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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하륜과 조준에 의해 지어진 하조대의 전경...양양의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고려말 하륜과 조준에 의해 지어진 하조대의 전경...양양의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 문일식

강원도 양양 역시 바다와 인접한 지역으로 7번 국도를 따라 끊임없이 바다와 조우합니다. 지금은 다 타버렸지만 의상대 일출로 유명한 천년고찰 낙산사도 바다와 접해 있고, 고려말 하륜과 조준에 의해 지어진 하조대도 바다와 접해 있습니다. 역시 바다를 위한 여행지로는 제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양양에는 바다 뿐 아니라 바다만큼이나 투명하고 깨끗한 계곡도 많습니다. 하조대와 낙산쪽을 제외하면 설악산에서 발원하는 계곡들이 많은데 미천골 자연휴양림이 있는 갈천권, 오색약수와 주전골이 있는 오색권, 국보 122호인 진전사지3층석탑이 있는 둔전계곡권, 물고기밭이라고 불리는 어성전권 등이 대표적인 계곡이라 하겠습니다. 그중 양양에서 비교적 가까운 둔전계곡의 최상류인 둔전저수지와 어성전의 법수치계곡을 찾았습니다.

진전사지 3층석탑 입구... 양쪽 도열하고 있는 벚나무의 공간을 통해 보여지는 석탑이 인상적입니다.
진전사지 3층석탑 입구... 양쪽 도열하고 있는 벚나무의 공간을 통해 보여지는 석탑이 인상적입니다. ⓒ 문일식

강릉방향 7번 국도에서 물치교를 건너 1번군도를 따라가다가 석교교를 건너 서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면 계곡의 상류에 있는 진전사지가 나타납니다. 진전사지는 통일신라시대때 창건된 사찰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고, 다만 발굴조사를 통해 '진전'이라고 적힌 기와편이 발견되어 진전사지가 있던 곳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곳 진전사지에는 삼층석탑 한 기와 조금 떨어진 곳에 부도 한 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석탑과 부도는 우리나라 불교사에 있어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통일신라 말기 당나라로부터 선종사상을 들여온 도의국사가 창건한 사찰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사상의 교리는 당시 만연해 있던 교종의 틈을 비집고 구산선문을 형성함과 더불어 지방호족들의 대대적인 지원 하에 크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선종사상을 도입한 도의는 당시 만연한 교종에 의해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렵게 되자 설악산으로 들어와 진전사를 창건하게 됩니다.

진전사지 3층석탑의 상층기단에 새겨진 팔부중상..각면에 두 구씩 새겼습니다.
진전사지 3층석탑의 상층기단에 새겨진 팔부중상..각면에 두 구씩 새겼습니다. ⓒ 문일식

도의의 제자 염거와 체징을 거치면서 장흥 보림사를 필두로 구산선문이 형성되고 선종사상의 선풍이 크게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진전사지에 있는 부도를 도의의 부도라 하여 우리나라 '부도의 시원'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석교교를 건너 둔전리에 이르면 벚나무가 터널을 이룬 위편으로 진전사지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일렬로 늘어선 벚나무 사이로 계단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진전사지 삼층석탑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벚나무의 둥그런 터널 속에 보이는 삼층석탑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벚꽃이 한창인 봄 무렵에는 멋진 장관이 연출될 것 같습니다.

진전사지 삼층석탑은 화강암임에도 까만색 기운이 많이 돕니다. 전각이 있었던 곳인 듯 주춧돌이 여기저기에 흔적으로 남아있고, 풀빛 가득한 위로 수려한 삼층석탑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약 5m정도 되는 탑에는 많은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두개의 기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래 기단에는 비천상이 각 면마다 두 구씩 새겨져 있고, 위 기단에는 각 면에 두 구씩 팔부중상(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 등 불법을 지키는 여덟 명의 신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1층 몸돌에는 당연히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을 줄 알았는데, 모든 공간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뜻의 사방불 좌상이 각 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선종을 도입한 도의의 부도로 알려져 있으며, 부도의 시원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선종을 도입한 도의의 부도로 알려져 있으며, 부도의 시원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 문일식

삼층석탑이 있는 곳에서 둔전저수지 쪽으로 올라가면 우리나라 부도의 시원으로 알려진 보물 433호의 부도가 있는데, 부도의 시원은 아마도 탑 모양의 형태였던가 봅니다. 팔각원당형이나 그 이후에 출현하는 석종형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둔전 저수지의 풍경... 마치 청송 주산지를 연상케 합니다.
둔전 저수지의 풍경... 마치 청송 주산지를 연상케 합니다. ⓒ 문일식

진전사지 부도에서 내려와 산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둔전저수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둔전저수지는 마치 주산지를 연상케 합니다. 비록 왕버들나무는 없었지만, 주왕산에 폭 잠겨있는 주산지의 모양새를 그대로 빼 닮았습니다. 호수를 감싸고 있는 산세는 자신의 모습을 복제해 물빛에 띄워놓고, 하늘도 이에 질세라 남은 부분을 하늘빛으로 채워놓았습니다.

