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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긴 '잔도'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견뎌온 잔도도 싼샤댐의 위력에는 어쩔 수 없다. 샤오싼샤에 남아있는 20㎞ 잔도는 물 속으로 사라졌다.
물에 잠긴 '잔도'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견뎌온 잔도도 싼샤댐의 위력에는 어쩔 수 없다. 샤오싼샤에 남아있는 20㎞ 잔도는 물 속으로 사라졌다. ⓒ 모종혁
고달픈 수몰지 이주민들의 삶

우산항 부두에서 작은 동력선으로 갈아타서 양쯔강의 지류 중 하나인 따닝허(大寧河)에 들어서니, 싼샤의 아름다움만 모아놓았다는 샤오싼샤가 반겨왔다. 1997년 필자가 처음 싼샤를 찾았을 때만 해도 샤오싼샤는 수위가 얕았고 중류부터는 수많은 첸푸(钎夫)들이 활동했었다.

9년 전 필자에게 강렬한 느낌을 주었던 깎아지는 협곡과 험준한 준령의 장관은 급상승한 수면 탓인지 이번에는 그 위용이 반감(半減)되었다. 영롱했던 따닝허의 맑은 물도 역류된 양쯔 강물 때문에 조금씩 썩어가고 있었다. 수몰되어 비어가는 마을과 농가, 도굴까지 되어 방치된 분묘, 절벽에 길을 놓아 만든 20km 길이의 잔도(棧道)가 잠기는 모습은 애잔하기까지 하다.

샤오싼샤 계곡 안에 자리잡은 따창진(大昌鎭)에서는 이주 공사가 한창이었다. 3세기부터 군사요충지의 둔전(屯田)마을로 주민이 거주하기 시작한 따창진은 마을 전체가 국가문화재이다. 명·청대부터 축조된 성벽과 옛 민가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충칭시 정부는 올해 10윌 수몰될 따창진을 12㎞ 떨어진 신도시로 고스란히 옮기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4천여 명의 주민들을 강제로 소개시키고 가치있는 문화재를 철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일부 주민들은 떠날 생각을 않고 있다. 올해 초부터 단전, 단수 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300여 명의 남은 주민들은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폐허된 마을  강제이주와 철거가 진행중인 따창진. 이주를 거부하는 주민들을 압박하기 위해 단전, 단수 조치까지 이뤄졌다.
폐허된 마을 강제이주와 철거가 진행중인 따창진. 이주를 거부하는 주민들을 압박하기 위해 단전, 단수 조치까지 이뤄졌다. ⓒ 모종혁
3백년된 원가대원(溫家大院)에 사는 윈씨 집안 사람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집과 재산을 거저 빼앗아간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12대손인 원윈펑(溫雲蜂, 53)은 "집부터 시작해서 가구 모두가 백년 이상 된 골동품인데 정부는 16만 위안(우리 돈 약 2천만 원)에 집과 모든 살림살이의 소유권을 넘길 것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12대 후손인 우리 대에서 온가대원을 잃는다면 조상들을 볼 면목도 없고 후손들도 영원히 우릴 탓하지 않을 것인가"라고 말했다.

연로한 노인들은 이주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옌자원(嚴家運, 82)은 "조상대부터 2천년동안 따창진에서만 살았다"면서 "물이 잠기더라도 여기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아 신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의 사정도 그리 낫지 않다. 따창진과 주변 수몰 마을의 주민들 1만여 명을 정착시키기 위한 따창신진(大昌)은 또 다른 건설 공사로 여념이 없다. 조금씩 신도시의 면모는 갖추어 가지만 정부가 이주민들에게 제공한다고 약속한 아파트는 여전히 공사 중이다.

따창신진 중심광장의 간이막사에서 거주하는 황센장(黃顯章)은 "농사를 짓다 신도시로 이주한 뒤 일거리가 없어 아내가 충칭으로 나가 식당에서 일하여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다"면서 "한 가구당 46㎡씩 할당해서 준다는 아파트도 준비가 안 돼 벌써 네 달째 천막살이 중"이라고 푸념했다. 옆 막사에 사는 40대 여성은 "몇 달째 식수 공급을 해주질 않아서 물을 사먹었는데 이제는 돈도 없어 빗물을 받아 먹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거리에서 자판을 벌여 먹거리 장사를 하고 있는 탕웬수(唐雯淑, 여)는 "뤼핑진(廬平鎭)에서 농사를 짓다가 강제이주당했다"면서 "새벽 7시부터 시작해서 밤 10시까지 일하지만 20위안(약 2600원) 정도를 벌 뿐"이라고 말했다.

수몰지역 이주민의 현황을 조사한 충칭대 정쩌건(鄭澤根) 교수는 "수몰지역 이주민들이 신도시로 갓 이주했을 때는 나아진 거주 환경을 만족스러워 하지만 매달 45위안(약 5600원)에 불과한 정부의 생활 보조금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회류이민(回流移民)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면서 "정든 고향을 떠난 이주민들이 새로운 생활환경에 적응하고 돈벌이를 할 일자리를 찾는 것이 이주정책의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고향에서 천막으로  수몰지에서 따창진으로 이사한 이주민에게 제공된 것은 오직 간이천막일 뿐이다.
고향에서 천막으로 수몰지에서 따창진으로 이사한 이주민에게 제공된 것은 오직 간이천막일 뿐이다. ⓒ 모종혁
수몰로 사람, 역사, 자연이 사라진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따창신진을 떠나 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산간마을인 핑후(平湖)에 도착했다. 싼샤에서만 볼 수 있는 직업인 첸푸를 만나기 위해서다. 고대부터 첸푸는 노를 저을 수 없는 싼샤 협곡의 급류에서 밧줄로 배를 끌어 상류로 옮기는 노릇을 했다.

