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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몰된 집에서 가전제품을 들어내고 있는 봉사자들.
매몰된 집에서 가전제품을 들어내고 있는 봉사자들. ⓒ 김준회
"인간이 손을 댔던 곳이면 여지없이 산사태로 이어졌고 쓸려내려온 토사는 수 십년간 가꿔온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삼켜버리며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급작스럽게 밀려온 토사로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호명리. 재기의 의욕마저 상실한 채 어둠의 터널에 묻혀 있던 이곳에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수재민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인 7월 21일 새벽 5시 파주시 공설운동장. 굴착기와 양수기 등 재해복구장비를 실은 화물차와 쌀과 밑반찬, 생필품 등을 실은 미니버스, 그리고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으로 작업복 차림의 봉사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파주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회장 노영만) 소속 단체 회원과 파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소장 김영선) 그리고 ‘두란노 가정을 세우는 사람들 파주아버지학교‘ 회원 등 60여 파주시 자원봉사자들이 평창지역으로 복구봉사를 떠나기 위해서다.

96년과 98년, 99년 연이은 수해를 당해 전국 자원봉사자들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던 파주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통을 겪고 있는 강원도 주민들을 위해 연이어 보은의 복구봉사를 다녀오거나 계획하고 있다.

2m 가까이 묻힌 집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흙을 파내고 있다.
2m 가까이 묻힌 집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흙을 파내고 있다. ⓒ 김준회
이날, 봉사자들은 영동고속도로를 3시간여 달려 호명리에서 도착했다. 이미 진부 인터체인지 근처에 다다르자 인근 산들의 계곡은 거대한 발톱이 할퀸 듯 흘러내린 산사태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봉사자들이 마을에 들어서자 굴착기 등 중장비들이 매몰된 도로와 하천을 파내며 응급복구를 하고 있었다. 마을은 폭격을 맞은 듯 참혹 그 자체였다. 가옥들은 흘러내린 토사에 매몰돼 반은 흙 속에 묻혀 있고 채소가 무성했던 채소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토사가 메웠다.

매몰된 집은 손도 못대고 있다. 집 안에는 애지중지하던 모든 살림살이들이 그대로 묻혀있었다. 차는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겨져 나뒹굴고 있고 수려했을 계곡의 아름드리 나무들은 껍질이 모두 벗겨진 채 흉물스런 모습으로 집을 깔아뭉개고 있었다.

이 마을은 70여 가구 중 60여 가구가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피할 수 있었지만 목숨과 같은 채소밭 10만여평을 고스란히 수마에게 바쳤다. 물과 전기가 끊기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마을엔 성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진흙탕물을 퍼내고 있다.
진흙탕물을 퍼내고 있다. ⓒ 김준회
그래도 주민들은 간신히 목숨은 건진 것에 안도하며 ‘그래도 살아야지’ 하는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 헤맸다. 봉사자들이 양수기로 물을 퍼내고 매몰된 집에서 가전제품과 살림살이들을 건져내 보지만 쓸만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주민들은 하나라도 버리기 아까워 여기저기 쌓아 놓긴 하지만 보관할 장소조차 없다.

전흥섭(55) 이장은 “대책이 없다”며 정신없이 이곳 저곳을 뛰어다녔다. 이창섭(55) 전 이장도 “짐은 쌓아 둘 곳이 없는데 또 비가 온다니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라며 “복구를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집들은 모두 재건축을 해야 한다”고 한숨만 쉬었다.

장애우 아들은 둔 김기순(52)씨는 매몰된 집 속에 묻혀 있는 휠체어를 꺼내지 못한 것이 맘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춘천에서 특수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방학을 맞았다고 해서 데리러 갔다 돌아왔더니 집이 매몰돼 있었다”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허탈해했다.

10만원의 월세를 내고 이곳에 살았던 박옥자(69) 할머니는 모든 것을 잃고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낮잠을 자다 주민들의 ‘피하라’는 소리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지만 벌써부터 집 주인이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고 통보해와 맨몸으로 내쫓긴 상태이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가스통을 들어내고 있다.
집안에서 가스통을 들어내고 있다. ⓒ 김준회
박성훈 파주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 사무국장은 “아들의 돌 사진과 자신의 결혼식 사진 액자를 양손에 들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며 “어떻게 이렇게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김영선 파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 소장은 “피해가 워낙 심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며 “파주 시민도 세 차례의 수해를 당했지만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잘 이겨냈다. 이곳 주민들도 용기를 잃지 말고 희망을 갖고 꼭 재기에 성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곳은 아직도 도로복구가 안돼 고립된 지역이 있다고 한다. 농작물이 밭에서 썩어가도 수확하고 운반할 장비가 없어 밭에서 고스란히 썩히고 있다. 때문에 우선 중장비가 들어와 도로복구와 매몰된 토사를 긁어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한편 파주시 자원봉사자들은 이날 매몰된 가옥에서 가전제품 등 살림살이를 꺼내는 작업과 함께 새로운 농작물을 심기 위해 이미 상품가치를 잃은 배추(3천여평 규모)를 뽑는 활동을 펼치고 돌아왔다.

아울러 ‘두란노 가정을 세우는 사람들 파주아버지학교‘ 회원들이 마련한 8백만원 상당의 쌀과 밑반찬, 옷가지 등을 진부면에 전달했다. 앞으로 파주시에서는 파주시 새마을회에서 24일, 파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에서 25일 복구봉사를 계획하는 등 지속적으로 수재민을 찾을 예정이다.

채소밭은 오간데 없고 넓은 하천바닥이 새로 생겼다.
채소밭은 오간데 없고 넓은 하천바닥이 새로 생겼다. ⓒ 김준회
썩어가고 있는 배추를 봉사자들이 뽑고있다.
썩어가고 있는 배추를 봉사자들이 뽑고있다. ⓒ 김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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