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기 돼지 삼형제> 겉표지.
<아기 돼지 삼형제> 겉표지. ⓒ Treasure Bay Inc.
그 원저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다만, 이와 비슷한 동화로 그림(Grimm)이 만든 우화집 속에 <늑대와 일곱 어린이들>이라는 독일 동화가 있어서, 우리는 서구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던 이야기가 새롭게 각색된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는 조셉 제이콥스(Joseph Jacobs)라는 작가가 1898년에 펴낸 우화집(< English Fairy Tales >, 1898) 속에 실려 있다. 그러나 이 작가조차 그 이야기를 제임스 할리웰(James Orchard Halliwell)이라는 작가의 이야기책(Popular Rhymes and Nursery Tales, 1849)에서 보았다고 하고 있어, 원저자에 대한 수수께끼는 아직 풀리지 않은 셈이다.

월트 디즈니사는, 미국의 경제대공황 직후에, 이 이야기를 만화영화로 만들어 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영화 삽입곡(< Who's afraid of the big bad wolf? >)은 '나쁜 늑대'로 상징될 수 있는 가난과 기아 그리고 실업과 같은 어려움들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나타내고 있어 당시 많은 미국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아기 돼지 삼형제가 각자 집을 짓게 되는데, 짚과 나무로 집을 지었던 첫째 돼지와 둘째 돼지는 늑대를 만나게 되어 집을 잃게 되지만, 벽돌집을 지었던 부지런하고 영리한 셋째 돼지는 마침내 늑대를 잡고 나머지 형제들을 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근면함과 지혜로움 그리고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 자세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 Robert Lumley
그렇다면 이 동화는 어린이들에게 그런 교훈적 메시지만을 전해 주는 것일까? 나는 이 이야기가, 원래의 저자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부정적인 메시지 또한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화를 만들어낸 사람들도 자신이 속한 시대와 지역 혹은 나라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나쁜 늑대'라고 하는 '공공의 적'을 상정하고 있다. 늑대가 왜 나쁜지에 대하여 근거를 제공해 주는 사전정보는 아무 것도 없다. 늑대는 그냥 아기 돼지 삼형제들에게 해를 끼치는 위험인물로 애초에 간주된다. 아기 돼지들은 늑대를 만나서 대화를 하거나 늑대의 입장을 들어 보거나 하려 하지 않는다. 늑대가 나쁘다고 하는 것에는 조금의 의심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아기 돼지들은 처음부터 엄마돼지로부터 늑대에 대하여 적대감과 불신을 가지도록 교육을 받았다.

늑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원작의 이야기에 딴죽을 거는 작가가 최근에 나타나기는 하였다. 존 셰스카(Jon Scieszka)라고 하는 미국 동화작가가 늑대의 입장을 변호하고 나섰다. 늑대가 할머니에게 줄 생일선물로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는데, 설탕이 떨어져서 아기 돼지들에게 빌리러 갔단다. 그런데 감기에 걸린 늑대가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아기 돼지들의 집이 바람에 불려 쓰러져 버렸다고 하는 식이다. 늑대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찾아보고 늑대와 아기 돼지 간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늑대에 대하여 새로이 해석을 하는 장난스럽고 기발한 시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 원작의 이야기는 '나쁜 늑대와 착한 아기 돼지들'이라는 흑백논리식의 이분법을 취하고 있다. 나와 타자를 확실하게 구분하며, 타자에 대하여 어떠한 관용이나 이해의 눈길도 보내지 않는 공격적 방어심리는 서구인들, 특히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사고방식이다.

존 셰스카 책표지
존 셰스카 책표지 ⓒ www.innovative-educators.com
흑백논리식의 대립적 시각은 시대에 따라 그 상대를 달리할 뿐, 어느 때고 새로운 적들을 만들어낸다. 인디언이라 불리던 아메리카 토착민들이 그 옛날의 적이었다면, 이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적으로 간주되었고, 이제는 이라크와 이란, 그리고 북한 등이 '악의 축'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그들의 '공공의 적'의 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매번 새로운 적들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아기 돼지들이 엄마 돼지 말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럴까? 어쨌건 엄마 돼지는 오늘도 아기 돼지들에게 이렇게 타이른다. "너희들을 해치려고 하는 늑대는 항상 네 가까이에 있다. 그 늑대를 네가 미리 손을 써서 잡지 않으면 네가 당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아기 돼지 삼형제

죠셉 제이콥스 지음, 월드컴(2003)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