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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혈 입구.
풍혈 입구. ⓒ 김현

섬진강 줄기에 있는 대두산 아래 풍혈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산(山) 에어컨'이다. 바깥 기온이 섭씨 30도가 웃도는 날씨에도 이곳 산자락 아래에 서 있으면 더위가 가실 정도로 시원한 냉기가 전해온다.

'풍혈'은 바위틈에서 나오는 바람구멍이다. 여기서 찬바람이 나오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바깥의 공기가 틈새가 많은 돌 사이로 들어가 움직이다가 바깥으로 다시 나오는 순간 단열팽창하면서 급격히 열을 빼앗겨 찬바람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냥 설(說)일 뿐이다.

풍혈 안 모습. 정말 몸이 오싹하도록 춥습니다.
풍혈 안 모습. 정말 몸이 오싹하도록 춥습니다. ⓒ 김현

풍혈 중 찬바람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에 벽을 치고 지붕을 얹은 곳이 있다. 지금은 식당 겸용으로 사용되며 여러 음료와 동동주, 도토리묵과 파전 같은 음식을 팔고 있다. 이 풍혈을 관리하고 있는 김 총각은 예전엔 두 평 정도 크기로 막아 놓아 누에씨 같은 것을 보관했는데 몇 년 전 공간을 늘렸다고 한다. 공간을 늘리기 전엔 한여름에도 섭씨 2도 정도 했는데 지금은 약간 온도가 올라갔다며 순박하게 웃는다.

풍혈 안에 있는 온도계가 6도 정도 가리키고 있습니다.
풍혈 안에 있는 온도계가 6도 정도 가리키고 있습니다. ⓒ 김현
문을 열어주는 김 총각을 따라 안에 들어가자마자 온몸이 으스스하다. 이내 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5분도 안 돼 오슬오슬 추워진다. 이때 동행했던 아이들이 "으, 추워, 정말 추워요"라며 밖으로 나가자고 엄살 아닌 엄살을 피운다.

온도계는 6도를 가리키고 있다. 바깥 기온이 얼마인데 6도라니…. 문 하나 차이로 천국과 지옥이 나눠진다더니 한여름엔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싶다. 안에 있는 음료수와 수박 같은 과일을 만져보니 냉장고에 있는 것보다 시원하고 차갑다.

"이곳에 오려면 두꺼운 긴팔 옷을 가지고 와야 쓰것네요. 그냥 들어오면 금세 감기 들겠어요."
"하하. 모르는 사람은 왔다가 오래 있지도 못하고 구경만 하다가요. 그리고 나중에 두꺼운 옷을 가지고 오는 사람 많아요."
"주말엔 들어갈 공간이 없겠어요."
"없지요. 여기서 매운탕이나 파전에 동동주 한 잔 하고 요 앞 냉천(冷泉)에서 시원한 물 한 잔 하면 그만이에요.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은 냉천의 물은 안 마시고 이곳만 들렀다 가기도 하죠."

'냉천'은 풍혈과 지척지간이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이 냉천의 물은 섭씨 3~4도 정도 되는 석간수로 그 맛이 물중의 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일품이다. 한 잔 떠서 마시면 뼛속까지 시원해진다. 냉천의 물을 마시면 위장병과 피부병 같은 병도 나으며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이 약을 달이는 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냉풍이 새어나오는 바위틈.
냉풍이 새어나오는 바위틈. ⓒ 김현

약수로 먹는 냉천 앞에는 냉천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가두어 놓은 곳이 있다. 손을 담가봤다. 한겨울 냇물에 손을 집어넣은 것처럼 시릴 정도로 차갑다. 함께 간 아이들이 송 선생한테 물속에 들어가 누가 오랫동안 있는지 겨뤄보자고 한다.

"선생님, 누가 오래 견디나 겨뤄봐요."
"야, 너희가 당연히 지지."
"그거야 대봐야지요. 그럼 우리 아이스크림 내기해요. 먼저 나간 사람이 사주는 걸로."
"좋아. 너희들 약속 지켜라."
"히히 선생님이나 지키세요. 그럼 빨리 들어오세요."

허준 선생이 약 달이는 물로 사용했다던 냉천.
허준 선생이 약 달이는 물로 사용했다던 냉천. ⓒ 김현

송 선생과 혜림이, 지은이가 빨래터 같은 물속에 들어간다. 시간은 내가 쟀다. 2분이 지나자 지은이가 발 시려 더 이상 못 있겠다며 나가려 하자 혜림이가 허리를 붙잡고 못나가게 한다. 나가네 못 나가네 하는 모습에 웃음보가 터진다. 4분이 지나자 송 선생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참고 참다 못 견디고 나왔다며 아이들한테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웃는다.

냉천에서 한바탕 장난치고 웃으며 나오는데 '풍혈냉천'이란 수퍼마켓 앞에서 아주머니 세 명이 물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매운탕거리로 쓸 꺽지와 모래무지란다.

발을 담그고 있는 아이들. 물에 들어가 3분 이상 견디기 힘듭니다.
발을 담그고 있는 아이들. 물에 들어가 3분 이상 견디기 힘듭니다. ⓒ 김현

"이거 직접 잡으신 거예요?"
"그럼요. 요 앞 내깔(냇가)에서 다 잡은 거지요."
"이건 모래무지인데, 이건 뭐래요?"
"젊은 양반이 요것도 몰라. 이게 꺽지라는 놈인디 매운탕 해놓으면 징하게 맛나당게. 한 번 먹어보라요."
"네네. 근데 할머닌 연세가 어떻게 된데요?"
"왜 나일 물어. 중신이라도 설라요? 나 여든 아홉이여. 이왕 해 줄라면 쪼매 젊은 사람으로 해줘요잉. 나 아직도 창창하당께."
"에이! 그렇게 안 보이는데…. 진짜 몇 살이래요?"

물고기 손질을 하고 있는 세 아주머니(할머니?). 안경 쓰고 웃고 있는 분이 여든 아홉이라 농담하던 정전순씨입니다.
물고기 손질을 하고 있는 세 아주머니(할머니?). 안경 쓰고 웃고 있는 분이 여든 아홉이라 농담하던 정전순씨입니다. ⓒ 김현

그러자 옆에서 모자를 푹 쓰고 얼굴 보여주기 싫어하던 아주머니가 깔깔대며 예순 여섯이라고 말해준다. 그러면서 진짜 "홀엄씨"라며 남자 하나 소개해주라고 농담한다. 뭘 먹고 피부가 좋으냐고 물으니, 여든 아홉이라며 웃음을 주던 정전순 씨가 "좋은 공기 마시고, 욕심 없이 살고, 글구 이곳 냉천의 물을 마시닝께 그러지"라며 안경 쓴 얼굴로 해맑게 웃는다.

장마가 끝나면 무더위가 시작된다고 한다. 바다도 좋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도 좋지만, 에어컨보다 시원한 바람이 흘러나오고 얼음보다 시원한 석간수가 솟아나는 이곳 '풍혈냉천'에서 매운탕이나 파전에 동동주 한 잔 걸치며 시원한 여름을 보내보자. 아이들과 함께 오면 바로 앞 냇가에서 모래무지나 꺽지도 잡고 물장구도 치며 옛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입장료 없습니다.

☞ [기사공모] 2006 이 여름을 시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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