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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그게 "아휴~ 지겨워! 저 남자하고 왜 결혼했는지 몰라"하는 푸념 한 마디로 끝나면 말 그대로 '칼로 물베는' 부부싸움이다. 그런데 평소엔 그렇게 짠하게 보이던 남편이 '아, 정말 저 남자 뒤통수도 보기 싫다'가 되면 그건 바로 전쟁의 시작이다.

얼마 전까지 나도 그랬다. 남편의 뒤통수도 보기 싫었다. 저 남자가 7년 세월 한 이불 덮고잔 내 남편이란 말인가. 어떤 고난도 손 꼭 잡고 헤쳐나가자던 내 남편인가.

남편이 낯선 존재로 느껴질 그 무렵, 만화 한 컷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우리 부부야, 웬수야?'.

▲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우리 부부야, 웬수야?>를 책으로 묶어 출간한 강인춘 기자.
ⓒ 오마이뉴스 조경국
바로 <오마이뉴스>에 강인춘(강춘) 기자가 연재한 만화에세이 <우리 부부야, 웬수야?>(2005.5~2006.6)였다. 난 반나절 넘게 컴퓨터 앞에 앉아 그의 그림을 보면서 울고 웃었다. 그리고 나와 닮은 무수히 많은 여자를 그 만화 에세이에서 만났다.

<우리 부부야, 웬수야?>(추수밭 펴냄)를 책으로 엮어낸 강인춘 기자를 지난 7월 말 만났다.

"죽다가 살아났을 때, 이게 떠올랐다"

-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만화 중 100꼭지를 골라 책으로 내셨는데 딱히 부부에 대해 연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2년 전 구강암 판정을 받고 죽음의 갈림길에 서게 됐을 때, 살고 죽는다는 것엔 별 미련이 없었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니 가슴 속이 뭉클했습니다. 더군다나 30년 넘는 세월을 고부간 갈등으로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었을 아내에겐 그 죄책감이 암보다 더 무거운 무게로 저를 짓누르더군요.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새 생명을 얻게 됐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그때 문득 아내 생각이 나더군요.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보상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뭐, 그런 못난 남편의 참회 같은 그런 마음이라고 하면 적절할지 모르겠군요. 예순을 훌쩍 넘긴 이 나이에 그간 살아온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한 것이니 내용이 그리 허무맹랑하지는 않을 겁니다."

- 내용이 정말 현실적이고 다양하던데 소재는 어디서 얻으시나요?
"90%는 제 경험입니다. 참 부끄러운 이야기죠. 그리고 독자들이 보내주는 쪽지에서도 소재를 많이 얻습니다. 이따금 아주 심각한 부부 문제를 상담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그냥 흘려버릴 수는 없죠. 그런 것들은 여느 부부나 다 겪을 수 있는 고충들이기 때문에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었어요."

"고부관계, 남편이 맛있는 샌드위치 돼야죠"

- 진실로 마음을 열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싶어도 고부관계는 영원히 평행선을 긋는 기찻길과 같은 거라고 하셨던데.
▲ 강인춘 기자.
ⓒ 오마이뉴스 조경국
"처음 보는 아이를 '며느리'라고 불러야 하는 시어머니는 '네가 우리 집으로 시집왔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네 어머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어느 날 갑자기 처음 보는 낯선 어머니를 '시어머니'라고 불러야 하는 며느리는 '그런데 왜 어머니는 친어머니처럼 날 대해주지 않나요?'라고 생각합니다. 불화의 씨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번 생각을 바꿔 보면 어떨까요? '며느리는 내 아들이 사랑해서 결혼한 여자' '시어머니는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어머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 즉, 각자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마련입니다. 시어머니가 먼저 사랑을 베풀어야죠.

또 중요한 한 가지. 고부 갈등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바로 남편입니다. 남편들이 '맛있는 샌드위치'가 되어야 합니다. 어머니의 입맛뿐만 아니라 아내의 입맛에도 맞는 여러 가지 채소와 고기들을 빵 속에 한 겹 한 겹 채워 넣어 어머니와 아내, 둘 다의 입맛을 맞추는 거죠."

- 재미있는 비유이긴 하지만 남자들이 참 힘들겠네요. 반대로 여자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인가요?
"남편은 여자들이 기대고픈 거목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세차게 몰아쳐 오는 태풍을 막아줄 그런 거목이 바로 남편이어야 합니다. 여자가 외롭고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넓은 품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살아보니 부부는 '이심이체'더라

- '부부일심동체'가 아니라 '부부이심이체'라고 하셨더군요.
"부부는 일심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낳아준 부모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른 남녀가 어떻게 모든 것을 초월해서 한마음 한 몸이 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부는 마음도 몸도 다른 두 남녀가 만나 일정 기간 정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면서 살아가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이심이체(二心二體), 부부도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원만한 부부관계를 원한다면 다름을 인정하고 섬기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그런데 책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론으로 따져볼 땐 적절할지 몰라도 실제 실천하기 어려운 것도 많던데 출간 후 주변에서 혹 그런 이야기를 들으신 적은 없으세요?
"더러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요. 한두 페이지 넘겨본 사람들은 아마 이론으로 끝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뭔가 가슴에 와 닿는 게 있을 거라 저는 분명 장담합니다. 거기에 솔직담백하게 그때그때 함께 실린 댓글들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가슴에 와닿는다는 건 분명 자신도 그런 문제에 봉착해 있다거나 앞으로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다소의 염려 때문이니까요. 그 다음은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알게 모르게 그 이론들을 실천하게 될 겁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남자든 여자든 원만한 부부관계 또는 원만한 고부관계를 위해서 뭔가는 분명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 강 선생님은 공처가세요? 애처가세요?
"글쎄요. 지나온 세월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애처가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앞으로도 계속 애처가로 남은 세월을 살고 싶습니다."

