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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 만들 때도 한복 지을 때도 정성을 기울이시던 친정 어머니.
ⓒ 김현자
고향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다가 친정어머니의 '쑥빵 도시락'이 종종 화제가 될 때가 있다. 이야기 끝에 얼른 가서 맛과 정성을 전수 받아야 한다며 너스레 떠는 친구도 있다.

친구들과 내 기억 속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어느 해 봄날의 '쑥빵 도시락'.

초등학교 4학년 봄. '혼 분식 장려운동'으로 일주일에 하루는 밥 대신 빵을 싸오라고 했다. 우리집 형편에 보리밥대신 빵을 싸가는 것은 쌀밥을 싸가기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아무리 싼 것도 돈을 주고 사는 것이라면 힘들었고 중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의 육성회비까지 밀려내기 예사였다.

한밤에 쑥 뜯어다 만들어주신 '쑥빵 도시락'

"선생님이 그래도 내일은 꼭 빵 싸오래!"

들에서 늦게 돌아와 저녁밥 준비로 바쁜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보챘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 엄마가 내민 것은 기대하던 빵 값 대신 노란 '양은 도시락'이었다. 어제도 보리밥을 싸갔던 그 양은 도시락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빵을 꼭 싸가야 한다고 훌쩍이는 내게 엄마가 열어 보여준 '쑥빵'이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살금살금 부스럭거리는 빵 봉지 소리가 수업시간 내내 들려왔다. 4교시 수업 내내 친구들이 사왔을 빵만 자꾸 아른거렸다. 빵을 사온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빵 한 봉지 선뜻 사주기 아까워하는 엄마가 밉고 야속하기만 했다. 엄마가 싸준 빵이 폼 나는 친구들의 빵과 견줄 수 없지 싶어 난 자꾸 풀이 죽고 있었다.

그런데 빵 검사를 하던 선생님은 머뭇거리며 간신히 내민 쑥빵을 보는 순간 감탄하는 것이 아닌가. 쑥이 고슬고슬 배어 있고 네모반듯한 쑥빵이 도시락 안에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선생님은 빵 값 두 개와 반절만 바꾸자고 하셨다. 선생님이 탐낸 빵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몰려들어 먹는 바람에 도시락은 금방 바닥났다. 아무리 그래도 고집 센 내 기분은 쉽게 풀어지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그 빵은 이랬다.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준 엄마는 들에서 일하고 와 배가 고플 텐데도 밥 한 숟갈 뜨지 못하고 들로 나갔다. 어두컴컴한 밭둑을 더듬어 쑥이다 싶은 것은 무조건 뜯어 왔고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한 고단함도 참고 쑥을 골라냈다.

그런 뒤 새벽에 일어나 막걸리를 부어 찜통에 쪄준 빵일 것이었다. 나와 친구들에게 가지런한 정성으로 남아있는 그날의 쑥빵은 그랬다.

내게 주신 어머니 정성, 그 반절만 아이들에게 쏟을 수 있어도...

10여 년 전, 가게를 하면서 세 돌이 안 된 큰 아이를 놀이방에 보냈다. 엄마들이 반찬을 직접 싸서 보내야 하는 곳인데 아침마다 반찬을 싸는 것이 번거롭고 귀찮았다.

숟가락질도 서툰 아이에게 싸줄 수 있는 반찬은 빤했다. 종류와 모양만 다른 햄과 동그랑땡. 먹는 양도 적어 햄을 조금 잘라 프라이팬에 튀겨 보내는 것이 내가 싸주는 반찬들이었다. 그러나 매일 하다 보니 이것마저 보통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마침 다른 유치원처럼 한 달에 반찬값 2만 5천원을 더 내고 놀이방에서 알아서 해먹이게 맡기자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편하기를 원하는 대다수 엄마들에 의해 '내 아이 반찬만큼은 엄마가 직접 해먹이자'는 몇몇 엄마들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나도 다른 엄마들과 함께 2만 5천원에 편안함을 택했고 홀가분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놀이방에서 돌아온 아이가 정신없이 토하더니 결국 맥없이 늘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며칠 동안 아이를 데리고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

알고 보니 우리애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다른 엄마들과 놀이방에 항의했지만 그것으로 아이가 받은 고통이나 삼켜버린 음식물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으랴. 반찬 하나 싸기를 귀찮아 한 나의 알량한 모성이 부끄러웠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나름대로의 원칙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해먹이고 있지만 지금처럼 급식사고가 나면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그때 우리 엄마가 나에게 해준 정성, 그 반절이라도 흉내 냈다면 아이가 그렇게 고통 받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솔직히 그때 그 몇 몇 엄마들이 한심했다. 돈을 조금만 더 내면 반찬값도 빠지고 편한데, 유난을 떨어대는(?) 것이 고리타분했다. 그리고 '아이의 건강을 위하여'라고 말하는 것도 돈 얼마 아끼고 싶은 궁색함을 변명하는 것이라고 색안경까지 끼고 바라보기도 했다.

