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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입구에 지리산 생명연대가 있다.
ⓒ 조태용
"절대 서둘지 말어. 우리 동네 여론 주도층은 60대야. 젊은이들이 뭐라고 생각해도 그게 지역 여론이라고 착각하면 안돼. 자기 주장이 옳다는 확신이 들어도 일방적으로 주장하면 안돼."

전북 남원시 인월면의 한 이발사가 윤정준 지리산생명연대 사무처장에게 해줬다는 이야기다. 윤 사무처장은 "오다가면서 머리를 깎다가 알게된 '이발사'가 나의 자문위원이었다"면서 "이 지역 토박이였던 그는 인월-산내간 8km 도로확장 반대운동을 하던 나에게 지역 정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고 고마워했다.

결국 그 이발소는 도로반대운동의 작전회의 장소가 됐고, 주민들과 함께 60번 지방도로의 4차선 확장 공사를 막은 뒤에도 '아름다운 길 가꾸기 포럼'에 참여하는 등 지리산생명연대의 열성 회원이 됐다고 한다.

"그가 운동가라고요? 그냥 그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뛰어든 겁니다. 차량 속도를 5~10분 정도 줄이는데 1100억원이라는 세금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얘깁니까."

▲ 넉넉한 웃음으로 지리산을 닮아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지리산 생명연대 윤정준 사무처장이다.
ⓒ 조태용
윤정준 사무처장. 그를 만나러 가던 날, 장마 전선이 지리산을 넘나들면서 간간이 비를 뿌리고 있었다. 남원 다음 운봉, 그 다음 인월, 거기에서 좀 더 지리산으로 깊이 들어가면 실상사(남원시 산내면)가 나온다.

그 옆의 단아한 황토색 1층 건물이 지리산과 더불어 사는 생명들을 위해 일하는 단체, 지리산 생명연대(www.savejirisan.org)의 사무실이다.

윤 사무처장이 지리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실상사 귀농학교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법대 졸업 후, (그의 표현에 따르면) '강호를 유람하던' 그는 서울 지하철에 가득한 사람들을 자기도 모르게 증오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단지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이 싫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2년, 그는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실상사 귀농학교를 찾았다. 이어 그 해 겨울, 귀농을 결정했고 귀농학교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가 지리산생명연대에서 일하게 된 것은 좀 지난 2004년 1월부터였다. 그때부터 그의 삶은 지리산과 함께 했다.

"사람과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말하는 태도에서부터 그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나는 '시장바닥에서 놀던 놈'이라서 주민들과 만나 같이 욕도 하고, 커피도 시켜먹고, 때론 당구를 치면서 사람들과 만난다. 한 동네 후배는 나한테 '형님! 대체 학번이라는 게 뭐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니가 대학교 나오면 90학번'이라고 얘기해줬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거나, 논리정연하게 설득하려고 하는데 지역에서는 별로 소용없다. 같이 어울려 다니면서 놀듯이 즐겁게 운동하고, 같이 분노하면 되는 일이다. 나는 동네 친구들이 요구하면 필요한 정보를 준다."

윤 사무처장이 지리산 '산지기'를 자청하고 나선 뒤 터득한 풀뿌리 시민운동방법론이다.

"주민들은 막연하게 개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지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이런 주민들이 있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주민들 뿐만 아니다. 지리산을 파헤친다면 많은 국민들이 일어설 정도로 상징성이 있다. 최근에는 이 지역의 환경·농민·노동 단체들이 지리산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지리산은 우리만 보고 느끼고 끝날 산이 아니거든요.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도 지리산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문화관광부의 지리산권 관광개발계획에 맞서고 있는 윤 사무처장이 아직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근거이다.

다음은 윤정준 사무처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귀농하러 왔다가 농사를 포기하고 지리산 생명연대로 간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맞다, 처음엔 귀농이 먼저였다. 도시에서 사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런 생각에서 귀농학교에 오게 됐고 이듬해에 귀농했다. 처음에는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귀농했을 때부터 지리산생명연대 측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도 농사보다는 이 일이 내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리산 곁에서 살다 보니 지리산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고나 할까? 그렇게 지리산과 내 인연이 시작된 거다."

