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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OO시 감사결과처분서.
ⓒ 전진한

최근 행정자치부는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정부합동감사를 벌이고 있고 그 결과를 언론과 홈페이지를 통해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감사결과를 천천히 분석해보니 기자가 관계하고 있는 '기록관리분야'에 대해서도 공개되어 있었다.

결과를 보니 기록관리실상이 가관도 아니다. 중앙정부차원에서 기록관리분야를 바로 잡기 위해 수많은 예산과 인력을 들여 대대적인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는 그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감사결과는 충격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공공기관의 기록물을 폐기하기 위해서는 기록물관리법에 따라 '기록물폐기심의회 심의와 기록전문요원의 심사'를 받아야 하고 이를 어기고 기록물을 무단 폐기할 때에는 기록물관리법 29조에 의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기록물폐기에 대해서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은 그동안 습관적으로 기록물을 폐기해온 행정적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에 다름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법률조항을 애써 무시하고 솜방망이 처벌만을 고집하고 있다.

'2006년 경상남도 00시 정부합동감사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적시되어 있다.

'기록물폐기심의회를 구성하지 않았으며 심의회가 구성되지 않고 심의를 하지 않았음에도 각과로 하여금 폐기 심의서를 작성하도록 공문을 시달하였으며 그에 따라 각과에서 작성한 폐기심의서의 폐기심의란과 폐기심의회 심의결과란에는 폐기가 허위로 기재되어 있으며….'

이는 조직적으로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한 공문서위조일 뿐 아니라 기록물무단폐기에 해당하는 명백한 범죄행위 인 것이다. 이렇게 명백한 범죄행위를 공무원들이 행했다면 반드시 중징계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감사결과처분요구서를 보면 단순히 '주의'로 그치고 있다. 주의라는 행정상 조치는 사실상 신분상의 아무런 불이익이 없는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한 것이다. 공공기관에서 기록물무단폐기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이렇듯 정부의 법집행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기록물무단폐기에 대한 처벌조항을 왜 만들었는지 의심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제(26일) 발표한 '00북도 정부합동감사 결과처분'을 보면 더욱 놀랍다. 결과처분서에는 00북도의 기록물무단폐기 사례가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영구·준영구 기록물은 생산후 10년이 경과하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여 보존 관리하여야 함에도, 충북도에서는 1963년~1978년까지 생산된 준영구 기록물 총 132권을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지 아니하고 자체 폐기…'
-행정자치부 홈페이지.

준영구기록물은 기록물관리법에 따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해 전문적인 관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00도청에서는 132권이라는 엄청난 양의 기록을 무단폐기한 것이다. 명백히 기록물관리법 29조에서 적시하고 있는 기록물무단폐기에 해당되는 범죄다.

그러나 이번에도 행정자치부의 행정처분은 '00도 관련자 1명 훈계'라고 적시되어 있다. 감사결과보다 감사처분이 더욱 경악스럽다. 그동안 행정자치부는 기록물을 무단폐기 하는 행위에 대해서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반복적으로 밝힌 바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러한 의지는 찾을 수 없고 솜방망이 처벌만이 있을 뿐이다. 그 엄정한 처리가 바로 '주의'와 '훈계'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행정자치부의 지방감시팀 관계자는 "관련업무를 하위직급이 담당하고 있고, 이번 감사는 지도감독차원이었기 때문에 일단 경고를 준 것"이라고 밝혔다.

감사결과에는 기록물 무단폐기 뿐만 아니라 ▲주요공식문서 관리소홀 ▲미등록 및 보존기간 미책정 ▲자료관 미설치에 따른 기록관리부실 ▲대국민 공개를 위한 소장기록물 목록작성, 비치소홀 등 수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었음에도 대부분 '시정'이라는 애매한 처분만을 내렸을 뿐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기록물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전문요원을 대거 영입하기도 하고 수많은 예산을 들여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중요한 기록들은 이렇듯 역사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그 대책은 미온적이다.

기록물을 온전히 관리하는 것은 투명행정을 이루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이다. 기록을 통해 공공기관의 업무를 시민들이 알 수 있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든 기록물을 폐기하는 것에는 엄정한 대처가 필요하다. 다시 한번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지방정부의 기록관리실태에 대해 엄정히 대처하기를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 전진한 기자는 사단법인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의 선임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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