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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온지 21년째. 이제 포도박사가 된 서경선씨가 포도밭에 서 있다.
시집온지 21년째. 이제 포도박사가 된 서경선씨가 포도밭에 서 있다. ⓒ 이우성
서씨의 집에는 항상 손님이 넘쳐난다. 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난 2000년까지는 4대가 한 집에 살았다. 항상 10명 내외의 식구가 살았으니 그의 가정 살림의 노하우는 아무렇게나 생긴 게 아니다.

지금도 부모님, 두 명의 시동생, 남편 김태연(47)씨, 김천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 정혁이 등 고정 식구는 7명이다. 경북외국어고등학교 3학년인 딸 로타만 대구로 나가 있다. 저녁을 먹어도 잔칫집 같이 음식을 장만해야 한다.

거창이 고향인 서씨는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1985년에 김태연씨와 결혼했다. 서씨는 김천여고를 졸업하고 김천시내에서 동사무소 공무원 생활을 했었는데, 교회 장로로 있는 지금의 시아버지 김 선생이 친구를 통해 장남 중매에 팔을 걷고 나서 결혼이 성사됐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서씨는 신앙이 있는 집안이면서 믿는 사람을 선택하겠다는 결심대로 결혼을 했는데, 참 잘 선택했다는 생각으로 늘 감사해 한다고.

서씨 자신은 농사를 안 지어봤지만 친정 집안은 농사를 지어 일에 겁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 후에도 직장을 다녔는데, 날이 밝으면 일어나 밥하고 직장에 나가갔다가 돌아와 밥하고 설거지하면 밤 10시가 넘었다. 당시 서씨는 몸이 많이 약했는데, 하루는 퇴근하고 돌아와 코피를 쏟으며 몸저 누었다. 장티푸스에 걸린 것이다. 그 이후로 집에서 직장을 그만 두라고 권하고 해서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이후 서씨는 피곤하면 쉴 수 있고, 낮잠도 잘 수 있고, 주일을 매일 지킬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큰살림을 살았지만 개방된 사고를 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말을 잘 들어주는 시아버지가 잘 도와주어 초기의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었다.

특히 힘들 때마다 기도하면서 신앙의 힘이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농사라는 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서씨는 육체가 허약하니까 밤마다 끙끙 앓았다. 그래도 희한하게 아침이면 피곤이 풀리고 눈이 절로 떠졌다. 깨끗한 포도나무의 순수함 그대로 자신이 닮아 가는 듯했다. 갈수록 농사도 이력이 붙었고 자신도 튼튼해져 몸살도 적어졌다.

서경선씨의 바지런함은 널리 소문이 나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도 절로 포도나무를 닮아갔다고 말한다.
서경선씨의 바지런함은 널리 소문이 나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도 절로 포도나무를 닮아갔다고 말한다. ⓒ 이우성
남편은 컴퓨터 강사, 한겨레신문 지국 일을 하다가 농작물 가공에 취미를 붙여 포도가공에 나섰다.

포도농사는 노지에서 무농약이 힘들어서 하우스를 짓고 무농약 농사를 지었다. 만보병이 걸린 포도를 솥에 넣고 끓여 주스를 만들었다. 처음 한 살림에 맥주병에 담아 주스가 나갔다. 1993년에 집을 다시 짓고 지하에 포장기 같은 기계를 들어놓고 포도즙과 호박즙을 가공했다.

남편은 밤을 꼬박 새워 일하고 봉고차로 서울로 배달을 다녔다. 2년 뒤에 전통식품 업체로 지정 받아 보조융자를 내서 제대로 시설을 갖추었다. 남편은 결혼 전에 서씨가 공무원 생활을 했다고 모든 서류처리와 경리 일을 아내에게 맡겼다. 발주 처리도 다 도맡았다. 그리고 1999년에는 포도주까지 허가를 냈다.

지금 농사규모는 집 앞 생과로 내는 포도 하우스 1500평과 가공용으로 쓰는 상주에 노지포도 2400평이 전부다. 품종은 블랙올림피아와 청포도. 모두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생산된 포도는 한국생협연대와 한살림, 정농회, 새농회로 전량 나간다.

또 근처에서 농사짓는 친환경포도를 납품 받아 가공을 많이 하는데, 작년부터는 친환경 농가가 늘어나면서 원료가 많아져 조금씩 남는 정도다. 상주포도밭은 남편과 출퇴근 농사를 짓는다. 작년에 저장고와 냉동고를 만들었고 지금 창고를 다시 짓고 있다.

서씨는 1996년에 한살림여성생산자모임을 처음 결성했는데, 회장은 서순악 선생이 맡고 여기서도 서씨가 총무 일을 맡았다. 처음 40명으로 출발해서 70명으로 늘어난 지금은, 서경선씨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다.

유기농을 하는 집안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고생이다. 여성생산자들을 위로하자는 취지로 한살림여성생산자모임이 결성되어, 여성생산자 견학이나 교육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농업 살림뿐만 아니라 밥상 살림도 하자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1월 연수회에는 200명이 넘는 여성생산자가 참여했으며, 지역모임도 꾸려졌다. 저녁시간에는 지역을 순회 방문하면서 여성생산자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다. 여성생산자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할 일을 먼저 하고 건강을 최고로 여기자는 모토로 서씨는 뛰고 있다.

