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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꽃은 아이들입니다.
교육의 꽃은 아이들입니다. ⓒ 안준철
퇴근길이었습니다. 장마철이라 비가 오락가락하다 보니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세 명의 여학생이 하교를 하다가 그만 비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그때 마침 저는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펴들고 책을 읽으며 천천히 교정을 걸어가다가 아이들과 마주쳤습니다. 아이들은 저를 보자 인사만 할 뿐, 제가 어려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한 우산 속으로 들어오기에는 너무 수가 많아서 그랬는지 그냥 비를 맞으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애들아, 다 이리 들어와."
"와, 선생님 고마워요."

다행히도 제가 들고 있던 우산이 제법 커서 세 명의 아이들이 다 들어와도 그리 좁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명을 앞에 세우고 한 아이와 제가 뒤에서 가는 그런 모양으로 교문을 막 지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디까지 바래다주면 되니?"
"스쿨버스 타는 데까지요."
"가깝네. 비 맞으니까 바짝 붙어."
"선생님 저희 땜에 불편하지 않으세요?"
"불편하긴. 지금 나만큼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너희 지구 끝까지라도 바래다 줄 수 있어."
"와…!"

스쿨버스 타는 곳까지 함께 갔지만 버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쿨버스가 한 대뿐이어서 먼저 온 아이들을 시내 가까운 곳까지 태워다 주고 다시 돌아와 늦게 온 아이들과 장거리 통학생들을 태워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얼마나 더 기다려야 스쿨버스가 오는지 저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제 궁금증을 풀어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오 분 정도만 기다리면 차가 올 거예요. 선생님 먼저 가세요."
"그래? 그럼 오 분 동안 내가 기다려 줄게."
"정말요?"
"그럼. 네가 원한다면 여기서 영원까지라도 기다려줄 수 있어."
"와…!"

세 아이 중 유난히 감탄사를 연발하던 한 아이가 저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습니다. 저도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좁은 우산 속이었으니 행복해하는 그 아이의 눈 속까지 환히 바라볼 수가 있었지요. 우리는 마치 연기라도 하듯이 잠깐 동안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아니, 생각을 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말과 표정이 그렇게 되어 버립니다. 아이들이 행복하면 덩달아 제가 행복해지니 어쩌면 그것은 제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은 그래서 아이들과의 이런 저런 사연이나 이야기들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지요. 자기 좋을 일 한 것이 자랑은 아닐 테니까요.

아무튼 잠시 우산 밖으로 나갔던 두 아이까지 다시 우산 속으로 들어오니 마치 헤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모인 듯 기분이 묘했습니다. 아니, 행복했습니다. 저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다시 펼쳤습니다.

"선생님 책 좀 읽고 있을 게."
"그러세요. 우산은 제가 들고 있을게요."
"그래 줄래? 그럼 고맙고."
"저희가 고맙죠."
"그럼 얘기들 하고 있어라. 선생님은 누가 옆에서 떠들어야 책을 더 잘 읽거든."

제가 비좁은 공간에서 굳이 책을 펴든 것은 아이들을 만나기 전부터 읽고 있었던 글의 뒷부분이 갑자기 궁금해진 탓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쩌면 하나의 습관 같은 것이었습니다. 매달 이맘때가 되면 학교로 배달되는 그달치 신간 잡지를, 걸어서 십 분 거리인 집까지 걸어가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이지요.

"선생님, 무슨 책이에요?"
"응, 내가 읽으면 너희가 좋은 책이야."
"예? 그런 책이 다 있어요?"
"여기 있지. 자, 봐."

제가 읽고 있던 책은 교육월간지 <우리교육> 7월 호였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사실 부끄러움을 느끼고 싶어서 이 책을 구독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책을 통해서나마 제자들을 생명처럼 사랑하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이 들리기도 하고, 교사가 어린 제자들을 심하게 체벌한 우울한 소식이 들려와도 제가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 아이가 표지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교권이 뭐예요?"
"교권도 몰라? 교사의 권리지. 아니, 교육할 권린가? 아무튼 너희들을 사랑하라고 교사에게 준 권리야."

