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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6년 7월 21일 아파트의 밤
2006년 7월 21일 아파트의 밤 ⓒ 김환희
지난 7월 14일 결혼 15주년을 맞이하여 아내와 나는 서로의 변치 않는 사랑만 확인하고 난 뒤 조촐하게 그날을 보냈다. 서로가 특별히 주고받은 선물은 없었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다. 아마도 그건 물질적인 사랑보다 정신적인 사랑을 더 중요시하는 우리 부부의 생각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2006년 7월 21일 아내의 정원1
2006년 7월 21일 아내의 정원1 ⓒ 김환희
그 날 밤 아내와 나는 결혼하여 지금까지 찍은 앨범 사진 모두를 꺼내놓고 지나간 일을 회상했다.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웃기도 했고 어느새 부쩍 커버린 두 아이의 성장 과정을 사진으로 보면서 새삼 세월이 빠르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2006년 7월 21일 아내의 정원2
2006년 7월 21일 아내의 정원2 ⓒ 김환희
특히 결혼하여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할 때는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까지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기 위해 전세와 월세를 번갈아 가며 아내와 나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이삿짐을 꾸릴 때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참아냈다.

2006년 7월 21일 아내의 정원3
2006년 7월 21일 아내의 정원3 ⓒ 김환희
1994년 2월 마침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입주를 하게 된 날, 비록 평수는 작았지만 내 집이 생겼다는 기쁨에 아내와 나는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아내는 만삭의 몸으로 아파트 이곳저곳을 쓸고 닦기를 반복했다. 나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보다. 아파트 생활에 접어든 지 10년이 넘은 탓일까? 언제부터인가 아파트 생활에 조금씩 권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우리 집 형편을 잘 알고 있는 내가 아내에게 이런 마음을 표출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파트를 사기 위해 무리하게 받은 대출금이 아직 많이 남은 상태고 매월 들어가는 아이들 사교육비로 아내가 어려워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색을 하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2006년 7월 21일 아내의 정원4
2006년 7월 21일 아내의 정원4 ⓒ 김환희
그 날 밤 아내와 나는 잠자리에 누워 15년 동안 살아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무르익었을 때 가지고 있던 생각을 아내에게 넌지시 던져 보았다.

"여보, 아파트 생활이 지겹지 않소?"
"새삼스럽게 왜 그런 말을?"
"왠지 나이가 들어가니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오."
"우리 형편에 어떻게?"
"그냥 농담으로 해 본 말이니 신경 쓰지 말구려."
"당신도 참."

내 이야기에 아내의 반응은 생각보다 무던했다. 그리고 아내는 마치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않은 듯 잠을 청했다. 그 이야기를 꺼낸 내가 오히려 더 민망스러울 정도였다.

2006년 7월 21일 아내의 정원5
2006년 7월 21일 아내의 정원5 ⓒ 김환희
그런데 며칠이 지난 뒤 퇴근을 하여 집에 도착하자 아파트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내심 무슨 일이 생긴 듯하여 집안으로 들어서자 아내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반겼다. 그리고 나를 발코니 쪽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썰렁하기만 했던 발코니가 예쁜 정원으로 꾸며져 있는 것이 아닌가? 단지에는 분수대가 설치되어 물이 올라오고 있었고 분수대 주위에는 온갖 이름 모를 화초와 자갈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에서 구해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고 가구 몇 가지와 장식물들이 걸러 있었다. 심지어 대야에는 금붕어까지 노닐고 있었다.

2006년 7월 21일 아내의 정원6
2006년 7월 21일 아내의 정원6 ⓒ 김환희
아내의 이마 위에 맺힌 땀방울로 보아 아침부터 아내는 이 정원을 만들기 위해 부산을 떨었던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밤에 했던 이야기를 아내는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나를 위해 발코니에 작은 정원을 만들어 주고자 했던 것 같다.

2006년 7월 21일 아내의 정원7
2006년 7월 21일 아내의 정원7 ⓒ 김환희
그 날 밤, 아내와 나는 아내가 만든 정원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아내가 만든 정원은 작고 초라했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행복이라는 꽃들이 만발했다.

덧붙이는 글 | 강원일보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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