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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TV에서 급식 집단 식중독 사건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먹는 음식인데, 어떻게 그렇게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던 뉴스는 급식이 중단된 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점심 해결 이야기였습니다. 학교에서는 나름대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배려해 따로 도시락을 전달했지만 한참 민감할 나이의 청소년들은 주위친구들이 자신의 가정형편을 알게 될까봐 두려워 몰래 숨어서 먹거나 아니면 아예 받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시락이 아니라 상품권이나 돈을 대체해 주고 싶어도 도시락을 싸줄 가족이 없는 경우는 이마저도 난감하다는 한 교사의 이야기에 아련히 묻혀있던 제 중학교 시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아침보충 문제집부터 그날 교과목 책에, 노트에 부수적으로 가져가야했던 준비물 등… 그 당시 우리 책가방은 그야말로 완전군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거기에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항상 도시락도 두 개였습니다.

아침 7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반나절 이상 학교에서 보내야했지만, 그나마 학교생활이 즐거웠던 것은 친구들과 수다 떨며 먹었던 점심, 저녁시간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반찬은 불그스름한 색에 동글동글한 자태를 뽐내던 빨간 소시지와 파 송송 썰어 넣고 양파 다져서 넣어 부친 달걀말이였습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그 친구의 반찬통은 젓가락 한번 찍어보기도 전에 다른 친구들에게 초토화되곤 했습니다. 그런 날이면 울며 겨자 먹기로 물에 말아먹거나 남은 김치 몇 조각으로 차디찬 맨밥을 억울한 맘과 함께 식도로 넘기곤 했습니다.

항상 그렇게 정신없는 점심시간에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가는 그 친구를 본 건 새 학기를 맞은 지 2주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도시락반찬 지키기에 급급했던 터라 다른 친구들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우연찮게 그 친구가 제 눈에 뜨인 겁니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도시락을 못 싸온다는 겁니다.

몇몇 아이들이 자신의 도시락을 나눠줘 봤지만, 그런 모습을 같은 반 친구들에게 보이기 싫었는지 몇 번 못 이기는 척 같이 먹더니 그 후로는 저렇게 점심시간만 되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버린다는 겁니다.

내 도시락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혹여나 그 친구 맘에 상처를 입힐까봐 선뜻 다가가지 못 하겠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 친구와 같이 밥을 먹을까하며 며칠 좋지도 않은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았습니다.

TV에서 본 건 많아서 아침 일찍 학교에 가 그 아이 책상서랍에 몰래 도시락을 넣어놓을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것은 아침잠이 많은 저였기에 실행가능성이 없었고, 다이어트를 한다하고 남기기 아까우니 같이 먹자고 하기엔 내 식성이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렇게 몇날며칠을 고민한 끝에 전 엄마 몰래 김치 담을 때 쓰는 커다란 양푼을 하나 학교로 들고 갔습니다. 그걸 들고 학교 가는 길이 얼마나 창피하던지….

친구들은 나의 커다란 양푼을 보며 의아해도 하고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눈을 하며 꼬치꼬치 캐묻기도 했지만 전 그것이 쓰일 시간까지도 누구에게도 양푼의 용도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전 위풍당당하게 양푼을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도시락의 밥과 반찬을 모두 양푼에 부은 후 크게 외쳤습니다.

"비빔밥 해먹을 사람!!!"

몇몇 친구들은 '쟤 뭐야~'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했지만, 한참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어 하던 그 시절 우리 반 친구들 대부분은 너나 할 것 없이 도시락을 모두 양푼에 붓기 시작했습니다.

양푼 속의 밥들은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김치에, 고급반찬이던 달걀말이며 빨간 소시지, 어묵볶음, 가지각색의 나물하며 심지어는 젓갈까지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가끔은 그 존재여부를 알 수 없었던 이상야릇한 음식도 들어있기도 하였지만, 돌도 씹어 먹는다는 16살 여학생들에게 '그까이 것' 쯤은 그냥 애교였습니다.

커다란 양푼에 담겨진 밥과 반찬들을 그중에 제일 등발 좋은 아이 세 명이 고추장을 넣고 숟가락으로 쓱쓱 비비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꼴딱 꼴딱 침 넘어가는 소리며, 짧은 감탄사까지 가지각색이었습니다.

다 비빈 비빔밥은 비빔밥 원정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밥그릇에 하나둘씩 나눠지기 시작했고, 전 도시락통에 밥을 담아 항상 점심시간이면 슬그머니 나간 친구에게 슬쩍 건네었습니다.

그 친구는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는 듯한 눈치였지만 이내 내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말없이 먹어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양푼은 우리 반의 보물 1호가 되었고 고추장과 참기름은 그날주번이 번걸아 가면서 조금씩 조달해오기로 정했습니다.

양푼을 몰래 빼내가 엄마한테 빗자루로 몇 대 맞기도 했지만, 맛있는 비빔밥과 그 친구를 위해서 그 정도쯤이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 반에게 점심시간은 그냥 점심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비빔밥에, 또 어느 날에는 학교 오는 길 밭에서 뿌리째 뽑아온 배추와 상추들로 이루어진 쌈밥으로 아주 푸짐한 점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만찬에도 복병은 있었으니… 바로 김장철이었습니다.

김장철 한 일주일간은 반 친구들의 90% 이상이 배추김치며 깍두기만 싸왔기 때문에, 우리들 만찬도 일주일간은 휴업상태에 돌입하곤 했었습니다.

저에게는 도시락이 점심시간이 이렇게 정다운 추억거리인데, 급식세대인 우리 아이들에게는 나중에 점심시간이 어떻게 기억될는지….

이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정성스러운 도시락은 아니지만, 나중에 점심시간하면 식중독 같은 나쁜 기억이 아닌 학창시절 재미있었던 시간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도시락과 급식기사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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