투자족(土家族)이나 유랑민의 후예였던 첸푸는 20세기에 들어서도 1990년대 초까지 수면이 얕은 계곡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했다. 수면이 얕고 물살이 빠른 싼샤의 수많은 지류에서는 노를 젓거나 동력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4~6명이 한조로 이뤄 10여명이 탑승하는 소형 선박을 끄는 첸푸는 한 달 수입이 싼샤 주민의 평균소득의 두 배인 1000위안에 달해 인기 높은 직업이었다. 하지만 싼샤댐 건설후 수위가 140m 이상까지 올라가면서 첸푸도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한때 수천 명이 활동했던 첸푸의 숫자는 지금은 백 명도 남아 있질 않았다. 이제는 다닝허의 지류인 마두허(馬渡河)의 샤오샤오싼샤에서만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어디로  싼샤댐은 쌴샤에서만 볼 수 있는 직업인 첸푸마저 사라지게 하고 있다.
이들은 어디로 싼샤댐은 쌴샤에서만 볼 수 있는 직업인 첸푸마저 사라지게 하고 있다. ⓒ 모종혁
"수위가 올라가면서 샤오산샤가 물에 잠기고 샤오샤오싼샤도 중류까지 수몰되면서 우산 일대의 첸푸는 씨가 말라버렸다."

핑후에서 사는 첸푸 왕샤오린(王燒淋)은 자신도 일거리가 없어져서 광둥성으로 나가 2년 동안 일하다 돌아왔다며 "지금은 그나마 우산현 정부가 운영하는 여행사 소속으로 일하면서 농사도 짓고 해서 기본적인 생계는 유지하고 있지만 2008년에 싼샤댐 수위가 175m까지 올라가면 첸푸 일은 그만 두어야 할 실정"이라고 말했다.

사라지는 것은 첸푸만이 아니었다. 다음 날 우산을 떠나 찾은 펑제(豊節)현 백제성(白帝城)은 천여년된 역사를 지닌 성벽이 철거되거나 물에 잠겼고 일부 건축물만 강물로 뒤덮인 섬 위에 남아있다.

싼샤의 첫 절경인 취탕샤의 시작점이기도 한 백제성은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 원정을 나섰다가 패해 숨지면서 제갈량에서 후사를 부탁한 곳으로 유명하다. 뒤이어 찾은 윈양(雲陽)현의 장비(張飛)묘도 이미 수몰되어 중요한 유적만을 10여km 떨어진 고지대로 옮겼다. 싼샤댐 건설로 수몰된 문화재만 1200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쯔강 수위가 전보다 평균 50~70m 올라가면서 싼샤의 자연 풍광이 훼손되는 것도 아쉽다. 굴원, 이백, 두보, 백거이, 소식 등 중국의 수많은 문인들이 싼샤를 노래한 것은 깎아지는 듯한 협곡과 하늘까지 치솟은 험준한 산세의 신비스러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물에 잠긴 싼샤는 안개로 둘러싸여 빼어난 자태를 뽐내기도 힘들다.

역사도 수몰 위기  백제성은 섬으로 변하고 오직 '유비탁고'(劉備託孤) 고사의 현장인 탁고당(託孤堂)만 남았다.
역사도 수몰 위기 백제성은 섬으로 변하고 오직 '유비탁고'(劉備託孤) 고사의 현장인 탁고당(託孤堂)만 남았다. ⓒ 모종혁
옛 시인의 근심을 떠오르게 하는 싼샤의 현실

윈양을 떠나 충칭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깊은 상념에 잠겼다. 중국 정부가 내세운 홍수방지, 전력생산, 물류이동 등 싼샤댐 건설의 목표는 언젠가 중국인들에게 큰 경제적 이익으로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허나 중국 안팎으로 우려한 자연환경과 생태계의 파괴 현상은 하나둘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수몰지 이주민들의 삶과 생활이 붕괴되어 기본적인 생계조차 어려운 현실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더 이상 해결하기 힘든 불안의 폭탄이 되고 있다.

배에서 만난 펑제의 한 주민은 "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부패한 관리들이 이주민들의 정착비를 착복하여 살기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중국 <차이나데일리>는 국무원 싼샤사업건설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싼샤댐 수몰지 이주비용으로 책정된 자금이 부패한 관리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차이나데일리>는 "지금까지 이주비용 관련 횡령사건만 모두 327건, 이로 인해 구속자만 369명, 횡령된 액수는 5580만위안(약 67억6천만원)에 달한다"고 했다.

'천하 제일 절경'이라는 싼샤 취탕샤 입구.
'천하 제일 절경'이라는 싼샤 취탕샤 입구. ⓒ 모종혁
이런 현실 때문일까. 천여년 전 안사의 난을 피해 싼샤를 유랑하던 두보의 시 한 수가 떠올랐다. 싼샤의 아름다움에도 마음이 편지 못했던 옛 시인의 근심이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찬이슬 내려 숲은 단풍으로 물들고(玉露凋傷楓樹林)
우산우샤는 쓸쓸한 기운이 가득하네.(巫山巫峽氣蕭森)
강 사이로 이는 파도는 창공에 솟구치고(江間波浪兼天湧)
변방 하늘 구름 천지에 어둠이 드리운다.(塞上風雲接地陰)
한 해가 가고 국화는 새로 피어 다시금 눈물짓고(叢菊兩開他日淚)
쓸쓸한 강 위에 배에 묶여서 온통 고향 생각이 절로 나네.(孤舟一繫故園心)
어느새 지척에 다가온 추위는 겨울 옷을 재촉하는데(寒衣處處催刀尺)
홀연 백제성을 휘몰아치는 다듬이 소리 급하구나.(白帝城高急暮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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