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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봉을 했던 벌통입니다. 지난 5월말에 했는데, 또 하네요.
분봉을 했던 벌통입니다. 지난 5월말에 했는데, 또 하네요. ⓒ 배만호
벌들이 살기 힘들다며 이사를 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곳(경남 함안 가야읍)은 큰 도시는 아니지만 작은 읍이 있는 도시이고,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벌을 키운다고 할 때에 벌을 주시는 분도 반대를 했습니다. 괜히 벌만 아깝게 한다며 말리셨습니다. 저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틈새를 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시와 가까우니 양벌을 키우는 사람도 없을 테고, 토종벌은 더욱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 제가 벌을 키우면 잘 될 것 같지 않을까요?"

그렇게 고집을 부려 가져온 두 통의 벌들이 봄과 여름을 맞이하여 세력을 잘 키워 갔습니다. 벌통이 한 단씩 올라갈 때마다 벌을 주셨던 분께 전화를 해서 자랑을 했습니다. 하지만 별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마지막까지 봐야 한다며 성급한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이지요. 초여름 무렵에는 죽는 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전화를 해서 안타까움을 이야기하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농약을 많이 치니깐 그래요. 그냥 팔자려니 하고 남은 벌들이나 잘 살펴 주세요."

죽는 벌들이 몇 마리 생길 즈음에는 벌통에 있는 벌의 수도 많이 줄었습니다. 바쁘게 오가던 벌들이 한산해 졌습니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러다 다 도망가 버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아침저녁으로 벌들을 보며 인사를 했습니다. 다행히 다른 좋은 집을 찾아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6~7m 높이가 되는 커다란 고목나무 위에 붙은 벌입니다. 저걸 받으려고 두 시간동안 '벌 받은 것'이지요.
6~7m 높이가 되는 커다란 고목나무 위에 붙은 벌입니다. 저걸 받으려고 두 시간동안 '벌 받은 것'이지요. ⓒ 배만호
첫 번째와 두 번째 분봉은 하늘만 맴돌다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세 번째 분봉은 높은 나무에 붙었는데, 제가 하고 있는 일 때문에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분봉을 하는 것처럼 벌들이 날아다니니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더구나 장마 기간에 분봉을 한다니요.

전화를 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그냥 마음을 비우라는 말만 하였습니다. 두 통 벌에서 네 번 분봉을 하는데, 마음을 비우라니요. 욕심 부리지 않으려고 설탕물조차 먹이지 않고 키우는데, 그래서 제대로 된 꿀을 조금 먹어보려고 했는데….

설마 분봉하는 것이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돌아서려는데, 높은 가지 끝에 시커멓게 붙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벌이었습니다. 설마 하던 것이 사실이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저걸 어떻게 받아…?'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눈으로 대충 봐도 5m는 넘어 보이는 높이였습니다. 서둘지 않고, 당황하지 않으며 하나씩 일을 해 나갔습니다. 우선 기다란 장대 두 개를 이었습니다. 사다리도 가져다 두었습니다. 벌들이 살 새 집도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벌을 본격적으로 받을 작업을 했습니다. 잠시 햇살이 보였으니 다시 구름이 끼어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겨우 받았습니다. 이젠 저걸 떼어다가 좋은 자리에 집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겨우 받았습니다. 이젠 저걸 떼어다가 좋은 자리에 집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 배만호
사다리에 올라 벌을 받는 일은 말 그대로 '벌 받는 일'이었습니다. 고개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처음 하는 일이라 벌들은 쉽게 안 받아졌습니다. 벌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사다리에서 뛰어내려 도망가기를 네 번이나 한 다음에야 겨우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떨어지는 벌에게 귀를 쏘이기도 했습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하더니, 그 벌은 날개가 없었는지 귀로 떨어졌습니다.

겨우 제 자리에 벌통을 두었습니다. 이젠 저 벌들이 '이곳이 참 살기 좋은 곳이다'라고 느낄 때까지 잘 보살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살기 힘들다며 다른 좋은 곳을 찾아 가 버리면 두 시간동안 벌 받은 일이 정말로 '벌 받는 일'이 될 테니까요.

새로운 보금자리입니다. 이곳에서 벌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랍니다. 새집으로 이사 온 선물로 아카시아꿀도 주었습니다.
새로운 보금자리입니다. 이곳에서 벌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랍니다. 새집으로 이사 온 선물로 아카시아꿀도 주었습니다. ⓒ 배만호
두 시간동안 '벌' 받은 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팔에는 힘이 빠져 숟가락을 들기도 힘듭니다. 제게 벌통을 주신 분은 5분도 안 걸리는 일은 저는 두 시간이 넘게 했습니다. 벌들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몇 번씩을 날았다가 다시 붙었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 토종꿀 1kg이 만들어지려면 벌들이 600만에서 1000만번이 넘는 수의 꽃에서 화분을 모아야 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벌을 키우는 농부의 정성까지 합하면 엄청나지요. 한 숟가락 꿀을 먹을 때에 잠시라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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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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