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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선 환영행사 볼프강 쉬셀 오스트리아 총리(왼쪽)가 20일 비엔나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라 부시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연합(EU)의 순번제 의장국인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리는 EU-미국 정상회담을 위해 6월 20일 저녁 미국의 부시대통령 부부가 에어포스원을 타고 비엔나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부시를 기다린 것은 환영이 아닌 대규모의 반대집회였다.

이미 비엔나국립대학교 등에서는 정상회담 일주일 전부터 부시의 정치노선에 반대하는 전시와 집회 등이 있었다. 때문에 부시의 비엔나 방문기간의 대규모 집회는 사실상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부시의 방문은 미국에 전혀 관심이 없던 일반 시민들까지도 거리의 집회로 나서게 만들었다. 어린 초등생부터 백발의 노인들까지 “부시 고 홈”, “스톱 부시” 등의 구호를 외친 이유들 중 하나에는 비엔나 시와 오스트리아 정부가 부시의 안전을 위해 극도로 삼엄하게 펼친 보안정책도 한몫 했다.

초등생-노인들까지 시위에 참가한 까닭

부시 대통령 부부 및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숙소인 인터콘티넨탈 호텔 주변에는 각 코너마다 경찰병력이 배치되었다. 호텔 주변 100m 근처에는 차량이 통제된 것 뿐 아니라 주차 또한 할 수 없다. 또한, 부시의 방문기간 내내 서너 대의 헬기가 비엔나 상공을 비행한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호프부어그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비엔나의 명소이자 피아커(말이 끄는 관광용 마차) 등이 상시 손님을 기다리는 곳이었으나 정상회담이 열리는 기간동안 일반인들의 입장을 막고 통로를 폐쇄했다. 뿐만 아니라 100여개의 주변상가 및 박물관, 뮤지움 등도 21일 하루 문을 닫았다.

또한, 로라 부시가 21일 오전 방문했던 비엔나 카톨릭성당인 슈테판스돔은 그가 머무는 두시간여동안 폐쇄되었으며 슈테판스돔 주변 거리 또한 바리케이드가 둘러쳐졌다. 이후 로라 부시가 모차르트 전시회를 보기 위해 방문한 알베르티나 뮤지움 역시 약 3시간 가량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직장인들은 사무실이 위치한 시내 중심가가 폐쇄되자 대다수 출근을 하지 못했으며 중심가인 1구는 사실상 차량통행이 금지되었다.

피아커가 느긋하게 시내를 달리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의 노천카페, 관광객들로 붐비던 비엔나 중심가의 평화는 폐쇄와 금지, 그리고 제복을 입은 경찰병력 등으로 대체된 것이다.

지난 주말부터 오스트리아 정부는 미디어를 통해 일반시민들에게 비엔나 중심가가 부시의 방문으로 폐쇄된다고 알려왔다. 몇몇 시민들은 중심가가 어떻게 폐쇄되었는지 궁금해 오히려 폐쇄된 중심가를 구경삼아 나오기도 했다.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친 슈테판스돔 근처에 서있던 백발의 노인은 “비엔나에 폭탄이 어디 있다고? 폭탄은 미국사람들 머리에나 존재하는 것이지..”라며 한숨을 내뱉었다.

거리엔 반대집회 비엔나 시내에서 부시반대집회가 열렸다. "부시+체니+라이스+럼스펠드=대파괴"
ⓒ 배을선

▲ 백발의 노인과 무슬림, 동양인 등 전세계인들이 참가한 부시 반대집회.
ⓒ 배을선

중심가 폐쇄하고, 박물관-성당까지 문닫아

제 1,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전쟁이다. 때문에 오스트리아는 중립적인 정치노선을 선택했고 그로 말미암아 미국 및 다른 유럽국가와는 달리 적(敵)이 없다.

피셔 대통령은 당선 이후 예전부터 줄곧 살아오던 자택에서 계속 지내기를 원해 대통령 관저를 팔아버렸다. 총리 및 장관들도 호송단이나 호송차량 없이 일반인들처럼 시내를 배회한다. 때문에 미국 대통령의 잠깐 방문을 위해 삼엄한 경비를 펼치는 것은 오스트리아의 일반 국민들에게 전혀 익숙지 않다.

