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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나관호
얼마 전에는 어머니의 머리를 염색해드렸다. 내가 해드리는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손주, 며느리, 여동생이 해드리는 것보다 유독 아들이 해주는 ‘염색약 바르기’를 기대하신다. 이유를 몰랐다. 알고 보니 은근히 친구분들에게 자랑하신단다. 일종의 ‘아들 효자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할까. 염색한 머리를 만지면서 “우리 아들이 해준 거야”라고 하신다. 못 말리는 어머니 마음이다. 염색을 할 때 어머니에게 말을 건냈다.

“어머니, 염색약이 독해서 그런지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셨네요?”
“염색약이 독하긴 해.”
“노인들 흰 머리도 좋아 보입니다. 이제 그만 염색하세요?”
“난 흰 머리 싫어. 그런데 니가 걱정이다. 나 염색해준다고 니 눈 나빠지면 어떻게 하니?”

그런 와중에도 나를 걱정하신다. 당신의 머리카락 빠지는 것은 신경이 쓰이지 않으신 모양이다. 무엇이 어머니 마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또 궁금해진다. 또 어떤 날은 어머니의 보물상자가 열린다. 요즘은 어머니 머릿속에 작은 지우개가 생겨 그것이 보물상자에서 나온 것인지 작은 지우개의 장난인지 구분해야만 한다.

어머니 침대 머리맡에 있는 성경책 가방은 어머니 보물상자다. 그곳에는 지갑과 여러 잡동사니도 많이 들어 있다. 가끔 어머니가 손주들을 불러 이렇게 말한다.

“예나, 예린야! 먹고 싶은 것 없어? 아들은 뭐 갖고 싶은 것 없어?”
“왜요? 어머니 뭐 드시고 싶으세요?”
“아니 내가 사주고 싶어서.”
“어머니가 돈이 어디 있으시다고 그래요? 그럼 새 자동차 한 대 사주세요.”

어머니에게 장단을 맞춰드린다.

“얼만데?”
“3천만원은 있어야 하는데요.”

그러면 가방에서 몇 번이나 접힌 만원짜리, 천원짜리 지폐와 동전을 꺼내 오신다. 어머니 마음이 그런 것인가 보다. 한바탕 웃음꽃이 핀다.

그리고 가끔은 나를 조용히 불러 보물상자에 넣어둔 초코파이를 주신다. 당신 드시라고 한 것을 남겨놨다가 나를 주신다. 내가 아이들 때문에 못 먹는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컨디션이 나쁘면 짜증을 부릴 때도 있다. 안타까움을 주체하지 못해서다. 어머니 마음에는 아들이라는 존재가 항상 일곱 살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요즘은 전략을 바꿨다. 내가 먼저 섬겨 드리고, 같이 먹고, 내가 먹는 것을 보여드리고 어머니 보물상자를 몰래 열어 처리해버린다. 어머니라는 존재만이 가지는 신비한 마음은 참으로 오묘하다. 신세대가 가지지 못한 그 무엇이 있다.

가끔 주무시다가도 갑자기 일어나 아파트 출입문을 잠궜는지 확인하시는 어머니, 여름인데도 겨울 내복을 찾아 입으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눈물이 난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이제 내가 나설 때다. 오늘도 어머니의 마음을 먼저 알아 당신도 편하고 나도 편한 방법을 지혜롭게 찾아간다. 그리고 추억에 잠겨 있고, 시간 개념을 착각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무엇인가 해드려야겠다. 빚진 자의 마음으로.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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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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