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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속철도(KTX) 승무원 등 250여명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리해고 철회와 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고 촉구했다.
ⓒ 석희열
고속철도(KTX) 승무원들이 연일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지난 21일 100여 명의 승무원들이 근무복을 입은 채 장대비를 뚫고 청와대까지 행진한 데 이어 23일엔 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전달했다. 다음 주부터는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땅 위를 달려야 할 '고속철의 꽃'이 2년만에 땅바닥에 떨어졌다. 개성과 하산, 나진을 거쳐 시베리아를 통해 유럽까지 뻗어나갈 것이라는 분홍색 꿈도 깨졌다. '땅 위의 스튜어디스'라는 찬사는 온데간데없고 정리해고 통지만 남았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115일째 파업농성을 벌이고 있던 고속철도 승무원들은 철도공사의 직접고용과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23일 또 다시 길거리로 나왔다.

승무원 100여 명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고 고속철도 승무원 문제 해결에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철도공사는 지난달 15일 고속철도 승무원 280명을 정리해고했다.

▲ 이날 집회에서는 115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고속철도 승무원들의 가족 27명도 참가해 함께 구호를 외쳤다.
ⓒ 석희열
승무원들은 "아무런 힘도 없는 저희의 투쟁이 이대로 끝나버린다면 저희는 다시는 그 어떤 정의도 믿지 않고 그 어떤 평등도 원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며 "시류에 영합하지 않겠다던 초심으로 돌아가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 달라"고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정혜인 철도노조 KTX승무지부 부산지부장은 "이철 철도공사 사장은 KTX 승무원들을 고용하면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되므로 직접고용할 수 없다고 한다"면서 "이철 사장은 할 수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나서면 외주위탁 문제와 직접고용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승무원 가족들과 민주노총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 150여 명이 함께 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고속철도 승무원들의 직접고용 요구를 외면하는 노무현 정부와 철도공사를 규탄했다.

이태영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정부가 오히려 KTX 노동자들을 학대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못한다면 민주노총 80만 노동자가 전국의 87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눈물을 닦아주겠다"고 승무원들을 격려했다.

김영환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철 사장이 KTX 승무원들을 직접고용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공기업을 신자유주의 시장바닥에 내던지려는 정부의 정책 때문"이라며 "노동자의 목을 옥죄는 이 땅의 정책들을 바꿔내는 투쟁을 힘차게 벌여나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고속철도 승무원들이 종로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마친 뒤 광화문을 향해 거리행진하고 있다.
ⓒ 석희열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KTX 승무원입니다.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어 승무원들은 "정리해고 웬말이냐 외주위탁 철회하라" "노동자 탄압하는 노무현 정부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을 향해 행진했다. 당초 청와대까지 행진하려다 집회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중간에서 멈춰선 것.

방송차량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행진을 이끈 김정은 문화부장은 "2년 전 저희는 세계 5번째 고속열차 개통과 더불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가며 KTX 승무원이 됐다"고 말한 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고소고발, 체포영장, 불구속 입건 등 280명 전 승무원들이 형사처벌을 받았다"라며 시민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이어 "2년 뒤에는 준공무원 대우와 정규직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에게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해고통지를 받았다"며 "이제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고 외쳤다. "100일 넘게 싸우고 있는 저희에게 힘을 주세요, 하루 빨리 고객님 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라는 절규다.

▲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으로 이동한 고속철도 승무원들은 약식 집회 뒤 노란 풍선에 각자의 절절한 소망을 담아 청와대로 날려보냈다.
ⓒ 석희열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 도착한 승무원들은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며 천막농성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다시 약식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비록 소수만 남는다 하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음 주부터 청와대에서 본격적으로 1인시위를 하겠다"고 밝혔다.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고속철도 승무원 안윤경(서울지부·25)씨는 빨리 파업을 끝내고 KTX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 왜 투쟁하나.
"먼저 우리의 파업 투쟁은 조합원 총회를 거쳐 결정된 합법 파업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몰랐는데 1년 정도 지나다보니까 외주로는 승무원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홍익회(지금의 철도유통공사)에서 일할 때 무전기가 자주 고장 나 고쳐달라고 해도 잘 안 고쳐줬다. KTX 승무원에게 무전기는 고객 안전을 위해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외주 위탁운영하다보니 한 단계 막혀 제때 처리가 안되는 것이다. 고객 안전을 위해 반드시 직접고용이 필요하다."

- 집에도 못가고 있는 것인가.
"파업 때문에 거의 못가는 편이다. 철도노조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보름 전에 집(대전)에 한 번 다녀왔지만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다. 빨리 파업을 마무리하고 현장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 노무현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통령께서 직접 나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KTX 한 대에 1000명 넘게 탈 때도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외주 간접고용으로 지킬 수는 없다. 고객 안전은 직접고용일 때만 지킬 수 있다. 정규직이라도 철도유통공사나 KTX관광레져 같은 외주는 절대로 안 된다."
/ 석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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