특히, 부시의 이번 방문은 로라 부시를 대동한 방문이어서 시민들은 비난의 화살을 로라 부시에게까지 돌리고 있다. 정상회담에 참석해야 하는 부시 대통령에 비해 로라 부시 여사는 ‘국경 없는 여성’이라는 단체가 주최한 자리에 잠깐 참석한 것을 제외하면 성당 및 박물관을 방문해 ‘특별한 관광’을 즐겼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독일 유학생인 크리스틴 베어캄프는 “로라 부시가 슈테판스돔을 방문하는 이유로 몇시간 동안 성당이 폐쇄되고 그 주변의 통행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단지 한 사람 때문에 수 만명의 시민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면 세계 제일 강국이라고 자처하는 국가의 영부인으로서 전혀 미덕이 없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직장인인 하랄드 야콥스는 “오히려 몰래 방문하는 게 호송단과 경찰을 이끌고 방문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지 않냐”며 “슈테판스돔의 가치를 전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사람에게 특별 혜택을 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간다”고 불평했다.

일반적인 여론은 오스트리아의 안전체계가 부시에게 너무 허술하거나 위험한 것이 아니라, 부시의 방문으로 인해 안전하고 평화롭던 도시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9살의 대학생 아우렐은 “비엔나는 안전하다. 위험한 것은 부시다, 그는 언제나 가는 곳마다 위험을 몰고 다닌다”고 말했다.

▲ 비엔나서역에서부터 시작된 집회 인파가 호프부어그 방향으로 천천히 평화롭게 걸어나오고 있다.
ⓒ 배을선

▲ 오스트리아 총리 이름인 '쉬셀'과 악수하다인 '쉬셀른'를 유머있게 합성한 구호. "쉬셀 총리, 부시와 절대 악수하면 안되요!"
ⓒ 배을선
"위험한 인물은 바로 부시... 위험을 몰고 다닌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부시의 전쟁 반대!”를 비롯, “자본주의 반대”, “국제단결” 등 좀더 분명한 구호를 외쳤다.

21일 오전부터 중심가 외곽에서 소규모로 시작되었던 ‘부시 고 홈’의 집회는 오후 5시 비엔나 서역을 중심으로 1만5천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가하는 집회로 커졌다.

어린 초등생들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책가방을 메고 집회에 참석했으며, 백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도 평화를 적어놓은 ‘PEACE’, 'PACE' 등의 깃발을 직접 들고 거리로 나왔다.

학생과 직장인등은 물론 무슬림과 동양인 전세계인들이 함께 참석한 집회는 서역을 출발해 호프부어그까지 천천히 전진했다. 1000여명의 경찰이 동원된 집회는 그러나 평화롭게 끝났다.

이날 하루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그라즈에서 비엔나에 온 16살의 학생 라이트너는 “이런 역사적인 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용기있는 행동이자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는 교훈과 가르침이다”고 집회 참가 동기를 밝혔다.

부시 대통령 내외는 22일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떠난다. 부다페스트에서도 부시의 방문에 항의하는 대규모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롤링 스톤즈 "부시에게 호텔방 양보 못해!"

비엔나에서는 부시가 도착한 20일 화요일 저녁 롤링 스톤즈의 공연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비엔나를 방문한 전설적 록 그룹과 부시 대통령은 또한 모두 비엔나 1구에 위치한 호텔 임페리얼에 묵기를 원했다.

롤링 스톤즈가 이미 임페리얼 호텔의 스위트룸을 예약한 것을 알게 된 부시 대통령의 보좌관들은 그룹의 리더 믹 재거에게 방을 양보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믹 재거는 이러한 부탁을 거절했다.

부시 대통령은 때문에 중심가인 1구에서 약간 떨어진 3구에 위치한 인터콘티넨탈 호텔스위트를 예약했다.

비엔나의 임페리얼 호텔은 전통있는 클래식 호텔로 몇 달전 안젤리나 졸리가 만삭의 몸으로 브래드 피트와 함께 묵고간 호텔이다.

오스트리아 일간지 <쿠리어>는 22일자에 “호텔 내부의 삼엄한 경비가 황당하다”는 한 투숙객의 말을 인용해 부시가 묵고있는 인터콘티넨탈호텔의 삼엄한 경비를 소개해 눈길을 끈다.

단골 투숙객이며 이미 3주전에 예약을 마친 상태라는 그는 “호텔 앞에서 신분증을 검사당하거나, 차량이 통제되어 호텔에서 수백미터 떨어진 곳까지 큰 리무진을 타고 나가야만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리무진에서 내리자마자 또 한번 여권 및 신분증 검사가 있었고 기자인지 아닌지를 묻는 질문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에 의하면, 호텔 곳곳에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서있고 모든 승강기에는 3명의 경호원이 계속 상주해 안전상의 이유로 모든 층마다 문이 열리도록 승강기의 시스템을 전환했다고 한다.

호텔 측에서는 부시의 방문에 맞춰 평소에 배치하던 독일어로 된 모든 오스트리아 신문을 없애고 영자신문을 배치했지만, 영자신문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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