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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해인사 원당암 가는 길. 시원한 숲길이 이어진다.
ⓒ 한지숙
경북 김천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거창을 지나 대구를 지나는데 '해인사' 이정표가 보인다. 참 오랜만에 만나는 이름, '해인사'. 지난해에 원당암 원주로 자리를 옮겨 앉은 성각스님이 생각나 해인사 방향으로 들어섰다. 절집을 향하는 길은 어디나 고요한 숲을 따라 이어져 있어, 짙푸른 풀물 뚝뚝 흘리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숲길에 들어서니 한결 서늘하다.

▲ 해인사 들어가는 길목의 찻집, '고조선 이야기'
ⓒ 한지숙
오른켠으로 얼핏 흙집 한 채가 보이는데, 이엉으로 지붕을 쌓은 모습이 찻집인 듯했다. 점심 끼니를 조금 지났지만 해인사부터 들르고 나오면서 무얼 좀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나쳤다.

원당암 회지를 통해 글로만 뵙던 성각스님을 만나 시원한 빙수도 한 그릇 먹고 차도 한 잔 나누고, 하동에 사실 때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해인사를 나섰다. 빙수 한 그릇과 차만 여러 잔 마셨더니 그제야 뱃속이 아우성이다. 아까 눈여겨 보아둔 흙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 여럿이 앉을 수 있는 방. 흙집이라 서늘하다.
ⓒ 한지숙
"점심때가 지났는데 끼닛거리가 있을까요…?"
"…멋있으세요…."

먹을거리를 찾는 물음에 실과 바늘을 쥐고 무언가 꿰매고 있던 아가씨는 나의 편안한 차림새가 좋아 보였는지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 가벼운 목례로 나를 맞는다. 나의 눈길 또한 그녀의 손에 머물렀는데, 그녀 곁의 반짇고리에는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소복했다.

▲ 으름 암꽃.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앙증맞은 모습.
ⓒ 한지숙
통나무 의자에 걸터앉는 둥 마는 둥 엉거주춤한 자세로 찻잔받침부터 손에 들어 살펴보았다. 그 옆에는 또 크고 작은 다포들이 몇 장 있었는데 모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전에 염색해 놓은 천들인데 겨울에 주문 받고는 이제야 손을 대요."

얇은 천에 자그마한 찻잔받침을 만들기엔 너무 굵은 바늘이었고, 조금 휘어 여간해선 바느질이 편하지 않을 듯했다. 바늘 좀 바꿔 쓰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10년 넘게 이 바늘 하나로 버텼으니 이젠 정이 들 만큼 들어 어지간해선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 으름 열매. 가을이면 흰 속살을 드러내며 벌어지고, 맛은 달콤하다.
ⓒ 한지숙
각종 꽃차와 녹차, 계절에 맞는 음료 등만 갖추고 있어 끼닛거리를 찾는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자기가 먹으려고 데워놓았다는 빵을 접시에 담아 내준다. 나의 옆자리엔 마침 근처에서 산행을 마치고 들어온 아주머니 몇 분이 빙수를 먹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는데, 우리의 대화를 듣고는 배낭에서 떡 몇 점을 건네주시는 바람에 푸짐한 점심상이 되었다.

봄이면 손수 꽃이나 열매를 모아 차를 만들고 녹차만 하동이나 화개에서 가져다 쓴다는데 그녀가 내게 권한 것은 '으름차'였다. 머릿속으로 얼추 으름의 꽃과 열매를 떠올렸다. 그리곤 그녀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빵 조각을 우물거리며 구석구석 살펴봤다.

▲ 그녀가 표현하는 소박한 주제는 '연꽃'이다.
ⓒ 한지숙
연꽃을 주로 그리고 있었다. 여럿이 앉을 수 있는 방의 벽에도, 반짇고리 안의 소품에 넣은 그림들도 온통 연꽃이었다. 은은하게 물들인 천에 또 은은하면서도 앙증맞은 꽃 그림들을 그려 넣은 소품.

▲ 우연한 만남, 함께 가는 길동무를 만났다.
ⓒ 한지숙
누군가를 위해 손수 따고 말리고 덖은 꽃차를 마련하고, 다른 누군가 빚었을 소박한 다기(茶器)들이 창가에 머문 곳. 이런 모습으로 살고 싶었던 나의 꿈들이 다시 또 꿈틀거린다. 한 곳을 향해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간절함, 우연히 만난 길동무의 창가에서 그 간절하면서도 소박한 빛 하나를 보았다.

덧붙이는 글 | 장마 이전에 들른 찻집,'고조선 이야기'입니다. 해인사 가는 길목에 한 번 들러
그녀의 소품들을 직접 만나보세요^^ 소박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찻집, 뜨거운 여름을 덮어줄 서늘한 흙집입니다. <조간경남>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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