- 결혼 후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아내가 좋아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2004년 도로건설 반대운동한다고 매일 밤까지 주민들과 이야기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늦게까지 술도 먹게 됐고. 그때가 신혼 초였는데 아내 입장에서 좋았을 리가 없을 거다. 하지만 요즘은 아내가 많이 이해해준다. 나도 가급적 일찍 귀가하려고 노력한다. 예쁜 딸과 놀아주기도 해야 하니까."

▲ 주민 밀착형 운동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그의 운동스타일이다.
ⓒ 조태용
- 지역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할 때 중요한 것이 있다면.
"나는 지금 산내 방범대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 활동을 통해 주민들과 많이 가까워졌다. 생명운동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선언이나 말이 아니라 행동과 태도다. 동네에서 '저 형은 좋은 사람이다, 저 사람은 쓸만하다'라는 소리를 들어야 그 사람의 목소리도 귀담아 준다. 이제 중앙운동과 지역운동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브나로드운동이나 중국 문화혁명 시기의 하방 운동 방식이 필요하지 않나 고민 중이다. 한 마디로 지역밀착형 운동방식이 필요한데, 특히 지역운동은 지역민들과 얼마나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

- 지역 주민들과 호흡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다.
"지리산생명연대에서 내가 초기에 했던 일 중 하나가 60번 국가지원지방도 4차선 확장공사 반대운동이었다. 우리는 도로가 마을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환경도 파괴할 것이라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도로 건설이 어떻게 마을에 영향을 주는지 알기 위해 마을 청년들과 함께 답사를 했는데, 직접 가서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더니 사람들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도로 확대를 반대했던 주민들이 모여 아름다운 길 가꾸기 포럼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지리산에서 시민운동 한다는 것

▲ 지리산 생명연대에서는 월간 지리산이라는 작은 책자를 발간하고 있다.
ⓒ 조태용
- 지리산생명연대의 꿈은 뭔가?
"지리산에는 5개 시·군이 있는데, 이들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마을 공동체를 만들자는 거다. 말하자면 지리산생명공동체라고 할까? 예를 들면, 알프스는 7개 나라와 접하고 있는데 알프스를 보존하기 위한 공동규약을 만들었다. 이 규약은 한 시민단체가 13년 동안 노력한 끝에 만들어진 것이데, 이 규약이 생긴 후 알프스 인접지역 사람들의 삶이 그전보다 향상됐다. 지리산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과는 어떻게 소통하고 있나?
"주민들과 함께 삶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를 많이 만든다. 주민들 스스로 지역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 자연과 공존하는 개발을 하는 것이다. 7월 1일 시작한 '희망 씨앗 찾기'라는 교육 프로그램도 거기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지리산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희망을 한 번 털어놓고 이야기해 보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식이다."

- 지리산에서 시민운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
"뭐, 꼭 지리산 지역이어서 그런 건 아니지만 농촌에서 환경 운동을 하면 도시와는 상당히 다른 반응을 보인다. 도시는 이미 개발이 완료된 시점에서 깨끗한 환경을 찾기 위한 요구가 많은데, 개발이 되지 않아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사는 농촌주민들은 지역개발을 통해 발전하기를 원한다.

예를 들면, 멧돼지가 늘어나면 도시 사람들이야 별 피해가 없으니 '멧돼지를 보호하자'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농민들은 큰 농작물 피해를 보게 된다. 이런 농민들에게 멧돼지를 보호하자고 설득할 때 생활과 크게 관계없는 도시민들과 같을 수가 없다. 지리산생명연대 역시 낙후된 지역의 발전을 원하는 주민들에게 환경 보호에 대해 설득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특히 어렵다.

