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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면 아이랑 수영장을 갑니다. 아주 갓난쟁이에서부터 유치원생들이 부모들이랑 놀며 물에 적응하는 가족수영 시간대지요. 그래도 큰 아이들과 수영을 즐기려는 이들을 위해 한 레인 정도는 남겨서 줄을 쳐두고 있어 관절 물리치료용으로 수영을 하는 이에겐 퍽 반가운 시간이랍니다.

물에서 방금 나왔는데도 햇살이 따가운 오후였지요. 버스를 타기는 애매한 거리라 아이랑 수다를 떨며 예닐곱 블록을 걸어 다니는 길이랍니다.

그런데 한 블록이 소란합니다. 아하, 블록 파티(block party)군요. 흔히 블록 파티라 하면 같은 블록 내에 사는 가족들과 친지들, 혹은 이웃들이 다 모여 집마다 한 가지씩의 음식과 음료수를 내와서 하는 파티를 일컫는데, 말 그대로 블록에서 하는 파티라고 보면 됩니다. 독립기념일 같은 날이 아니어도 이런 여름날에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지요.

때로 블록 파티에서는 이런 작은 콘서트를 하기도 합니다. 동네가 무대고 동네 사람이 관객이지요. 준비된 공연장, 그리고 티켓을 쥔 사람들이 들어가는 공연장이 아니라는 건 참 매력 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하는 우리 잔치, 우리들이 주인공인 자리이니까요. 있는 그대로의 숨결을 느끼는 동네 콘서트!

2004년 9월 어느 비 오는 날, 뉴욕의 흑인지역 브룩클린의 베드-스타이(Bedford-Stuyvesant)에서 깜짝 동네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케이블채널 코미디 센트럴의 인기 프로그램인 <샤펠 쇼>로 유명한 코미디언 데이브 샤펠이 주관한 무료 공연이었지요.

대도시에는 가본 적 없는 오하이오주의 작은 마을(공연을 주관한 샤펠이 사는 마을이던가요)에서 가게 아줌마, 아저씨, 경찰, 젊은이들이 초대받아 오기도 했고, 소문을 듣고 모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그곳을 지나는, 그 동네 사람들이 관객이었던 공연입니다.

토요일 오후부터 밤까지 이어졌던 콘서트를 <이터널 선샤인>의 감독 마이클 곤드리가 카메라에 담아 내놓은 것이 다큐멘터리 코미디물 영화 <블록 파티>였지요.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탁월한 솜씨, 넘치는 힘, 서로의 노래에 백업을 하고 춤을 추고 하는 화면을 다 놔두고도 흐르는 음악만으로 신이 났던 영화입니다.

브루클린의 허름한 건물을 뒤로한 데드엔드 스트리트의 이 열광은 그 자리에 있었던 이가 아니더라도 꼬질꼬질한 일상이 힘겨울 지도 모를 사람들을 한 순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지요. 힙합 래퍼인 커몬, 데드 프레즈, 빅대디 케인, 그리고 더 루츠, 푸지스, 비랄, 질 스캇, 에리카 바두 같은 힙합 뮤지션들이 우르르 나온답니다.

음악 좋고 재미있고 감동 크고 뭐 할 말 많지만 이건 영화 얘기는 아니니까… 어쨌든 이런 풍경이 이 나라에선 그리 진기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늘의 콘서트는 이 블록의 길모퉁이 작은 재즈바가 주관한 것입니다. 사거리 길 끝에는 블록을 향해 무대가 세워져 있었지요. 수영장을 갈 때 내놓기 시작하던 테이블과 의자에 이미 사람들이 다 들어차고도 모자라 더러 몇 씩 서서 잔을 든 이들이 블록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현금만 받습니다."

재즈바에서 파는 음식과 음료로 재정을 충당하나 봅니다. 우리도 멈춰 나무 그늘로 들어갔습니다. 재즈음악으로 흐르던 곡은 분위기가 무르익자 락으로 바뀌기도 하였지요. 지미 헨드릭스, 핑크플로이드, AC/DC의 익숙한 곡도 들을 수 있었답니다. 이건 또 완전히 재즈에 귀를 묻던 영화 <스윙걸즈>에서 <락의 학교>(the school of rock)’로 옮아간 거였네요.

"어디서 왔어요?"
"아미티지요."

몇 블록 건너에서 지나다 온 이도 있고, 이 블록에 사는 이도 있으며, 친구랑 일부러 이 콘서트를 보러 오기도 했다 합니다. 늦은 밤까지 춤추고 놀겠단 사람들을 뒤로 하고 다시 저녁 햇볕 속으로 나왔지요.

미시간 호수를 따라 늘여져 있는 이 도시의 여름은 음악과 춤이 풍성합니다. 곳곳의 공원에서는 콘서트에서부터 볼거리들이 넘치고, 소속인들이 아니더라도 참여할 수 있는 여러 파티들도 많습니다.

지난 달엔 한 초등학교 교정에서 일요일 저녁마다 열린 댄스모임에 가기도 했지요. 장을 보러가는 길에 함께 도서관 프로그램을 다니는 이웃집 가족을 만나 붙들려(?) 들어갔더랍니다.

사는 이도 즐겁고 머무는 이도 즐거운 이 도시의 여름날이 주는 매혹에 흠뻑 젖습니다.

(2006년 7월 8일 흙날, 맑음)

덧붙이는 글 | 옥영경 기자는 생태, 교육,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1989년부터 관련 일을 해오고 있으며, 이어 쓰고 있는 ‘가난한 산골 아줌마, 미국 가다’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서 들어간 산골에서 잠시 나와 미국에서 두 달을 체류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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