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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진지식하우스
그림책이라고 하면 '그거 어린아이들이나 보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실제로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그림책은 유아용이다. 글자는 몇 글자 안 되고, 대부분의 지면을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그림으로 채운다. 아이들은 그 그림들을 보고 만지며 나름대로 상상력의 날개를 펼친다.

그런데 난 그런 그림책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종종 아이들과 서점에 가면 부러 그림책을 보곤 한다. 글 보시 없는 그림책을 보고 있노라면, 글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 눈의 피로도 한결 덜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그림책을 이따금 보는 것은 그림 속엔 무언의 말들이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다. 활자화된 언어가 아니라 무형의 언어가 가득 들어 있어 마음대로 글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석원의 <꽃을 씹는 당나귀>는 조금은 색다른 그림책이다. 기발한 발상, 화려한 색상과 표현, 상상력이 어우러진 그림, 그림과는 약간 동떨어진 일상사의 사소한 이야기들이 함께 하고 있는 책이다.

처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여러 동물들의 화려함이 동적으로, 때론 정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글보다는 그림에 매료되어 보고 또 보게 된다. 그리고 웃게 된다. 이러한 사석원의 그림을 보고 미술 칼럼니스트인 손철주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 볼 땐 웃음이 나고, 두 번 볼 땐 따스해지고, 세 번 볼 땐 훔치고 싶은 것이 사석원의 그림이다."

원숭이가 닭을 타고 들을 달린다.
원숭이가 닭을 타고 들을 달린다. ⓒ 사석원
정말 그렇다. 책장을 넘기면서 황홀할 정도로 화려한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돈다. '공감'의 미소다. 그러다 좀 더 세심하게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따스해짐을 느낀다. 그의 그림에 나오는 따스함은 '해학의 따스함'이고, '석양녘의 우수의 따스함'이다. 또 단순함이 주는 '사색의 따스함'이 담겨 있다. 그렇게 빠져들다 보면 훔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서석원이 그림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주로 호랑이나 당나귀, 소, 돼지, 염소, 올빼미, 닭, 말 등이다. 그리고 꽃과 나비가 등장한다. 이런 동물들은 홀로 나오기도 하고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호랑이는 댓잎에 봄볕이 바람 따라 살랑거리는 날, 대숲에 앉아 똥을 눈다. 당나귀는 붉은 장미꽃을 가득 지고 묵묵히 걷는다.

그런 그림 옆에 사석원은 "당나귀가 가지고 온 붉은 장미꽃은 당신 것, 묵묵히 힘든 세상을 견뎌 온 착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적고 있다.

나비와 돼지.
나비와 돼지. ⓒ 웅진지식하우스
또 '나비와 돼지'에선 춘심 다방 나비양이 따라준 꿀차 한 잔에 돈씨 아저씨가 황홀함에 빠져 있기도 한다. '말 대신 닭'이라고 소녀가 닭을 타고 있는 모습도 절로 미소를 돌게 한다. 이러한 그림에 대해 손철주의 말을 다시 보자.

"섬광처럼 명멸하는 황홀, 영혼과 맞바꿔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 환각, 그 황홀과 환각을 부르는 극소량의 미약을 사석원은 캔버스에 살짝 뿌려 놓는다. 그의 미약을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들은 즐거이, 서둘러, 눈 먼 지지를 보낸다."

'섬광처럼 명멸하는 황홀'과 '눈 먼 지지'. 사석원의 그림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순간적으로 다가왔다가 사라지는 황홀감이다. 그런데 그 황홀감은 말초적인, 쾌락적인 황홀감이 아니라 따스한 미소가 도는 황홀감이다. 이로 인해 그의 그림을 보고 있는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게 된다.

사석원의 그림은 쉽다. 재미있다. 색깔의 화려함에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웃음을 돌게 한다. 그런 그의 그림을 몰입 끝에 오는 오르가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이 그린 그 황홀함을 보는 이에게 그대로 전달하게 한다.

공유의 그림, 이것이 사석원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한 번쯤 그가 전하는 황홀에 빠져드는 것도 좋을 듯싶다.

꽃을 씹는 당나귀

사석원 글.그림, 웅진지식하우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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