"돈 조금만 더 주면 신경 쓸 것 없고 편한데. 따져놓고 보면 그게 더 싸게 먹히는데 그렇게 사서 고생하고 멍청하게 미련 떨고 그러냐? 이 바쁜 세상에! 좀 편하게 살아라."

나도 그랬었다 "돈만 주면 편한데!"

10년 전에 내가 다른 엄마에게 했던 이 소리를 이제는 내가 자주 듣는다. 김밥 재료를 늘 준비해두고 수시로 김밥을 싸준다는 내 말에 주변 엄마들이 자주 하는 소리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 동안 소풍 때면 김밥 쌀 걱정을 하는 엄마들이 거의 없어졌다.

대신 어떤 엄마들은 김밥 집에 도시락을 미리 맡겼다가 찾아오기도 하고, 소풍 가는 날 아침에 아이 손을 잡고 가서 사주기도 한다고 한다.

이것도 귀찮거나 시간이 안 되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돈을 주고 먹고 싶은 것을 맘대로 사먹으라고 한다나. 그래서 여러모로 더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삼각김밥을 사오는 애들도 많다고 한다.

급식사고가 터지기 얼마 전,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이란 책을 읽으면서 삼각김밥과 같은 가공식품의 실태에 놀랐다. 큰 아이가 삼각김밥을 좋아해 자주 사먹던 때여서 충격은 더 컸다.

모양만 다를 뿐 집에서 만드는 김밥과 거의 같은 줄 알았는데 다량으로 만들어지고 편의점등을 통하여 유통되다보니 몇 가지 첨가물이 들어가는 것은 필수였다. 물론 저자는 일본의 식품 가공 실태를 말하고 있었지만.

이 책의 저자 아베 쓰카사는 우선 편하자고 선호하는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 등의 가공식품의 실태를 조목조목 고발하면서 "식생활이 제대로 서야 나라가 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음식 만드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것.

음식의 고귀함을 제대로 알게 하는 바람직한 식생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음식을 경시한 무서운 대가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었다. 한때는 일본 식품계의 전설 같은 저자의 고발은 주부로서 그간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 햄과 시금치가 없으면 어때? 햄도 빠지고 시금치 대신 집에서 담근 오이지를 송송 다져 넣어 만든 '아삭아삭 새콤달콤' 김밥.
ⓒ 김현자
'그래, 미련스럽다는 소릴 좀 들으면 어때? 내 가족은 내가 지키는 거잖아? 엄마가 싸주던 도시락들이 참살이(웰빙)이었잖아? 엄마처럼 그렇게는 못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냐?'

시장을 볼 때마다 김밥재료를 미리 준비하였다가 아이들 반찬이 마땅하지 않을 때면 몇 줄씩 둘둘 말아주곤 한다.

아이들도 나도 한때 천원만 주면 쉽게 사먹을 수 있는 김밥에 잠시 빠졌던 것도 사실이지만, 아이들이 내가 말아주는 김밥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부터 김밥을 싸내라고 늦잠 자는 나를 귀찮게 할 때도 있다.

'또 김밥을 싸달라고? 가만… 무엇을 넣고 싸주지? 이틀 전에 김밥 말아주고 남은 재료가 무엇이더라!'

"단무지, 달걀, 우엉조림, 맛살… 엄마 햄은 없어요?"

함께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는 둘째가 묻는다.

"김밥에 햄이 꼭 들어가야만 하니? 그런데 시금치도 없는데? 오이지 잘게 썰고 꼭 짜서 김밥에 넣어 보면 아삭아삭 맛있겠지? 감자 깎는 칼로 당근 껍질 좀 벗길래? 당근을 채 썰어서 기름에 볶아 넣은 김밥 먹으면 얼마나 예뻐지는지 너 알아?"

이렇게 둘째와 말게 된 김밥 여섯 줄, 어떤 다른 음식에 비할까.

덧붙이는 글 | 도시락과 급식 기사응모

☞ [기사공모] 도시락에서 학교급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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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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