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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학 때 뭘 좀 해보겠다고 휴학계를 냈던 경험들이 더러 있지요. 하지만 이어지는 일상을 접고 다른 무엇을 한다는 게 기대한 것보다 많은 성과물을 주지는 않다고들 했습니다. 얻은 게 아주 없지는 않았겠지만.

산골에서 한 번 나서기가 쉽지 않은 먼 길, 하고팠던 일이야 좀 많았을까요. 그런데 어느 틈에 이 도시에서의 마지막 주말입니다. 보지 못한 시간 동안 아내를 맞고 아이를 낳은 절친한 미국인 친구가 차로 다섯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굳이 오겠다는데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한 공동체에 방문해야 하지만 오가는 경비가 만만찮아 뜻을 접기도 했으며, 그다지 멀 것도 없는 곳에 있는 예술학교 방문도 어깨통증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시기를 놓치고 말았지요. 하는 것 없이 날이 갔고, 그나마 가족들이 모여 같이 보낸 즐거움으로 모든 것을 상쇄하고 있지요.

그래도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다른 곳에서 얼굴만 알았던 사서를 몇 해만에 다시 만나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굳이 책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유쾌했던 시간들이었지요. 모든 도서관과 필드뮤지엄이 연계되었던 이 여름의 큰 주제였던 고대이집트 여행은 나일강변으로 우리들을 자주 데려다 주었으며, 그런 가운데 고고학자의 꿈을 키우는 아이도 있었답니다.

장기적인 계획 아래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도서관의 많은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이 도시에서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풍성한 교육프로그램에 사뭇 놀랐습니다. 일상적으로 사람을 길러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화지층이 얇네, 역사가 짧네' 하며 비난해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무서움이 일기까지 하였지요. 이들의 패권주의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형성해 내고 문화적 배경을 채워내는 걸 들여다보며 만만찮은 나라임을 자주 실감했습니다. 저희 집 아이 역시 본래 책을 잡고 있는 걸 좋아했지만, 이 도시의 프로그램 덕분에 책을 더 의미 있게 만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주말마다 가던 수영장이니 오늘이 마지막이지요. 제법 먼 그 길은 아이와 나누는 수다로 즐거운 길이었습니다. "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했어!" 아이는 요새 읽고 또 읽는 책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떻게?" 집에 가서 저녁에 얘기하자고 합니다. 진지한 이야기라는 거지요.

"아주 옛날에 읽어봐서 잘 모르겠는데…." 아이는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빅토르 위고의 고전이지요. 배고픈 이가 빵 한 조각을 훔치고 탈옥하다 19년 동안 감옥에서 보내면서도, 어떻게 증오를 걷어내고 사랑을 재현해내는지에 대해 내 어린 날에도 깊은 울림을 주던 바로 그 '장발장'입니다.

"마지막이 제일 감동적이에요. 어떤 사람이 그의 비석에 시를 썼어요. '생의 모든 거센 파도를 헤치고 살아나온 이 여기에 잠들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죽었네. 낮이 지나 밤이 오는 것처럼.' 그러니까 시예요. 이 문장이 젤 좋아요. '낮이 지나 밤이 오는 것처럼'. 감동적이죠?"

집으로 돌아온 뒤 아이는 평생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했습니다. "생각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래서 힘을 기를 거야!"

아이의 일기장에서도 더러더러 그런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지요. 결심한다고 해서 생을 우리 뜻대로 살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정진하며 나아가야겠지요. 좋은 책들이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이 아이 생의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2006. 6. 26. 달날. 맑음
저녁에 <레미제라블(장발장, 불쌍한 사람)>을 읽고 있다. 두세 번 읽어본 적이 있지만 계속 읽어도 재밌다. 특히 끝은 감동이다. 장발장이 죽으면서 딸도 아닌 사람한테 재산을 물려준다. 그의 무덤에는 동물이 많이 놀러온다. 내 생각엔 그가 착해서일 것 같다. 더 못 말할 이유는 까먹었기 때문이고 지금 한 내용 오늘 읽었다.

2006. 6. 28. 물날. 맑음. 비 옴. 흐림
오늘 <레미제라블>을 더 읽으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알게 됐다. 이런 내용이다. 부자가 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나눠준다. 먼저 힘('지혜')을 길러야 하고 그 지혜를 써먹을 줄도 알아야 되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누구를 어떻게 도와줄지 알아야 되고 어떤 게 가난한지를 알아야 된다. 난 이렇게 살려고 노력할 거다.


2006년 7월 22일 흙날, 저녁 비

덧붙이는 글 | 옥영경 기자는 생태, 교육,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1989년부터 관련 일을 해오고 있으며, 이어 쓰고 있는 ‘가난한 산골 아줌마, 미국 가다’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서 들어간 산골에서 잠시 나와 미국에서 두 달을 체류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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