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오마이뉴스 이종호
"결혼식하는 것처럼 왜 여기 서 계세요?"

20일 의원총회장을 들어서는 김한길 원내대표는 회의장 입구에 서서 일일이 악수를 건네며 의원들을 맞이하는 김근태 의장을 향해 이같은 농을 던졌다.

의장을 맡은 뒤, 의원총회가 열릴 때마다 김 의장은 낮은 자세로 의원들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뿐만 아니다. 전국을 돌며 지방선거 출마자들과 당원들을 위로, 격려할 예정이다. 26일부터 30일까지 전국을 돌며 시·도당 간담회를 갖는다. 상임위별로 의원들과의 만남도 병행한다. 그런 뒤 7월 초엔 국회의원-중앙위원 전체 워크숍을 열어 선거 후유증을 딛고 총의를 모아내겠다는 계획이다.

김근태 패러다임, 그릇은 아직 준비 중

그런데 한 가지가 늦어지고 있는 게 있다. '김근태 패러다임'이 담길 서민경제회복추진본부(이하 추진본부) 구성이 난항을 겪고 있다. 외부인사 영입에 브레이크가 걸린 까닭이다. 당초 21일 출범할 예정이었으나 다음주 초로 미뤄졌다.

김 의장은 이날 지도부 회의에서 "민간 위원으로 참여하기를 기대하는 분들이 정치권에 발을 들이는 데 부담을 가지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의장 측은 접촉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가진 비중있는 인사'라는 수준에서 말을 아끼고 있다.

김 의장과 이계안 비서실장이 접촉하고 인물들은 크게 3가지 부류. 학자, 전·현직 CEO, 관료 출신들이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에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인물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섰던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 충남도지사로 출마한 오영교 전 행자부장관도 김 의장의 요청을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도 내달 '국토 순례'를 계획하고 있어 당분간 정치권과는 거리를 둘 모양새다.

김 의장의 한 측근은 "지방선거에 출마한 뒤 다들 심신이 지쳐있다"며 "이미 지도자의 반열에 올라 있는 분들이니 다음 시기를 보는 것도 당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추진본부장을 겸임하거나 강봉균 정책위의장이 맡는 방법도 거론되고 있으나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위원들은 당 내외 인사로 구성하더라도 추진본부장은 중량급 외부인사를 기용해 대외 효과를 높이겠다는 의지다.

재계엔 '경영권 보장'을, 시민사회단체엔 'FTA 속도조절'을

김근태 체제의 골격은 크게 두 축이다. 당헌·당규 개정 권한까지 부여받은 비상대책위원회와 광범위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고 이를 정책으로 이어갈 당의장 직속의 추진본부다.

전자가 당내 정비라면 후자는 당 밖과 연결고리를 갖는다. 김 의장측은 "김근태식 패러다임은 추진본부를 통해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김 의장은 '저성장→저투자→저고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추가 성장론'을 제시하며 여기에서 양극화 재원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해 주겠다는 당근책도 제시했다.

대신 기업의 '소명의식'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투명성과 고용·투자 공시제도, 하청 구조 개선 등의 윤리경영을 강조한 얘기다.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국현대사에서 경제시스템이 두 번 바뀌었는데, 한번은 60년대 군사독재정부의 총칼로 바뀌었고 다른 한번은 97년 IMF에 의해서 바뀌었다. 그러나 이 두 경우는 너무나 폭력적이어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스스로 민주적이고 자주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기업과 노동자, 정부와 정치권이 함께 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꼭 필요하다."

'김근태식 패러다임'의 골격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대한상공회의소 강연문(5월 4일)의 내용이다. 김 의장은 우선 각 단위 주체들에게 화두 하나씩을 던진 셈이다.

재계는 김 의장의 추가성장론과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 완화가 어느 수준에 이를지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고, 시민사회단체들은 김 의장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속도조절론에 대해 일단 안도하는 모습이다. 노 대통령도 최근 "시간에 쫓겨 내용이 훼손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며 한 발짝 물러섰다.

당직을 가진 한 의원은 "김근태 의장의 행보에 대해 당 안팎의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성장론을 제시해 '재야' 이미지를 털었고, 더 이상 민주화운동 이력이 훈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 '87년 이후'에 대한 새 비전을 제시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향후 정계개편에 대해서도 '반(反)한나라당 연합'을 넘어선 패러다임의 연합을 제시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우리 내부의 녹을 벗겨 내지 않고서는 페인트칠을 아무리 한다해도 다시 벗겨질 것"이라며 근본적인 쇄신을 강조했다.

▲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열린 13일 의원총회에서 "지금 상황이 어려워 서로 네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끓고 있지만, 단합해야 한다"고 '단합론`을 재차 강조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책조합, 그 뒤엔 뭐가 있을까

하지만 여기까지다. 김 의장은 자신의 구상에 대해 더 이상의 언급을 삼가고 있다. '정책조합'을 말할 뿐 더 이상의 각론은 없다.

이에 대해 측근들은 "일단 여기까지다, 더 나가면 논쟁이 일고 그럼 배가 산으로 간다"고 당내 여러 시선을 의식했다. 또한 "복안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당 공식기구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 나가면서 상황을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김근태의 그릇'이랄 수 있는 추진본부의 위상에 대해 김근태계 내부에서도 온도차가 존재한다. 한 쪽에선 "김근태의 성패는 사회적 대타협에 걸려 있다"며 추진본부의 위상과 연계했지만 다른 한 쪽에선 "민심수렴을 위한 통상적인 기구일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이런 시각차는 김근태의 향후 행보와 연결되어 있다. 지나치게 높은 위상을 부여했다가 실패로 귀결되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김 의장이 지게 된다는 계산에서다. 한 측근은 "사회적 대타협은 유럽에서도 10년 이상이 걸려 이뤄졌다, 이 정권에선 화두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추진본부는 현안에 대해 단기적 처방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당 안팎에서 김 의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권유가 심심치않게 나오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사심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모든 걸 걸라"라는 주문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열린우리당이 지난 3년 동안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며 '정치인이 갈 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말했다.

'대선 불출마 선언' 제안은 김 의장측에서도 적지 않게 듣고 있는 모양이다. 한 측근은 "대권 주자 지지도가 1~2%인데 불출마를 선언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며 답을 비껴갔다.

현재 열린우리당은 탈계파 바람이 불면서 각종 새로운 모임이 생겨나고 있고 좀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던 의원들도 지도부와 청와대를 향해 쓴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가 당의 원심력으로 모아질지,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몸값을 높이기 위한 생존전략일지는 연말 연초가 되면 드러날 것이다. 김 의장도 정계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며 시기는 '정기국회 이후'로 봤다.

시간이 없다. 그런데 김 의장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기를 쥐고 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김 의장의 비전에 대해 '이율배반의 논리'라고 했지만 시간 역시 이율배반적이다. '한 박자 늦다'는 평가를 받아온 김 의장의 리더십이 기로에 처한 지점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