"도농 교류를 위해 건강이나 요가, 단전호흡에 지식이 많은 소비자가 생산자들에게 교육을 하면서 교류를 하면 좋겠어요. 생산자도 소비자의 한 사람이니까 자신이 농사짓지 않는 것은 많이 사먹는 것이 좋겠구요."

40년도 넘은 거봉포도 한그루가 넓은 그늘을 드리우며 30평 넘게 뻗어있다.
40년도 넘은 거봉포도 한그루가 넓은 그늘을 드리우며 30평 넘게 뻗어있다. ⓒ 이우성
무농약 농사는 쌍점매미충과 총채벌레가 제일 문제다. 서씨는 "농사는 잘 되는데 수확은 잘 못한다"면서 웃는다. 또 "아버님이 이론에 너무 밝으셔서 그렇다"고 농담을 건넨다.

서씨의 집 포도원에서는 최고로 수확한 때가 연수입 5000만원을 올린 것이라고 한다. 보통 같은 평수에서는 1억이 넘는 수확을 하는데, 그것에 비하면 적은 액수인 평균 2∼3천만원이 수입이라면서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서씨의 포도원에서는 착색이 안 되는 포도는 식초를 만들거나 주스를 만들어 하나도 버리는 것이 없다고 위안을 삼고 있다.

그래도 작년에는 천적을 풀어 포도의 착색이 잘되었다. 열매는 자연 그대로 잘 되는데, 수확이 많지 않아 생과로는 밥을 못 먹고산다고 털어놓는다. 생산물 중 포도즙이 제일 많이 팔려 나간다. 또 그의 집에서는 포도주, 호박즙, 포도식초도 가공한다.

보통 8월 중순부터 11월 초순까지는 가공일로 정신이 없다. 완전히 '꼼짝마라'다. 힘이 들어도 덕천포도원 가공품을 맛보고 "맛있는 것 먹게 해주어 고맙다"고 전화해 주는 소비자들이 있어 힘을 내고 보람을 느낀다고 서씨는 전한다.

지금 서씨는 생활에 관성이 붙은 것 같다. "매사 힘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가슴이 있다"는 말로 미루어보면 스스로 생활을 조절하고 관장할 수 있는 에너지가 풍부한 것 같다. 그러면서 "모난 곳이 깎여서 둥글둥글 해졌다"고 말하면서 서씨는 활짝 웃는다.

"여성농민들도 즐겁게 지내야 합니다. 마음먹기에 달렸지요. 한탄만 하면 지옥이고, 자기 환경에 만족하면서 웃으면서 살면 천국이지요."

서씨는 환경이 고달프더라도 거울을 쳐다보면서 항상 웃자고 주장한다. 아프면 자신만 손해이니 자기 몸 관리는 자기가 하면서 마음을 잘 조절하자고 덧붙인다.

그는 넉넉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자라서 그런지 아이들이 부모에게 위로를 잘해준다고 칭찬을 한다. 특히 딸은 공부 열심히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잘 챙기고 자신에게도 힘이 되어준다고 자랑한다.

그 역시 결혼 후에도 방송대 학사를 마치고 대구몬테소리 선교신학 과정을 2년 동안 마칠 정도로 자신을 가꾸기에도 열심이다.

김천농업기술센터 총무, 농협농가주부모임, 교회학교연합회 회계, 주일학교 교사, 상주한살림 총무, 한살림여성생산자모임 대표 등 그가 맡고 있는 일들도 많다. 바쁘게 뛰어다녀야 하는 일들이 많지만 이렇듯 쓰임새가 많은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서씨는 빙그레 웃는다. 가족이 도와주니 이 일들을 할 수 있다고 공을 넘긴다.

무엇보다 시아버지께서 "애먹었다, 고맙다, 맛있다"라고 자주 던져주는 칭찬의 말 한마디에 피곤을 잊는다고 강조한다. 자신을 이해하는 시아버지 자랑에 끝이 없다.

자신의 그릇만큼의 쓰임새를 십분 다 쓰고 가는 사람은 아름답다. '반드시 내가 너를 복 주고 번성케 하리라'는 그의 집 편액처럼 그는 자신을 불살라 세상에 복을 주고 희망을 주는 세상의 총무임을 확인한다.

농촌을 위해, 여성농민을 위해 아직 그가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그는 가슴이 넓고 젊다.

시아버지 김성순 선생과 함께. 서로 친구처럼 어려움을 나누는 인생의 동반자 같다고 한다.
시아버지 김성순 선생과 함께. 서로 친구처럼 어려움을 나누는 인생의 동반자 같다고 한다. ⓒ 이우성

덧붙이는 글 | 화목한 가정에서 농촌살이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이분, 농촌, 농민, 농업이 이분만큼의 쓰임새에 참 고마워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흙살림(www.heuk.or.kr)신문 6월호에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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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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