보> 사이에 감도는 '전운'이 수그러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은 내일(3일) 국정홍보처와 '국정브리핑' 제작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 하며 격려할 예정이다.

이날 오찬은 원래부터 예정된 일정이 아니고 중간에 '끼어든' 대통령 행사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때가 때이니만큼, 이날 오찬은 정부 정책홍보의 '첨병'들에 대한 단순한 격려 자리가 아니라 '독전'(督戰)과 '전의'를 다지는 오찬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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