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6일째 단식 농성중인 문정현 신부. 말조차 꺼내기 힘든 건강상태이지만, 평택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힘들게 입을 열었다.
16일째 단식 농성중인 문정현 신부. 말조차 꺼내기 힘든 건강상태이지만, 평택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힘들게 입을 열었다. ⓒ 박준영
전국에 비가 내리는 오늘(21일), 문정현 신부가 16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청와대 앞에도 어김없이 빗줄기가 쏟아졌다.

평소에 문정현 신부는 심장이 좋지 않았던 터라 문 신부의 단식을 보며 애타하는 이가 많았다. 그런데 결국 오늘 아침 화장실에 가던 길에 문 신부는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걱정에 휩싸인 주변 사람들이 진료를 받아보자고 해도 문 신부는 입을 꾹 다문 채 치료를 완강히 거부했다. 그리고 가부좌를 튼 채 농성장을 지킨다.

오전 10시 동조단식을 결의한 각계 통일원로 인사들과 함께 찾은 문 신부의 단식 농성장에는 수많은 이들이 남기고 간 격려와 동참의 쪽지들, 그들이 두고 간 화분들이 가득했다. 지난 16일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문 신부와 뜻을 같이 했는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평소 심장이 안 좋은 상태에서 시작한 단식이라 이미 문 신부의 몸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있다. 말조차 하기 힘든 문 신부의 상태를 반영이라고 하듯 농성장에는 '말을 삼갑시다'라는 문구가 써 있을 정도다.

반갑기 그지없는 손님들이 찾아왔음에도 문 신부는 10여분이 넘도록 입을 떼지 못했다. 그저 웃음만 지을 뿐이다. 문 신부가 오전에 쓰러졌다는 말에 통일인사들은 문 신부의 건강 걱정에 그저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16일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농성장을 다녀갔는지 보여주는 쪽지들. 농성장은 문정현 신부의 뜻에 동참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격려글과 선물, 화분 등으로 가득했다.
지난 16일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농성장을 다녀갔는지 보여주는 쪽지들. 농성장은 문정현 신부의 뜻에 동참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격려글과 선물, 화분 등으로 가득했다. ⓒ 박준영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 신부는 가까스로 입을 떼며 고마움을 전했다.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절대 그냥 물러서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단식하는 것은 좋지만 여기서 단식하는 것은 저만으로 족합니다. 선생님들은 (평택투쟁) 조직을 해야 합니다."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통일운동 인사들에게 고마움과 당부의 뜻을 전하던 문 신부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한다. 평택 주민들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이 이렇게 잔인하단 말입니까. 국책을 위해서 그것도 미국의 군사력을 위해서 자기 주민들을 이토록 잔인하게…."

문 신부는 끝을 맺지 못한 채 주먹을 꽉 쥘 뿐이다. 이어 문 신부는 평택 주민들에게 가해지는 공권력의 무자비함에 치를 떨었다.

"경찰한테 손가락질을 좀 했다고 소환장을 발부하고, 30일에 대화하기로 해놓고 29일에 수배를 내리고, 주민들의 다리와 팔, 허리가 부러지도록 군홧발로 짓밟아 응급실로 후송시키는 이렇게 잔인한 정부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도 모자라 군대식으로 진지를 쌓아놓고 고지를 점령한 듯 위세를 부리며 주민들을 가둬놓는 저 사람들은 자기네 주민이 죽어나가도 미국을 위해서 계속 이 잔인한 일을 계속할 겁니다."

말 한마디 꺼내기조차 힘든 상태임에도 문 신부는 농성장을 방문한 통일운동 인사들과 언론들을 향해 평택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군경은 밤새도록 위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76세의 노인의 집 앞까지 굴착기로 도랑을 팠습니다. 도저히 견디지 못한 노인이 집에서 기어 나와 '나 좀 살게 해달라고'고 애원을 했어요. 그리고는 사흘 후 돌아가셨어요. 평택 주민들에게는 누워 있을 자유조차 없었던 거예요. 정말 잔인합니다."

구속된 김지태 이장의 어머님의 눈물은 "주민들의 절규"라며 애석함을 감추지 못하던 문 신부는 "그런 주민들의 모습을 어떻게 눈뜨고 보고만 있을 수 있느냐"며 "아픈 사람에게 가서 위로하고 도움을 주는 우리는 정부는 외부세력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문 신부는 평택범대위를 비판하는 정부의 행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평택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는 '나라의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우려하는 문 신부는 언제까지 단식을 계속할지 장담할 수 없으나 "그냥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심은 분명히 했다.

"정말 이 나라가 너무 잔인해"라며 눈을 감아버린 문 신부. 이날 5분 여간의 발언이었음에도 2시간이 넘는 열변보다 더 힘이 들어 보였던 문 신부는 자리에 누운 채 감은 눈을 뜰 줄을 몰랐다.

'평화를 선택해', '황새울의 평화는 세계의 평화', '평택에 평화를 대추리에 안식을' 등등 농성장 곳곳에 쓰여진 글귀에는 평택의 평화와 생명을 지키려는 염원과 이 땅의 자주를 향한 바람이 담겨있었다. 이 글귀들이 문정현 신부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고 있었다.

5분여의 짧은 발언도 힘이 부치는 듯 문정현 신부는 곧바로 자리에 누웠다. 문 신부는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면서도 "그냥 물러서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5분여의 짧은 발언도 힘이 부치는 듯 문정현 신부는 곧바로 자리에 누웠다. 문 신부는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면서도 "그냥 물러서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 박준영
ⓒ 박준영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자주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주권자전국회의에서 파트로 힘을 보태고 있는 세 아이 엄마입니다. 북한산을 옆에, 도봉산을 뒤에 두고 사니 좋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