둔전 저수지의 풍경... 가운데 관모봉과 함께 설악산이 펼쳐져 있습니다.
둔전 저수지의 풍경... 가운데 관모봉과 함께 설악산이 펼쳐져 있습니다. ⓒ 문일식

잔잔한 물가는 평온한 모습 그대로였고, 가만히 주저앉아 한없이 바라봐도 좋을 만큼 넉넉한 풍경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포르르' 고요한 침묵을 깨고 산새소리 한 번 울리더니 저처럼 이곳을 찾은 이방인이 있었나 봅니다.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고요한 둔전저수지를 서서히 메우고 있었습니다.

법수치계곡은 현북면 어성전리를 지나 법수치리에 있습니다. 어성전은 말 그대로 물고기들이 밭을 이룰 만큼 많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그만큼 수량도 풍부하고 맑고 깨끗함을 의미합니다. 설악산에서 발원하여 양양을 거쳐 바다로 입수하는 남대천은 연어의 회귀로로 유명합니다. 그 남대천의 최상류가 바로 어성전이고, 어성전에서 더 깊은 곳으로 가면 법수치계곡이 나옵니다.

양양-속초를 잇는 7번국도에서 하조대 반대방향으로 난 418번 지방도를 타면 어성전으로 갈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화전민만 살 정도로 오지중의 오지였다고 하는데, 개발의 손길이 미쳐 펜션과 민박이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습니다. 어성전교를 건널 즈음이면 여기저기 계곡에서 솟구치는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고 남대천의 모습이 되어 바다를 향한 항해가 시작됩니다. 그중 한 계곡이 바로 법수치계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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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치계곡의 풍경... 산과 계곡이 어울어짐이 일품입니다.
법수치계곡의 풍경... 산과 계곡이 어울어짐이 일품입니다. ⓒ 문일식

울창한 삼림의 가장자리를 감싸고 맑은 물길이 한없이 쏟아져 내려옵니다. 굽이굽이 돌아갈 때마다 감탄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길은 포장과 비포장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몇 굽이를 돌았는지 도저히 차를 타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황급히 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마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낚싯줄을 흩날리는 장면을 연상케 할 만큼 맑고 깨끗하며, 숲과 계곡이 조화롭게 어울린 곳이었습니다. 신발을 벗어 바위에 올려놓고 계곡에 발을 담가 봤습니다. 머리끝이 쭈뼛해질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온 몸을 감쌌고, 온 몸을 담그고 싶은 욕구를 절제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아! 좋다'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릅니다.

법수치계곡의 맑은 풍경...
법수치계곡의 맑은 풍경... ⓒ 문일식

법수치계곡을 따라가며 달리는 길에는 예쁘게 지어놓은 펜션들이 경치 좋은 곳곳마다 지어져 있습니다. 어성전에서도 한참을 올라가도 길은 끊이지 않고 계곡과 어깨동무하며 나란히 달렸습니다. 한참을 달리자 한 펜션과 잇닿은 곳을 마지막으로 길이 끊기고 계곡은 산속 깊은 곳을 향해 서서히 멀어져 갔습니다.

돌아 나오는 길. 때마침 굵은 빗줄기가 차창을 때리기 시작했고, 법수치계곡을 따라가는 여행도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다시 어성전교에 이르러 바다를 향해 달리는 남대천을 만났습니다. 근 20여km를 내달리는 길고 긴 여정입니다. 그만큼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와야 하는 곳이 어성전이고, 그보다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곳이 바로 법수치입니다.

신발을 벗어두고 법수치의 맑은 계곡물과 함께하며...
신발을 벗어두고 법수치의 맑은 계곡물과 함께하며... ⓒ 문일식

사람이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곳은 자연입니다. 요즘처럼 처절하고 격렬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살아가면서 자연을 찾는 욕구가 예전보다 더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자연 속에서도 편리함을 추구하게 되고, 그렇게 노출된 자연은 인간의 의지와는 반대로 깨지고 망가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지는 더 이상의 오지가 아니고, 인간이 더 이상 간섭하지 말아야 할 곳까지도 손을 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자신도 자연에 대한 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자연은 우리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이라는 플래카드가 무색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 둔전저수지,진전사지 가는길 
강릉방향 7번국도상에서 물치교 건너자마자 1번군도 우회전 후 직진 →진전사지 표지판보고 우회전 후 직진→석교교를 건넌 후 좌회전 직진 →진전사지, 진전저수지 도착

※법수치계곡 가는길 :
강릉방향 7번국도에서 418번 지방도로 우회전 후 계속 직진 →어성전교,용탄교지난 후 용화사 표지판 보고 좌회전 →법수치계곡 시작

★ 유포터에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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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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