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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덕진 연못
연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덕진 연못 ⓒ 김현
온통 연꽃이다. 1만3000평의 덕진 연못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바람에 실려 오는 화사한 연꽃의 그윽한 향기가 눈과 코끝을 유혹한다. 많은 사람들이 연꽃을 감상하기 위해 줄을 섰다.

푸르고 넓은 연잎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연분홍의 연꽃들이 수줍은 새색시마냥 얼굴을 붉힌다. 장마 소식에 빗줄기가 내리다 그치다 하는 속에서도 사람들은 연꽃 구경에 넋을 잃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어머, 아름다워라' '정말 예쁘다'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함께 온 아이는 "꽃이 웃어요"하며 맑은 물을 뜨듯 두 손을 하고 향기를 가져다가 맡은 흉내를 한다.

심청이 모습이 이처럼 우아했을까?
심청이 모습이 이처럼 우아했을까? ⓒ 김현
하나가 가면 또 하나의 생명을 위한 아름다운 여정이 시작되는 것.
하나가 가면 또 하나의 생명을 위한 아름다운 여정이 시작되는 것. ⓒ 김현
모두가 감탄하며 바라보는 연꽃을 바라보려니 푸르른 바다 속에서 심청이가 고운 한복을 입고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실제로 가만히 살펴보면 연잎은 푸른 바다요, 꽃봉오린 효심 깊은 심청이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하나 둘도 아닌 여러 명의 심청이다.

연꽃은 우리나라 전국 각 지역에서 자라는 다년생 수생식물로 만다라화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불교와 연이 깊은 꽃이다. 또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꽃이기도 하다. 지금쯤 전국 각지에서 연꽃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전주 8경의 하나로 '덕진채련(德津採蓮)'이라고도 불리는 덕진연못의 연꽃은 그 아름다움과 풍경이 뛰어나면서도 축제가 없다. 그저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줄 뿐이다.

어때요? 한 번 취해보지 않을래요.
어때요? 한 번 취해보지 않을래요. ⓒ 김현
이곳 덕진연못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연못이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걸 보면, 전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으나 북방만이 공허하여 지기(地氣)가 얕아 풍수지리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이에 가련산과 건지산 사이를 제방으로 막아 지맥이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저수하여 연못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못의 넓이가 총 3만여 평이 되는데 그 중 연꽃이 식재된 면적이 1만3000평이라 한다. 구름다리와 나무다리를 따라 연꽃을 천천히 감상하다 보면 속세의 찌든 때가 연꽃 향에 실려 날아가는 듯하다.

ⓒ 김현
연꽃은 흙탕물에서 피어나는 꽃이지만 가장 아름답고 고아하다. 그래서 꽃 중에서 사람의 됨됨이를 상징하는 꽃을 든다면 혹 연꽃이 아닐까 싶다. 또 어떤 사물을 알아내는 능력을 말하는 사람의 근기를 이야기할 때도 연꽃에 비유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근기는 연꽃대가 흙탕물 속에 잠겨 있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 머무는 사람은 눈이 어두워 사물의 이치와 본성을 알지 못하는 아둔한 사람을 말하고, 중근기는 연꽃대가 수면과 맞닿은 상태를 이르는데 여기에 이르는 사람은 사물의 이치를 어느 정도 알 수는 있지만 깊이가 없고 일관성이 없는 사람을 이른다고 한다.

연꽃대가 수면 밖으로 나와 연꽃이 화사하고 아름답게 핀 상태를 말하는 상근기의 사람은 세상 만물의 이치를 올바르고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고 하는데 우리 같은 범부는 중근기에나 머무를까. 아니면 아직도 흙탕물 속에 갇혀 숲은 보지를 못하고 나무만 바라보고 세상의 전부라고 다투지는 않고 있는가.

톡 터질 듯한 꽃봉오리
톡 터질 듯한 꽃봉오리 ⓒ 김현
만개한 꽃의 자태.
만개한 꽃의 자태. ⓒ 김현
그러고 보면 우리는 세상을 바라볼 때 내 이로움과 해로움의 눈으로만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 손톱의 가시는 아프면서도 타인의 가슴에 박힌 못은 아파할 줄 모른다. 내 눈에 들어온 티끌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남의 눈의 상처는 그의 허물로만 바라본다. 내가 버린 쓰레긴 오염이 안 되고, 남이 버린 쓰레긴 산하를 오염시키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된다.

왜 그럴까. 혹 우리가 아니 내 생각의 연꽃대가 흙탕물 속에 잠겨 있어서는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흙탕물 속에 잠겨 있건, 수면에 닿아 있건, 물 위에 올라와 꽃을 활짝 피웠건 연꽃은 버릴 게 없다는 것이다. 연근은 연근대로, 연잎은 연잎대로, 꽃은 꽃대로 자기 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것, 자기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 세상에서 그것만큼 아름다운 게 있을까. 작은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맞춰 몸을 흔들고, 큰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맞춰 몸을 흔들지만 바람이 멈추면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파도 같은 잎과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을 바라보자니 내 삶의 지주는 무엇인가 되물어 온다.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향기를 줄 수 있나 곱씹어 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연꽃을 바라보며.

한 번 와 보세요.
한 번 와 보세요.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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