아이가 교권이 뭐냐고 물은 것은 7월 호 특집 제목이 '선생님의 교권, 안녕하신가요?'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엉겁결에 대답을 해놓고 보니 제가 한 말이지만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치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방금 했던 말을 이렇게 윤색하여 다시 되뇌어 보았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라고 교사에게 준 권리'

아이들은 교육의 꽃입니다
아이들은 교육의 꽃입니다 ⓒ 안준철
저는 학교에서 동료교사들과 학생들의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가령, 30분 지각한 아이를 하루 종일 교무실 복도에 세워놓는 것은 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등의 얘기 말입니다. 이런 경우 열이면 일곱은 저를 조금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니 지각하거나 숙제를 해오지 않는 것도 그 아이의 자유일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꺼냈다가는 모르면 몰라도 저를 어딘지 정신이 불온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상종도 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는 작년에 담임을 하면서 지각하는 아이들을 단 한 번도 때리거나 교무실 복도에 세워놓은 적이 없습니다. 숙제를 해오지 않은 아이도 수행평가에서 감점을 준 것 말고는 별다른 체벌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하라고 준 권리를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부정적으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대신, 저는 휴일을 이용하여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산을 찾곤 했습니다. 평일에는 생일을 앞둔 아이들과 사랑의 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삶을 담은 생일시를 써서 선물로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모둠별로 밥을 함께 먹으면서 자잘한 일상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학교를 즐거운 공간으로 여기고, 자기 삶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러다보면 더디지만 분명한 응답이 오곤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지각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도, 숙제를 하지 않을 자유를 주어도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위해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슬기로운 아이들로 성장해주었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고, 시간이 사뭇 오래 걸리긴 했지만 말입니다.

저는 혹시,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무한 자유의 세계로 편입될 아이들인데 무엇보다도 '자유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올해 담임을 맡지 않다 보니 한동안 참 편했습니다. 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 여전히 말썽을 부릴 때도 새 담임선생님은 갖은 애를 다 쓰시는데 저는 뒷짐 지고 바라보는 여유를 즐기고 있었지요. 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편함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진 사실에 새삼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은 곧 교사인 제 자신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반대 개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지요. 맞는 말이지만 저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사랑하다'의 반대말은 '사용하다'라고 말입니다. 물론 사전적인 해석은 아니고 저 혼자 생각해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다른 누군가를 수단으로 삼는 일일 것입니다. 그를 사용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30분 늦게 학교에 온 아이를 하루 종일 교무실 복도에 세워 놓는 것이 과연 사랑의 행위인지. 아니면 학급 관리를 잘하기 위해(혹은, 학급 관리를 잘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 아이들을 사용한 것은 아닌지.

한참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을 그들의 자유의사나 개인형편과는 상관없이 강제로 새벽같이 학교에 오게 하여 밤 10시가 넘어서야 하교시키는 것이 과연 사랑의 행위인지. 아니면 입시명문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사용하는 것인지. 교육의 꽃인 아이들을 그 알량한 명예를 위해 수단화하는 것은 아닌지.

감히 단언하건대,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깊이 성찰하지 않는 한 어떤 처방으로도 나라의 백년대계인 교육문제가 근본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어린 제자들을 아프게 한 몰지각한 일부 교사들의 비인간적인 체벌행위도 근절되지 않을 것입니다.

꽃을 보면 아이들 생각이 납니다.
꽃을 보면 아이들 생각이 납니다. ⓒ 안준철
5분쯤 지나자 정말 스쿨버스가 왔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었습니다. 그날 우산 속에서 나눈 우리의 마지막 대화입니다.

"잘 가!"
"선생님도 안녕히 가세요!"
"우리 내일 만나는 거지?"
"그럼요. 선생님, 내일 만나요."
"그래. 어서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저도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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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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