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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앞에는 커다란 배가 물에 잠긴 채 떠있었다. 배의 앞부분인 이물이 공중에 뜬 채 배가 바다에 반 이상 잠긴 것이다. 물에 잠긴 고물 부분이 자신들이 타고 있던 배에 부딪히면서 심한 충격과 함께 배가 흔들린 것 같았다.

"우리가 찾던 그 침몰한 배잖아."

"저건 우리와 함께 떠났던 세 척의 배 중에 하나야."

"그럼 죽은 그 신라선원이 타고 있던 배가 분명하군."

김충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반쯤 바다에 잠긴 배가 방금 부딪친 충격으로 인해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삼분의 이쯤 바다 위에 솟아 있던 돛의 활대가 서서히 잠기고 있었다.

"배가 가라앉고 있다."

"우선 침몰하는 것을 막아야 해."

왕신복은 돛대에 걸어둔 밧줄을 가져와 어깨에 매었다. 그리고 그 밧줄 한쪽 끝을 김충연에게 내밀었다.

"이걸 난간에 단단히 묶어둬."

그리고는 자신은 바다에 뛰어들었다. 헤엄을 쳐 침몰한 배에 다가선 그는 기울어진 갑판 위에 비스듬히 올라가 가목 부분에 가져온 밧줄을 단단히 묶었다. 잠시 후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가라앉던 배가 그 자리에 멈추었다. 멈추는 것과 동시에 김충연이 타고 있던 배가 옆으로 기우뚱했다. 배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더 이상 기울지는 않았다. 밧줄로 두 배를 묶어놓아 침몰하는 것을 잠시 막았지만 언제 밧줄이 끊어질지 몰랐다.

침몰한 배에 올라선 왕신복은 비스듬히 기울어진 뱃집 안으로 들어갔다. 배가 기울어 모든 물건들이 밑으로 흘러내려 있었다. 그는 밑으로 내려가 쓸만한 물건들이 있는지 뒤졌다. 다행히 찐쌀과 콩이 담긴 자루를 두 개나 발견했다. 그 옆에는 생고기로 만든 육포도 있었다. 물이 든 항아리는 쏟아져 있어, 그는 바닥에 고인 물로 목을 적셨다.

음식을 들고 뱃집으로 나오려는데 어디선가 신음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하늘로 솟은 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가자 세 명의 사람이 물위에 떠있는 게 보였다. 선실의 반은 이미 물이 차 올라 있었다. 왕신복은 물위에 떠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목숨이 붙어 있는지 확인했다. 그중 한 사람의 숨이 아직 붙어 있었다. 가늘게 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를 뒤로 엎고는 물이 찬 선실을 빠져 나와서는 밖의 갑판 위에 걸쳐놓았다.

"여기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어."

왕신복이 그렇게 외치자 김충연이 두 배를 연결한 밧줄을 타고 침몰한 배에 내려왔다. 쓰러진 사람을 확인한 김충연은 눈을 가늘게 흡뜨며 뒤로 움찔했다.

"아니, 이 자는……."

"아는 사람이야. 사중아찬(四重阿飡)으로 숙부님의 심복이기도 하지."

"아직 목숨이 붙어 있어. 일단 우리 배로 옮기고 보자."

둘은 갑판에서 삼판을 뜯어내어 그 위에 박영효를 실었다. 그를 실은 삼판을 물에 띄어 옆의 배로 옮겨왔다. 갑판에 올려놓고는 뺨을 세게 두들겼다. 하지만 박영효는 좀체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물을 너무 많이 마셨어."

둘은 박영효를 바닥에 엎어놓고는 상체를 반쯤 일으켜 등을 세게 내리쳤다. 그러자 박영효가 크게 토악질을 하며 물을 밭아 놓았다. 몇 번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다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하지만 호흡은 방금 전 보다 규칙적이면서 커졌다. 둘은 다시 박영효를 반듯이 눕혀 놓고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왕신복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배에 남아 있는 음식을 가져올게."

그는 김충연이 했던 것처럼 밧줄을 타고 배에 내려가 곡물이 든 자루를 가져왔다. 둘은 그 전에 잡아둔 다랑어와 함께 찐쌀을 나누어 먹었다. 모처럼 포식을 한 그들은 잠시 갑판에 주저앉아 누워 있는 박영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결국 세 척의 배 중 두 척이나 난파를 당한 셈이군."

"나머지 한 척은 무사한 걸까?"

"그 배에 숙부님이 타고 있어. 어쩌면 벌써 감포에 도착했는지도 모르지."

"저 배에 죽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 대부분 나머지 배에 옮겨 탄 것 같아."

"그렇다면 다행이겠지."

그렇게 말하는 김충연의 표정은 어둡고 차가웠다. 하늘의 뜻을 빌어 출발한 세 척의 배 중 두 척이나 난파를 당한 데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그들이 받들었다는 하늘의 뜻도 모두 김충신이 꾸며낸 것이 아닌가? 어쩌면 두 척의 배가 난파를 당한 것도, 무수한 사람들이 목숨을 읽은 것도 하늘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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