또 하나는 사람이다. 농촌에 사람이 없다. 함께 일할 사람이 없는 거다. 환경단체에서 일도 하고 귀농도 해야 하니까 이 두 가지 변화를 모두 감수하고 지리산에 내려와 환경운동을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게 힘이 든다."

▲ 지리산생명연대 홈페이지(www.savejirisan.org)
5시 30분에 시작한 인터뷰는 어느덧 9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리산생명연대를 떠나면 무엇을 할 거냐고 했더니 지금 살고 있는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마을과 주민들을 위해 일할 생각이란다.

누군가 그를 한 마디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지리산처럼 넉넉한 웃음에 순박한 미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래서 지리산을 닮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새 비는 멈추고 지리산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거리고 있다.

<지리산생명연대>는 어떤 단체?

생명과 평화의 산 지리산은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의 5개 시군에 걸쳐 있으면서도 그 경계를 넘어 어머니의 산으로 온 국민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다.

지리산 시민운동은 1999년 <지리산을 사랑하는 열린연대>로 시작됐다. 이어 지리산 댐 백지화 추진을 위해 2000년 8월 창립한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이 창립했고, 2002년 5월 이 두 단체가 통합해 창립한 것이 <지리산생명연대>다.

<지리산생명연대>의 활동은 ▲생태보전활동 ▲생명문화 만들기 ▲교육활동 - 어린이 하천생태보호모임 '엄천강 친구들', 지리산 생태문화 안내자 양성교육, 생태체험모임 '산이랑' ▲지리산권 활동가 교육 ▲지리산권 연대활동 ▲회원소식지 계간 <지리산> 발간 ▲지리산생명연대 티셔츠 및 기념품 판매사업 등이며, 자세한 내용은 www.savejirisan.org에 나와있다.

지리산생명연대의 발자취

1999년
8. 23 <지리산을 사랑하는 열린연대> 창립

2000년
6. 29 지리산살리기 댐백지화 추진 범불교연대 발족
8. 11 지리산 문화제(1만여명 참가, 경남 함양 상림숲)
8. 30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창립
10.12 낙동강살리기와 지리산댐 백지화를 위한 <지리산살리기토론회> 개최
10.23~11.18 낙동강 1300리 도보순례
11.28 낙동강 도보순례단 보고대회
12.7 지리산 반달가슴곰 보전대책 촉구 거리행사

2001년
1. 1 민족의 영산 지리산 살리기의 원년 선포
1. 17 지리산살리기와 낙동강 수질개선을 위한 ‘범국민 토론회’
2. 16 청정국토 기원범종교계 100일 기도
2월~12월 지리산 공부모임 6회 개최
2.17~4.30 지리산 생명살림 염원 백두대간 종주
5.2~5.18 지리산 850리 도보순례
5. 26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 개최
8.10~12 지리산열린학교 개최
8.20 지리산살리기 운동의 평가와 국민행동의 미래 토론회

2002년
2. 2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과 <지리산을 사랑하는 열린 연대> 통합 토론회
5. 25 두 단체 통합으로 <지리산생명연대> 창립총회
7.17~ 엄천강 기름유출사건 대응
8. 17 미안해요 엄천강! 음악회
11.2 백두대간 대청소 지리산구간 진행

2003년
지리산댐 재추진 반대 활동.
생명평화 민족화해 평화통일을 위한 평화관련 행사 개최.
3. 23 2003년도 정기총회
7. 14-16 2003 전국환경활동가워크숍 개최(실무주관)
7. 16 이라크에서 온 평화의 증언 좌담회
8. 3 지리산생명평화기원 한마당 / 지리산생명평화결사 추진위 발족식
8. 15 지리산 생명평화기원 마당극 "흥부네 박 터졌네" 공연
9. 28 성삼재 관통도로 걷기대회
11. 9 "웃어요, 지리산" 청소의 날

덧붙이는 글 | 지리산생명연대는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지리산생명연대 홈페이지(www.savejirisan.org) 또는 전화(063)636-1944~5번으로 연락하면된다.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운영하는 참거래연대(open.farmmate.com)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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