구세대 만화라고요? 신세대 총각들이 더 좋아해요

▲ <우리 부부야, 웬수야?> 책 겉표지.
ⓒ 추수밭
- 요즘 신세대들 사이에서도 이 만화가 먹히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요즘 세대들은 강 선생님이 부부생활을 해온 시대와 다른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저도 신세대들의 반응이 의외로 뜨거운 것에 사실 놀랐어요. 지금 당장 당면한 문제는 아니지만 앞으로의 부부관계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아주 고마워하더라고요. 특히 총각들의 반응이 아주 뜨거웠어요. 그걸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제 블로그죠. 제 블로그에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들이 바로 남성분들, 특히 신세대들이죠.

또 갓 결혼한 어떤 신부가 결혼하자마자 시어머님과의 문제에 부딪혀 많이 힘들어하기에 내 딸자식에게 보여주는 진실한 심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어요. 스스로 잘 대처해 나가는 걸 보고 정말 가슴이 벅찼어요."

- 개중에 부정적인 의견도 있던데요.
"왜 없었겠어요. 어떤 이는 그러더군요. '강춘이란 사람은 원래 사고력이 비뚤어진 사람이다. 모든 것을 항상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만화 속 내용이 다 문제투성이들이다'라고요. 그 당시엔 정말 난감했는데 차분하게 이해를 시켰어요.

'내 그림의 제목이 무엇이냐. <부부야, 웬수야?> 하고 묻는 것이다. 원만한 부부관계라면 이렇게 물을 필요가 없다. 어느 부부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웬수야?'하는 물음이 나올 수 있는 문젯거리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문제들을 슬기롭게 이겨내어 원수가 아닌 부부가 되자는 이야기로 봐달라'고 했죠.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어요."

- 이 책 디자인도 손수 하셨다고요? 또 댓글까지 책에 넣자고 한 건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이번 출간이 두 번째입니다. 첫 출간의 아쉬움을 해소하고자 이번엔 정말 내 나름의 역량을 다 발휘하고 싶었어요. 댓글, 그림, 캡션. 이 세 가지를 다 적절하게 포함해 달라는 제 제안에 사실 출판사도 무척 힘들어했어요. 그 때 출판사에서 그러더군요. 전공이 디자인이니 직접 하면 어떻겠느냐고. 그래서 직접 디자인을 하게 된 거예요.

무엇보다 블로그에서 공감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던 댓글을 그대로 실을 수 있어서 아주 만족해요. 아마 본격적인 댓글 서적은 <부부야, 웬수야?>가 원조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어버리는 인생사~"

강인춘 기자는?

강춘(강인춘)은 1960년대 초 홍익대학교 미대를 다니던 시절에 오일 페인팅으로 범벅이 된 청바지를 즐겨 입었습니다. 지금이야 멋을 내려고 일부러 찢기도 한다지만, 그땐 청바지 한 벌로 몇 년을 버티느라 다 낡고 닳아빠진, 누더기 같은 옷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캔버스에 열심히 꿈을 그려 나갔습니다.

한때는 애니메이션에 빠져 TBC에서 방영한 <황금박쥐>의 키 애니메이터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KBS에서는 <여로> <실화극장> <파도> 같은 드라마의 타이틀 미술을 개척했습니다. 또 장충동에 있는 국립극장에서는 무대디자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후 동아일보사 미술부에서 23년간 근무하면서 일러스트레이션과 북디자인에 온 젊음을 후회 없이 불태웠습니다. 1994년에도 문화부(지금의 문화관광부)에서 '한국어린이도서상'(일러스트레이션 부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여보야> <사랑하니까 그리는 거야> <내 동생 철이 때문에 속상해요>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지금은 서울 마포에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인터넷 신문 등에 그림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강춘의 남자, 여자>(blog.ohmynews.com/
kangchoon)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강춘의 <부부야, 웬수야?>에서 발췌
한동안 내 귀를 맴돌던 유행가 가사. 수십 번을 곱씹어도 정말 "탁월한 가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그 가사처럼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 점 하나만 찍으면 되는 건데, 왜 그 점 하나 찍기가 그리 힘든지….

그 이유에 대해 나는 꽤 긴 시간 동안 머리 싸매고 고민했다. 강인춘 선생의 만화 에세이에서 나는 그 해답을 찾았다.

"굽이굽이 부부의 길- 부부가 평생을 살면서 줄곧 한길로만 올수 있다면 충분히 존경받을 것이다. 그런데 평생을 부부로 살면서 곧장 오는 것보다 굽이굽이 돌면서 오는 것이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 <우리 부부야, 웬수야?> 중에서

그 유행가의 다음 노랫말도 바로 이게 아니던가.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면 님이 되어 버리는 인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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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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